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eer transition-
길어진 수명으로 인생 100세 시대를 준비하라는 이야기는 초등학생들에게도 익숙한 말이 되었다. 중장년 대상의 강의를 할 때 커리어 관리를 위한 서두로 [100세 시대]와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면 ‘뭐 그런 식상한 이야기를 하는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분들이 꽤 많다.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한다는 듯한 시큰둥한 표정으로 쳐다보시거나 아예 팔짱을 끼고 눈을 감는 분들도 계시다. 강의를 듣는 분들의 경력과 사회적 역할을 고려한다면 그리 놀랄만한 반응도 아니다. 길어진 수명과 불안정한 일자리 그리고 계속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니 시작이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일이다.
커리어를 공부하는 필자도 길어진 수명과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평생 경력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무척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이렇게 익숙한 이야기가 좀 다르게 들리기 시작한 지점은 경력전환과 적응을 위한 준비가 미흡한 이들이 경험하는 현실적인 고민에 대해 상담하는 케이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서 부터이다.
과거에는 여러 차례의 경력전환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머리로 이해하면 되는 추상적인 정보였다면 지금은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생존의 문제라는 점이 달라진 부분이다.
베이비부머 세대(1955년~1963년 출생자)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이들의 퇴직 후 전직 및 제2 인생설계가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남성의 경우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55세이지만, 실질은퇴연령(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연령)은 70세로, 한국 남성은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경우에도 약 15년을 더 노동시장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권혜자, 2013).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에서 베이비부머 세대의 전직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으로 여겨져, ‘스스로 알아서’하고 그 실패도 개인화되는 경향이 매우 높다(손유미, 2012).
당면한 경력전환의 위기와 새로운 경력을 위한 커리어관리에 관련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팔짱을 끼고 계시던 분들도 앞으로도 15년 정도를 더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일면 호기심을 빛내며 강의를 듣게 된다. 짐작컨대 이런 변화에 지속적으로 적응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더라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거나, ‘어찌되겠지’ 하는 막연한 낙관론을 지닌 분들도 많은 것 같다.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살아가는 동안 사회, 가치, 관심사는 변하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커리어에 대한 의식, 태도 행동도 변화하고 적응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의 틈새와 단계의 고비마다 각각의 과도기 (transition)가 존재하게 된다. 레빈슨(Levinson)은 사람들이 ‘안정기’와 각 단계의 경계에 있는 5년의 ‘과도기’를 반복하면서 발달한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17세부터 22세까지를 성인기로의 과도기, 40세부터 45세까지를 중년기로의 과도기, 60세부터 65세까지를 노년기로의 과도기로 보았다. 이러한 인간의 발달과정에 존재하는 과도기는 안정기에 비해 불투명하고 불안정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경력발달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과도기에는 일단 멈추어 자신과 깊이 마주하고 서서 자신과 주변을 차분히 응시하고 바로 잡음으로써 자신이 커리어를 질적으로 더욱 발전시키는 위한 시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거의 모든 이들이 커리어의 변화를 받아들여야만 하고 자신의 경력관리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현재는 직업적 환경에서 다양한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하는 부담감을 갖게 되었다. 한 직장에서 30여년을 일하고 은퇴한다 해도 집에서 쉬면서 여생을 즐기기엔 주변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예를 들어 늦어진 자녀의 독립과 지속적인 가계지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미혼인 자녀를 둔 상태에서 일선에서 은퇴를 한다는 것은 모든 가족에게 위기일 수밖에 없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중장년층은 자신의 제 2의 인생을 위한 이슈도 있지만 아직은 일을 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 있는 분들도 무척 많은 편이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는 가계경제의 주된 수입원으로 부모와 자식을 모두 부양해야 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였으나 정작 본인을 위한 노후 준비는 소홀한 세대이다. 통계청(2010)에 의하면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수 평균은 2.08명이며, 이들은 자녀를 가족의 중심에 두는 가족가치관을 가진 세대로서 자녀를 양육하고 가족을 지키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막내자녀의 나이는 부부의 가족주기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데, 막내자녀의 나이가 20세 이상인 경우가 59.0%로 나타나 막내 자녀를 성인기까지 성장시킨 경우가 절반 이상이다. 그러나 부부단독가구인 경우는 13.9%에 불과한 것으로 볼 때, 자녀가 성년이 되었어도 결혼과 독립을 시키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부양에 대한 부담이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최근 청년실업과 자녀의 고학력 경향이 증가하고 있어 자녀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09년 40~49세의 월평균 소비지출(통계청,2009)은 252.8만원으로, 연령대별로 비교하였을 때 최고 수준이었으며 그 중 21%가 자녀의 교육비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자녀에게 노후부양을 기대하지 않는 대신 사회적지원에 대해 기대 정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이에 대한 사회적 차원에서의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노후부담 관련 특성을 보면 베이비부머 세대의 부모님 부양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응답이 46.1%인 데 반해 본인 세대에 대한 자녀들의 부양책임에 동조한 경우는 9.8%에 불과하다. 산술적으로 712.5만 명의 베이비부머 세대 중 36.4%에 해당하는 20만 명 정도의 인구가 노후대책이 부족한 상태에서 노년기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들의 노후부양에 대한 사회적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산업화 시대의 주역으로서 가계경제의 주된 수입원 역할을 해 왔으며, 이는 은퇴시기에 다다른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부모에 대한 부양 의무를 지닌 마지막 세대이나 정작 자식에게서는 본인을 위한 부양의무를 기대할 수 없는 첫 번째 세대이다. 이들의 소비지출구성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자녀의 교육비이며, 베이비부머 세대의 주요 노후준비 수단인 연금을 제외하고 본인들의 노후준비는 부족한 실정이다.
또 다른 한가지 이유는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건강상태도 계속 일하고자 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도 은퇴 이후 새로운 일을 찾는 이유가 된다. 예전의 60세와 지금의 60세는 모든 면에서도 많이 달라졌다. 더욱이 이제 겨우 50세인데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심리적인 도전이 될 수도 있다. 일하는 존재로써의 정체성이 크게 흔들리는 이 시기는 내가 누군인가?하는 부분에 대한 회의와 갈등이 깊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일이 없어진 이후의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찾고 싶어하기 때문에 서둘러 제 2의 직장, 최대한 빠른 전직을 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70세 전후의 은퇴세대와 상담을 할 때도 그분들이 원하는 삶이 조용한 마음으로 자녀들이 커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여생을 즐기기만 한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된다. 아직도 일할 수 있기에 뭔가 생산적인 일을 지속하고 싶다는 열망을 강하게 어필하시는 분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왜냐하면 요즘의 50대 중반은 과거의 40대 중반 정도의 마인드와 체력을 유지하고 있기에 장년기 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중년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도달한 이들 특히 중기의 커리어 상에 위치한 이들은 발달 단계 상에서 중년의 위기에 해당되며,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흔들리고 커리어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것을 경험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분석하고 재평가하며, 향후의 커리어 방향성을 신중하게 최종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가 된다. 따라서 중장년이 직면한 커리어전환의 현실은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지점이고 향후 노후를 위한 중대한 고비인 것이다.
미국의 커리어 개발협회 회장을 역임한 슐로스버그(Nancy Schlossberg)는 인생은 다양한 전환의 연속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연구를 통하여 커리어가 형성되고 개발된다라고 하였다. 즉, 커리어 발달은 커리어 전환 career trasition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고려하여 커리어 전환 프로세스를 잘 이해하고 자기관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환이란 ‘ 인생에서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 사건을 만나는 것’ 또는 ‘예측했던 일이 발생하지 않아 그 영향으로 인해 일어나는 변화’ 모두를 뜻한다. 다시 말해 어떤 변화가 일어나거나 혹은 예측했던 일이 발생하지 않아 변화가 일어나는 모두를 뜻한다. 요즘처럼 변화가 심한 사회경제 환경 속에서 직장이나 직무내용이 변화는 일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커리어 전환은 사회적인 요인, 조직적인 요인, 개인적인 요인 등에 의하여 초래하게 된다.
취업의 어려움 뿐 아니라 실직이나 해고, 전직이나 이직 등이 일반화 된 현실에서 커리어 전환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갖고 있는 편이 유용하다. 오늘날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커리어 전환 시에는 슐로스 버그가 말한 4가지 요소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1) 전환의 영향은 어느 정도 인가
지금까지의 자신의 역할, 인간관계. 일상생활 등을 얼마나 바꿔야 할까
2) 전환의 타이밍은 어떤가
커리어 전환이 자신의 인생에서 시기적으로 적절한가, 전환을 위해 준비할 시간은 있는가
3) 자기 컨트롤은 가능한가
자신은 커리어 전환을 어느정도 컨트롤 할 수 있는가, 스스로 영향을 미치게 할 수 있는가, 선택 대안은 존재하는가
4) 영향의 지속성은 어떤가
전환으로 인해 발생한 상황은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인가, 일시적인 영향인가, 영속적인 영향인가
이와 같은 전환시에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한 두 개 이상 일어나게 된다.
인생 역할의 변화: 전환에 의해 자신이 완수한 수 많은 인생역할 중 일부가 없어지거나 잃게 되거나 크게 변화한다.
인간관계의 변화: 전환시에는 인간관계가 강해지거나 약해진다.
일상생활의 변화: 전환 시에는 일상생활에서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가 변화한다.
자기개념의 변화: 자신에 대한 사고방식, 인지방법이 변화한다.
슐로비스의 이야기처럼 구조조정이나 인위적인 인력감축으로 인해 퇴직을 당하게 되면 퇴직자는 심리적, 생리적 측면과 가족 관계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퇴직자의 심리적 손실은 퇴직자 본인에게 나타나는 영향 요인으로 심리적 상실감으로 인해 적대감, 불안감, 자아의상실, 보람의 상실 등을 초래하게 된다(Donovan and Oddy, 1982; Hepworth, 1980). 퇴직자의 자살률이 평균치보다 높으며, 퇴직자의 생리적 손실 또한 퇴직자 본인에게 나타나는 영향요인으로 입원률이 증가한다던지 심장 질환, 암 등의 질환이 증가하게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Layer, 1982). 한편 퇴직자의 가족 관계 측면에서 보면 이혼과 같은 가족관계 파탄, 부부간의 역할 역전 현상(role reversals)으로 인한 가정 파탄 등이 나타날 수 있다(Leana and Ivacevich, 1987).
이러한 커리어 전환에 의해 생기는 다양한 변화는 개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와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커리어 전환에 의해 얻은 것이 있다고 파악되면 플러스 효과이고 잃었거나 없어졌다고 파악되면 마이너스 효과이다. 따럿 커리어 전환 신에는 다음의 두 가지 자세가 중요하다.
1) 커리어 전환에 의한 부정적 영향을 어느 정도로 최소화하는가
2) 커리어 전환에 동반되는 다양한 변화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것인가
각각의 인생단계에서 맞게 되는 전환은 다양하게 존재하고 그 전환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하는 인지에는 개인차가 있다.
슐로스버그는 그 반응에 대한 개인차가 본인의 내적자원에 의한다고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전환을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좌우하는 네 가지 요소를 들었다.
1) 전환의 과거경험
커리어 전환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과거의 전환 시에는 능숙하게 대처하였는가
2) 커리어 전환에 대한 대처행동
전환에 즈음하여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지, 의사결정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겼는지, 전환에 수반되는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는지
3) 자율감
전환 사에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느끼는지
4) 인생에 대한 인지
자신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인지하고 있는지 부정적으로 인지하고 있는지 슐로스버그는 커리어상의 다양한 전환기를 능숙하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위의 네 가지 요소 외에 전환기를 지원하는 세 가지 시스템이 동시에 존재할 경우 전환 시에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도 해결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 세 가지 자원이란 다음과 같다.
1) 커리어 전환을 지원하는 공적 기관이나 민간단체, 직업소개소, 인재비즈니스 등의 활용
2) 전환기를 능숙하게 극복하기 위한 경제적 자원 (물리적 조건의 존재)
3) 전환기를 지원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인간관계의 존재)
따라서 커리어 전환 시에는 이러한 세 가지 지원 시스템 중 무엇을 충족하고 있는지와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지를 체크하고 만약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얼마나 보총할 수 있는지 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직업상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자원을 활용하고 필요하다면 도움을 받는 것도 현명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속도보다는 방향이다.
내 나이 50에 무슨 방향 타령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은 천천히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것이 낫다.
불안하여 선택한 길이 장기적인 대안이 될 수 없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어디선가 잃어버렸던 꿈이 있다면
이쯤에서 다시 한번 떠올려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