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A모]
‘If a place can be defined as relational, historical and concerned with identity, then a space which can not be defined as relational, or historical, or concerned with identity will be a non-place.’
´만약 장소가 관계적, 역사적 그리고 정체성과 연관되어 정의될 수 있다면, 관계적, 역사적 그리고 정체성과 연관되지 않은 장소는 비-장소가 될 것이다.’
-Marc Augé
우연찮게 스무 살 이후 삶은 이동의 연속이었다. 집보다 호스텔에서 지낸 날이 더 많은 해도 있었고, 거의 해마다 거주지가 바뀌었다. 비 장소 nonplace로 채워진 시간들. 호스텔, 공항, 기차역, 버스, 도로... 세계 어디나 비슷한 모습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장소는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다.
일주일간 대만 여행을 간다고 가정해보자. 인천 공항에 가서 출국 심사를 마친 뒤 면세점에서 쇼핑을 하고, 내 좌석을 찾아 비행기에 탑승 후 다시 대만 공항에 내릴 것이다. 무난히 예약한 이비스 호텔에 짐을 내린 뒤 버스 따위를 타고 관광을 한다면 우리는 여행 대부분의 시간 동안 비장소에 머무르는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시간을 보낸다한들,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은 관광지이다. 비장소는 몰개성한 공간이고, 그렇기에 친숙하지만 쉽게 잊힌다.
슬로바키아 출신 작가가 그린 그림이지만 우리는 묘한 친숙함을 느낀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익숙하고 낯선 공간. 이 모호한 정체성이 비장소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인위적인 형태로 구성된 이 공간은 익숙하지만, 그림의 각 모서리 부분은 흩어진 기억처럼 뿌옇다. 두 번째 그림도 선명한 플랫폼과 상반된 오른쪽 부분은 꿈같기도, 우주 같기도 하다. 전혀 다른 두 요소를 섞어 모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그림들은 비-장소를 잘 설명해준다.
스위스 작가 마크 리는 마크 오제 Marc augé의 개념을 빌려 비-장소를 애플리케이션으로 구성한다. 그가 해석한 비-장소는 보다 몰개성한 공간에 가깝다. 이는 마천루로 대표되는데, 세계화로 인해 수많은 도시 경관은 번쩍이는 재질의 높은 빌딩으로 채워져 어디에서나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비장소가 현대인의 공간적 특성인만큼 현시대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주목하고픈 예시는 공항인데, 대기 공간이란 점에서 오제가 말한 비장소의 자격을 획득한다. 세계 어디나 같은 기능을 위해 비슷한 구조로 지어져 있으며 지역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 공간이다. 또한 내부는 스타벅스, 버거킹 등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즐비해 그 몰개성을 더 부각한다.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캐리어와 핸드폰을 쥐고 공항을 활보하는 이들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오제는 비공간 속 사람들의 특성을 ‘고독’으로 정리한다.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한 공간이 아닌,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기에 비장소 속 인간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익숙하고, 낯선 공간.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역시 비슷한 옷에 비슷한 전자기기를 든 익숙한 모습이지만 낯선 이들이다. 함께해도 외로운 alone together 이 시대, 비장소야말로 가장 현대인을 잘 나타내는 장소가 아닐까.
‘Super modernity produces non-places, meaning spaces which are not themselves anthropological spaces and which do not integrate to earlier places … A world where people are born in the clinic and die in hospital, where transit points and temporary abodes are proliferating under luxurious or inhuman conditions (hotel chains and squats, holiday clubs and refugee camps, …; where a dense network of means of transport which are also inhabited spaces is developing; where the habitué of communicates wordlessly, through gestures, with an abstract, unmediated commerce (i.e., credit card transactions); a world thus surrounded by solitary individuality.’
http://www.annkakultys.com/exhibitions/marc-lee-non-places/
https://onartandaesthetics.com/2016/08/10/non-places/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91545&cid=42171&categoryId=42181
테마현대미술노트, 진 로버트슨 크레이그 맥다니엘, 두성북스, 2011, 256-25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