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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Dec 15. 2019

성공적 공공미술의 사례: 유영호, <그리팅 맨>

E앙데팡당X아트렉처 / 보배

고등학생일 때, 등굣길에 을지로를 지나며 매일 봤던 조각상이 있다. 건물 2~3층 높이와 비슷해보이는 하늘색 인체상이다. 이것은 유영호 작가의 <그리팅 맨>이다. <그리팅 맨>은 하나가 아니다. 국내외에 여러 명의 <그리팅 맨>이 서 있다. 알루미늄 주물로 제작된 이 상은 하늘색을 닮은 파랑 나체의 남성이 팔과 다리를 정중히 붙인 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 제작, 운반, 설치 모든 과정을 스스로 부담하며 ‘그리팅 맨’ 세우는 것을 프로젝트처럼 실행하고 있다. 그 중 ‘북한에 <그리팅 맨> 세우기’ 프로젝트를 평가하려고 하며, 이를 위해 현재 설치되어 있는 경기도 연천군의 <그리팅 맨>을 중점적으로 다루려고 한다.

 작가는 2016년 4월 23일, 경기도 연천군 옥녀봉에 <그리팅 맨>을 설치했다. 이 <그리팅 맨>은 북쪽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북한 땅과는 불과 4km 떨어진 위치이다. 이어서 작가는 황해남도 장풍군 고잔상리 마량산에 같은 작품을 설치하자고 제안한다. 당시는 북한의 연이은 핵 실험으로 남북갈등이 극에 달했던 때였다. 북한 측에도 의사를 전달했으나 답변은 현재까지도 오지 않은 상태이며, 북한에 <그리팅 맨>을 세우겠다는 작가의 노력 또한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유영호, <연천 그리팅맨>, 2016.

 그런데  작가는 왜 북한에 <그리팅 맨>을 세우려고 하는가? 마량산은 6·25 동란 중에는 317 고지로 불렸으며 1951 년 10 월 3 일부터 8 일까지 중공군과 호주군 사이에 치열한 고지전이 펼쳐진 곳이다*. 작가는 피 튀기던 격전지를 평화의 상징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공공미술로서 <그리팅 맨>이 성공적인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작품의 주제에 공공성이 있다. 둘째, 장소 특정성이 충분하다. 그리고 셋째, 작품은 기부됨으로써 공공성이 더욱 확보된다.

  우선 <그리팅 맨>의 제작 배경은 미술계를 떠나 있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문화, 역사적 배경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공공성을 확보한다. 작가는 2000년 한국의 전통적 인사법인 큰절을 소재로 비디오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때부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장 강력하고도 쉬운 행위로써 인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식 인사가 상대방에게 존중과 화해, 소통을 전한다고 생각하여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하는 자세로 만들기 시작했으며, 푸른색에는 다양한 인종의 피부색과 편견을 초월해 인류의 보편성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 필자가 느끼기에도 <그리팅 맨>의 인사는 공손하다. 존중받는 느낌이 강하다. 그럼에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 실제로 <그리팅 맨>은 15도 각도로 숙여 인사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작가는 “인사는 무조건 숙이는 게 아니라 자존감을 가지면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겸손은 비굴함이 아니다. 자기반성의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가식 없고, 진심이되 나를 비하하지 않는 자세의 인간상이 분단 경계선 주변이라는 장소에 위치할 때, 그 장소적 특징으로 인해 평화, 화해, 소통이라는 메시지는 더욱 강력하게 작품에 달라붙는다. 작품의 푸른색이 한반도기의 푸른색과 유사하다는 점은 이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만든다. 남과 북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 많지만 내 믿음만큼 남의 믿음도 중요하다고 여길 수 있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을 때가 평화를 위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때가 될 것이다. 연천군 <그리팅 맨> 이전에 세워진 <그리팅 맨>들 또한 작가가 생각하기에 있어야 할 자리라고 생각되는 장소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팅 맨>은 응원과 위로를 인사로 건넨다. 문화권마다 그 인사를 받아 주었다. 현지인들이 <그리팅 맨>을 긍정적으로 감상하고 공유하는 선례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연천군의 <그리팅 맨>이 갖는 한계가 있다. 북녘 땅에 <그리팅 맨>이 세워지지 않았기에 프로젝트는 미완인 상태이며, 남과 북의 <그리팅 맨>이 서로를 마주보고 인사하게 되는 날이 올 때에 작품이 말하는 평화의 메시지는 설득력을 갖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품이 제작, 유통되는 측면에서 보자면 전시 공간은 행정적 지원을 받지만 제작비는 작가가 스스로 충당함으로써 경제적 지원은 받지 않는다. 공공미술에 내재한 제도와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6m 높이 3톤 무게의 <그리팅 맨> 하나의 순제작비는 1억 5천만 원이고, 컨테이너 이용비와 운성비 등 5천만 원을 더 들여서 작품 설치 현장에 작품을 보낸다***. 작품은 현장에 ‘기부’된다. 작가는 작품 기부를 위해 천 개의 소형 <그리팅 맨>을 판매하거나 공공 미술 의뢰를 받아서 건물 앞에 세우는 개인 프로젝트로 돈을 벌어 작품 제작비, 운송비를 충당한다. 작품을 설치하고자 하는 지역 관청과 협의를 거쳐야 하고, 해외의 경우에는 해당 국가와의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작품 설치 완료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리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이 화이트 큐브에 전시되어 상품으로 거래되는 구조를 거부한다. 특정 개인이나 기관에게 작품이 소속되길 바라지 않고 누구나 관람 가능하도록 작품을 세상에 내어 놓는 모습에, 공공미술 작가라 불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은 벽을 허문다. 그것이 세상의 벽이든, 마음의 벽이든, 예술의 벽이든. 공공미술이라면 특히 세상의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영호 작가는 그 역할을 해내기 위해 <그리팅 맨>으로 노력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1999년에 파주에 첫 <그리팅 맨>을 세웠고, 2020년까지 북한 마량산에 설치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2020년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과연 내년 안에 북한에 <그리팅 맨>을 세울 수 있을지 주목하게 된다. 꼭 내년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연천 <그리팅 맨>과 마주 인사하는 <그리팅 맨>이 세워진다면 이 프로젝트는 그 때 비로소 성공한 공공미술이 될 것이며 남북 간 존중과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 박춘호, 「2019 오늘의 작가, 유영호전 《요기over there》 보도자료」, 김종영미술관, 2019, http://kimchongyung.com/archives/exhibition/2019-%ec%98%a4%eb%8a%98%ec%9d%98-%ec%9e%91%ea%b0%80-%ec%9c%a0%ec%98%81%ed%98%b8-%e3%80%8a%ec%9a%94%ea%b8%b0-over-there%e3%80%8b, 접속일 2019.11.30. p.2.

** 김병기, 「'그리팅맨'이 고개 숙인 15도 각도의 비밀」, 『오마이뉴스』, 2016.05.19., 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047&aid=0002116279, 접속일 2019.11.30. 유영호 작가 인터뷰.

*** 김병기, 「'그리팅맨'이 고개 숙인 15도 각도의 비밀」, 『오마이뉴스』, 2016.05.19., 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047&aid=0002116279, 접속일 2019.11.30.



<인터넷 자료>

김병기, 「'그리팅맨'이 고개 숙인 15도 각도의 비밀」, 『오마이뉴스』, 2016.05.19., 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047&aid=0002116279, 접속일 2019.11.30.

박춘호, 「2019 오늘의 작가, 유영호전 《요기over there》 보도자료」, 김종영미술관, 2019, http://kimchongyung.com/archives/exhibition/2019-%ec%98%a4%eb%8a%98%ec%9d%98-%ec%9e%91%ea%b0%80-%ec%9c%a0%ec%98%81%ed%98%b8-%e3%80%8a%ec%9a%94%ea%b8%b0-over-there%e3%80%8b, 접속일 2019.11.30.

정길화, 「[비바 코리안] 그리팅맨의 유영호작가 전시회 ‘over there 요기’」, 『월드코리안뉴스』, 2019.09.11., http://www.worldkorean.net/news/articleView.html?idxno=35232, 접속일 2019.11.30.

정길화, 「[특별기고] 대북 제재 국면에서 북한땅에 그리팅맨 설치는 가능한가」, 『UPI뉴스』, 2019.11.21., http://www.upinews.kr/newsView/upi201911210131, 접속일 20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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