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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Jun 10. 2022

서른아홉에 이직

다음 주면  직장에 출근한다. 지난 3월부터   달간 나는 이직에 미쳐 있었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매일 수정하고, 원티드와 잡플래닛을 눈이 빠져라 스캔하고, 하루 종일 메일함을 들락거렸다. 평일 육아는 놔버린 수준이었다.  신경이 여기에 쏠려 애  겨를이 없었다.


총 다섯 번의 면접을 봤다. 첫 번째 면접은 사내 추천이라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가고 싶은 마음이 무척 간절했다. 생소한 비대면 면접에 PT까지 해야 하는 상황. 나의 반려 감정인 긴장과 불안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철저한 준비밖에 답이 없었다. 2주간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남편을 면접관이라 생각하고 모의 인터뷰를 하고, 비대면 면접 잘 보는 팁도 꼼꼼하게 체크했다. PT 내용도 계속 점검 또 점검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1차 직무 인터뷰에서 나름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졌다'. 금요일 저녁에 불합격 통보 문자를 받고 뒷목이 뜨거워졌다. 남편과 순대에 소주를 마시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좌절은 또 다른 동력이 된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었다.


신기하게도 가고 싶은 회사들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면접은 소개팅 같고, 이직은 결혼 같다.  남자가  맘에  들어하면 어때, 다른 남자 찾으면 되지. 연애도 회사도 금사빠라 여기  되면 저기, 이런 식으로  직무를 찾는 , 나와 컬처 핏이 맞는 , 회사의 비전 등을 고려해서 이력서를 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나와 가치관이 맞는 사람, 비전이 있는 사람. 배우자를 고를  고심했던 것과 같았다.


 회사는 무려 4번의 면접을 봤다. 면접관들끼리 질문을 공유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어서, 비슷한 질문을 4 연속으로 받았다. 차라리 인성 검사를 하고 말지. 점점  촘촘한 기업과 핏이 맞는 인재를 고르고  고르는  같았다. 4번의 취조를 당하고 결국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면접을 본 회사는 지원 의사가 그리 크지 않은 곳이었다.  돼도  어때, 라는 심경으로 지원했는데 서류 합격 연락이 빠르게 왔다. 1 직무 인터뷰 일정도 빠르게 잡혔다. 나를 원한다는 신호였다. 호감도가 상승했다. 인터뷰 분위기도 좋았다.  기대 없이 나간 소개팅에서 괜찮은 상대를 만난 기분이었다. 잘해보고 싶다, 잘됐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생겨났다.


2 인터뷰는 감동이었다. 그동안 숱한 채용 과정을 거쳐봤지만 나에 대해 이렇게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인터뷰는 처음이었다. 질문의 수준도 높았다. 하고 싶은 일을 최대한   있게 해드리고 싶다, 라는 면접관의 멘트는 내가 지난 5 동안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잘하고 싶다.라는 것이 나의 이직 사유였으니까.


나는 일터에서 남은 에너지육아 에너지로 환원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터에서 완전히 방전된 상태로 돌아와야 '오늘 하루도 하얗게 불태웠어'라는 만족감에 육아 자존감도 올라가는 타입이었다. 회사에서 쓸모를 다하지 않고 돌아온 날은 우울했다. 나라는 부품을 가열차게 사용해줄 회사가 절실했다. 쓸모를 다하고 싶었다.


두 달  간의 면접 릴레이는 내가 가장 가고 싶은 , 나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합격한 것으로 끝이 났다.  직장에서 어떤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문제없는 조직은 없고, 내가 100퍼센트 적응하리란 보장도 없으니까. 그래도 설렌다. 기대가 된다.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내가 스스로 원해서 선택한 일이니 감당해야 한다.


서른아홉의 이직은 정말 어려웠다. 이제는 인생에서 더 이상의 실패를 경험하고 싶지 않다. 경험해선 안 된다. 완벽한 성공까진 아니더라도, 무탈하게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확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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