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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는 일과 프로티언 커리어

 진로설계를 위한 새로운 접근



Jeremy Rifkin이 1995년 그의 저서『노동의 종말(The end of Work)』에서 예상했던 내용처럼 과학기술과 산업 환경의 변화 속에서 일자리 감소는 구체화 되고 있다. Rifkin은 2004년에 다시 출간된 그의 책 서문에서 “증가하는 실업률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들은…(중략)그 후로 수 년 동안 심화 되었고, 이는 고용의 미래를 우리 시대의 급박한 문제로 만들고 있다"고 냉정하게 평가하였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산업 환경의 변화는 기존의 일자리를 없애고 서서히 ‘정규직’이라는 고정관념에 균열을 초래한다. 기업들은 더 이상 장기적인 계약을 맺지 않고 한 개의 사업 영역이나 현장 또는 한 나라에 얽매이지 않는다. 조직과 개인의 관계가 느슨해지면서 조직 내에서 TFT(Task Force Team)과 같은 유연한 조직이 등장하여 부서의 경계를 뛰어넘어 구성된다. 또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협업과 분업을 위해 전문성을 가진 개인은 외부의 아웃소싱 형태로 기업과 대등한 관계를 맺어 일하는 등 조직 내부의 유연성은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그야말로 변화의 물결이 세차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진로상담 분야에서도 최근 20년 동안 ‘새롭고’, ‘현대적인’ 커리어 관련 개념들이 연구문헌에서 자주 등장하였다. 경제, 사회, 기술 발달에 따라 개인의 커리어에 있어서 점차 ‘자기 주도적’이며 ‘이동성’있는 변화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늘어났고 사회 환경에 능동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Gubler, Arnold, & Coomb, 2014). 커리어 관련 연구에서도 고용가능성과 소명, 자기 주도적 커리어 관리 등의 역량과 같이 경력개발에서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Akkermans & Kubasch, 2017).

(아마도 이러한 이론적 변화들은 최근 핫한 키워드인 ‘긱 이코노미’나 ‘플랫폼 노동’에 대한 원인과 형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제공할 것이다. )     


경력상의 위기와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개인의 진로를 관리하는 새로운 방법들에 대한 요구가 폭발적으로 많아졌다. 그중에서 특히 프로티언 커리어(protean career) 에 관한 연구는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Hall & Chandler, 2005). 프로티언 커리어는 고정된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조직 중심의 경력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개인 스스로 자유롭게 형태를 바꾸어 나가며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나 조건에 맞게 자신의 경력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을 강조한다. 프로티언 커리어라는 용어는 그리스의 신 프로테우스(proteus)로부터 나온 은유적 표현으로 개인의 커리어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모습으로 스스로 변화시켜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프로티언’ 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유연성(flexibility)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며 모양 또는 특성의 다양한 변화를 함축하고 있다(Inkson, 2006). 개인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테우스와 같이 변화하는 삶의 환경에 따라 자신의 경력을 새롭고 다양하게 발전시킬 수 있으며, 근무환경의 변화 뿐 아니라 개인의 관심, 능력, 가치 등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경력을 바꿀 수 있다. 따라서 프로티언 커리어는 연대기와 인생주기에 의한 연령으로 정립되기 보다는 지속적인 학습과 정체성의 변화에 따른 학습 단계를 통한 경력 연령에 의해 이루어진다(Hall, 1996).     


‘프로티언 커리어’라는 표현은 우리에겐 다소 낯설고 여전히 모호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프로티언 커리어는 특정한 행동의 모음이라기 보다는 사고방식(mind set) 이라고 하면 좀더 편안하게 이해될 수 있다.

즉, ”개인적인 가치에 기반하여 자유롭게 자기주도적으로 선택을 하며 경력을 관리하는 태도(Briscoe & Hall, 2006)“이다.

Briscoe와 Hall(2006)은 프로티언 커리어를 형성하는 2가지의 구성요소를 제시하고 있다. 한 가지는 (1)경력자가 경력 성공의 방향을 정하고, 경력성공을 측정하는 개인의 심리적인 가치 지향성, 나머지는 (2)성과와 학습의 요구에 관해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개인 경력관리의 자기주도성이다. 즉, 자율성과 자기 결정을 강조하는 자기 주도적 경력관리(self-directed career management)와 경력성공과 선택을 함에 있어서 개인적인 가치에 기준을 두는 가치지향(value-driven)의 두 가지 태도라 할 수 있다(Briscoe, Hall, & DeMuth, 2006). 여기서 자기 주도적 커리어 관리는 Orpen(1994)의 언급을 빌어오면 ‘커리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가치지향성은 스스로 지향하는 삶의 나침반에 따라 자신이 목표로 하는 심리적 성공을 추구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Hall, 2004). 소위 객관적 성공보다는 자신의 삶의 의미에 비추어 합당한 주관적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다.      

프로티언 커리어는 지금과 같은 변화무쌍한 경력환경에서 크게 주목받을 수 밖에 없다.  지속적인 변화를 받아들이고 자기의 삶의 목표를 자기주도성과 가치지향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Hall(1996; 2002)은 프로티언 커리어 태도를 갖추는데 필요한 두 가지 메타 역량을 (meta competancy)제시하였다.

한 가지는 자신의 ‘정체성을 아는 것’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분명한 감각인 자기 인식(identity awareness)을 제시하였고 다른 하나는 변화무쌍한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인 적응성(adaptability)을 강조하였다. 이들 역량은 개인이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더 잘 배우도록 하고 자신의 새로운 역량을 개발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프로티언 커리어 태도의 성과이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하다.

       


Hall(2002)은 프로티어 커리어 태도를 위해 전제되어야 할 것이 ‘정체성’이라고 반복적으로 인용하면서 ‘정체성’은 프로티언 커리어의 추구에 있어서 필요조건이라고 하였다. 만약 개인이 자신의 필요, 동기, 능력, 가치, 관심 등 자기정의(self-definition)의 중요한 개인적 요소들이 명확하지 않다면 자신의 인생에서 어느 방향으로 향해야 할지 알기란 매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적응성(adaptability)은 진로 장벽이나 환경의 제약 등이 있을 때 효과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변화 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변화를 취하는데 도움이 되는 역량이다(Hall, 2002; Savickas, 1997).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시대에 길어진 경력주기 동안 많은 경력 변화들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는 점은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반복적인 업무 속에서 바쁜 일과를 보내는 직장인들에게 새로운 것을 접하고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며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매우 중요한 변화 속에 우리가 놓여 있긴 하지만 사실 경력을 변화하는 시도는 그 과정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힘든 일이다(Farjoun, 2010).

당연히 전환은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위기가 되기도 하며 가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불안은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Gratton과 Scott(2016)는 긴 생애 경력 기간 동안 변화에 대처하고 적응하도록 하는데는 위의 두 가지 메타 역량 모두가 동시에 발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만약 하나만 발달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높은 적응성과 낮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는 카멜레온 같은 행동이 될 수 있어 실속없이 바쁘게 살수 있다. 온갖 것에 관심을 갖고 모두 시도해 보려는 자세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길을 가는 것 대신에 다른 사람들을 따라 살게 될 위험이 있다.  반면, 높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낮은 적응성은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분석하는 나머지 행동을 취하는 것을 피하게 될 수 있다. 결국 마음은 있지만 실행이 없어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기 쉽다. 물론 두 가지 역량 모두가 낮다면 경직된 상태에서 주어진 일만을 하게 될 것이다. 현실 안주이다. 끓는물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개구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적응력도 뛰어나고 자기에 대한 인식이 매우 높은 집단도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기 위해 무수히 많은 이직을 할 수 도 있다. 과도한 자기 인식은 조금만 불편해도 다른 대안을 생각하게 하고 적응력까지 뛰어나면 어떤식으로든 기회를 포착할 수 있기 때문에 한 직장에서 몰입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그런 위험성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프로티언 커리어 태도를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한가지 제안은 메타 역량인 적응력과 정체성은 관계적 학습(relational learning)과 다양성 학습(diversity learning)을 통해 향상될 수 있다. 관계적 학습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학습의 자원을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성 학습은 ‘차이’인 다양성을 학습의 원천으로 하여 자신과 다른 타인들, 자기 자신, 그리고 타인들이 일하는 방식에 대한 차이의 가치 등을 학습함으로써 조직과 개인에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 2가지 메타 역량의 수준은 자신의 일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자기인식이 높은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일로부터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높고 적응성이 높은 사람들은 변화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탄력성 있게 적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삶의 패턴으로부터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 우리는 저항하게 된다.


그것이 예상한 일이건 예상치 못한 일이건 변화는 위기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이는 심각한 쇼크를 받기도 하고 절망감을 느끼기도 하며 삶의 회의감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앞으로의 경력 환경이 급변하고 우리는 이 상황에서 적응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나친 자기 회의와 의기소침 혹은 분노와 우울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왕 변화를 해야 한다면 새로운 관점에서 나를 바라보고 작지만 익숙치 않는 것들을 시험해 보면서 어떻게 나의 경력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숙고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인생의 변곡점이 ‘난데 없는 뒤통수’가 아니라 ‘준비된 터닝 포인트’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Jung 의 말처럼 위기속에서 우리는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결단’을 해 볼 수  있고  위기 속에서 더 강해진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되길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김이준의 박사학위 논문의 일부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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