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에 이어 빛에 관심을 가진 작가를 하나 더 소개해보려고 한다. 패트릭 토사니(Patrick Tosani) 는 빛을 사진에 담으려고 한 사진 작가이다. 사진과 빛은 당연히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인데, 어떻게 빛을 사진에 담고자 했는지 의아할 수 있다. 또는 빛을 이용하여 실험적인 사진을 찍은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중에 Tosani가 어떻게 특별한지 궁금할 것이다. 사진예술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사진은 빛을 이용하여 추상적 이미지 또는 비현실적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지극히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이미지를 제시한다. 숟가락이라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사물의 부분을 확대하여 큰 화면에 담았다. 부분을 확대하는 것 또한 어찌보면 비현실적 이미지를 구현한 것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작품을 처음 마주한 관객은 거대한 숟가락을 보고 그저 의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사물과 빛의 역전된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즉, 여기서 사진의 대상은 빛이다. 빛을 표현하기 위해 숟가락이 사용되었다고 보는 편이 낫겠다. 일반적으로는 사물을 사진기에 담기 위해 빛이 이용된다. 이는너무 당연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토사니의 연작의 경우, 처음에는 당연히 위와 같은 인식에 따라 숟가락이라는 사물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내 비슷하게 생긴 숟가락의 외형이 아닌 숟가락에 반사된 빛의 형태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높이 180cm 정도인 이 작품은 처음부터 관객으로 하여 숟가락의 외형이 아닌 다른 부분에 집중하도록 설계되었다. 크기에 압도된 관객들은 숟가락 안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곳에는 반사된 빛과 미쳐 완전히 반사되지 않은 숟가락 부분을 보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토사니의 말이다. "I describe the thing in very concrete terms because what interests me is its metaphorical and visual scope. Visually, this is no longer about either food or feeding, but pure light. This oval captures, receives, attracts and stores light, then redirects it back at us, transmits and returns it to us like a diffuse, reflective mirror."
"나는 모든 것을 매우 구체적인 형태로 묘사하는데, 이 형태의 은유와 시각적 범위가 흥미롭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 이는 더이상 음식이나 식용 도구에 관한 것이 아니고 단지 순수한 빛에 불과하다. 이 타원은 빛을 포착하고 수용하고 매료시키고 저장한다. 그 다음 우리를 향해 방향을 바꿔 산란하고 반사하는 거울처럼 우리에게 다시 빛을 보낸다."
우리는 이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토사니는 사물 그자체가 아닌 사물이 어떻게 빛을 품고 포착하고 반사시켜 우리에게 주는지 그 작용에 관심이 있다. 실제로 이 거대한 빛을 바로 앞에서 보았을 때, 또는 작은 화면으로 본다고 해도, 반사된 빛의 이미지는 숟가락을 보는데 방해가 된다. 빛의 작용이 우리로 하여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해의 과정이 곧 빛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토사니의 의도를 느낄 수 있다. 물론 빛의 움직임을 느낀다는 것이 관람객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숟가락을 보려고 했던 초반에는 빛의 이미지가 불편하게 느껴졌던 반면, 하나의 그림을 계속 볼수록 나의 시선은 숟가락 안에 있는 미세한 긁힘으로 시선이 옮겨졌고, 그 다음에 마침내 하얀색으로 보이는 빛이 정반사된 부분을 응시하게 되었다. 사진에 담긴 빛의 이미지가 현재의 빛을 표현한게 아님에도 나는 자리를 바꿔가며 빛의 정반사를 피하려고했던 것이 웃긴 상황이다. 불편하게 느껴졌던 빛 덩어리를 응시할 수 있게 된 시간의 흐름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구체적인 사물을 파악하려고 하는 습관에 익숙하다. 숟가락은 밥을 먹을 때 사용하는 도구이고, 이 도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토사니는 우리로 하여 그 습관 또는 전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지만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빛과 사물의 전복된 관계 그 자체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에게 모종의 전환적 사고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H', Patrick Tosani, 1988 (오랑주리미술관에서 직접 찍은 사진)
흥미로운 점은, 토사니의 숟가락 사진은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기 바로 직전에 입구에 걸려있는 작품들이었다. 4개월 동안 잠시 걸려 있는 이 작품들은 모네의 그림을 보기에 앞서 빛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단 4점의 작품이었고, 모두 숟가락의 외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시시할 수도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빛을 매개로 하는 토사니의 작품과 모네의 작품은 어떤 관람객에게는 큰 인상을 주기도 하였다. [모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