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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Jan 27. 2020

전시 곱씹기: [이주 서사展]과 [공작인展] 비교

[보배12]

<이주 서사 Migration: Speaking Nearby>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 2관

2019.11.23.-2020.2.23     


<공작인 HOMO FABER>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 3,4관

2019.9.5.-2020.2.23     


 구정, 광주에 간 김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다녀왔다. 통합권을 끊어서 진행 중인 전시 4개를 관람했다. 그 중 <이주 서사>와 <공작인>이 대비된다고 느껴서 그것을 적어보기로 한다.

 <이주 서사>는 여러 기관, 여러 큐레이터, 여러 작가들의 협업으로 기획, 완성된 전시이다. 초국가적 이주가 이루어지는 동시대 상황에 맞추어 경계, 정체성, 소속감, 시민권, ‘우리’와 ‘타자’의 개념 그리고 그 재현방식에 균열을 야기하며 이에 도전한다(곽소연). ‘현대 조각과 공예 사이’가 부제인 <공작인>은 레디메이드 등장 이후 미니멀리즘, 개념 미술의 비물질화에 이르며 생긴 공예와 현대미술 간의 괴리를 해소하고자 기획되었다. 수공예적 기법이나 공예적 재료를 사용하는 세계적 작가들을 초대하여 그들이 전통적 기법, 공예적 소재, 장인 정신으로 만든 현대 조각을 선보인다.

 두 전시 모두 스케일이 컸다. <이주 서사>에는 21명의 작가(팀)이, <공작인>에는 14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그러나 <이주 서사>는 전시관 하나로 모든 것이 구성되었고, <공작인>은 2개의 관이 필요했다. <이주 서사>는 전시관을 꽉 채우는 커다란 도넛 모양의 2층 구조물이 있고, 구조물 안에 마치 판옵티콘처럼 방이 나뉘어 있어 관람객이 방을 옮겨 다니며 작품을 관람하는 시스템이다(방을 방문하며 작품을 보는 방식도 ‘이주’ 주제와 연결시킨 기획이라고 추측한다). 21개의 작품이 모두 그 구조물 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영상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방 각각은 영상실이라 봐도 무방하다. 4작품만이 영상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강박²>에 이어 영상 매체가 도드라진 전시였다.

 다시, 물리적 공간에서 영상이라는 비물질적 매체를 관람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맥락이 중요한 현대 미술에서 영상만큼이나 맥락을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매체는 없다. <이주 서사>에서 멍해질 만큼 영상 화면들을 보다가 <공작인>으로 넘어가 거대한 조각들을 보니 영상이 가진 설명력이 더 잘 느껴졌다. 영상은 이미지과 소리, 텍스트를 ‘읽을’ 수 있다. 주제인 ‘이주’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보니 영상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작품들을 보면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신호가 많이 온다. 그만큼 생각이 많아진다. 그러나 신호가 많이 올수록 쉽게 피로해진다는 것이 영상 매체의 단점이다. 게다가 영상 작품을 끝까지 관람하기 위해서는 절대적 소요 시간이 필요하다. <이주 서사> 영상 작품 중 짧은 것은 4분 안팎이었지만 대부분 10분대~30분대 비디오였다. 평균적으로 10분이라 쳐도 17개의 영상을 다 보려면 170분이 필요하다. 결국 관람객은 선택적으로 관람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주 서사> 전시 입구
<공작인> 일부 전경

 영상이 대부분이었던 <이주 서사>에 비해 <공작인>은 화이트큐브에 놓인 대형 작품들의 향연이었다. 어떤 동기에 의해 제작되었는지 알기 전에 일단 시각적으로 즐겁다. 그리고 작가(와 어시스턴트)가 한땀한땀 제작에 기울인 노력이 보인다(노력이 안 보인다 하여 노력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들인 만큼 각자의 세계가 뚜렷이 드러났다. 가벽을 설치해 작가별로 구역을 나누어 놓았는데, 벽을 넘을 때마다 새로운 조형 세계를 만나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서도호 작가의 <작은 집(2012)>이 기억에 남는다. 작가가 살았던 한옥을 천을 이용해 공중에 지었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그 정교함과 무게 없음을 느낄 수 없다. <공작인>에 초대받은 작업들은 ‘백문불여일견’이다, 이들에게는 전시 공간이 필요하다. 와서 직접 보아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그러나 미적 태도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별개로, 관람객들은 어떤 연유에서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다. 작가의 의도를 유추해보기도 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기도 하는 등 미적 경험과 아울러 인지적 경험을 하길 기대한다. 그래서 조형 언어가 빠지는 딜레마가 ‘텍스트로의 환원’이다.

 기획 의도나 방식, 작품의 매체, 디스플레이 등 여러 면에서 상반된 두 전시를 연이어서 보니 차이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 지점이 흥미로웠다. 영상 매체를 위한 전시 형태, 언어(말)에 의존하지 않는 시각 예술의 가능성, 두 가지 생각할 거리를 가져가며 <이주 서사>와 <공작인> 전시 리뷰 마무리.     



덧붙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시설 좋고 직원분들이 매우 친절하시다. 좋은 전시가 많이 열리는데, 서울과 비교했을 때 쾌적하고 조용하게 내 속도대로 관람하기 좋았다(연휴라 더 그랬을지도). 광주에 가게 된다면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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