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기억법; 공공미술은 어떻게 공간을 매개하는가

[수풀 02]

by E 앙데팡당

어릴 적 본 만화 <식객>에서는 댐에 잠겨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서울에 살던 나에게는 유난히 먼 이야기 같았다. 고향이 댐에 잠겨 사라지는 일도, 또 고향을 잃어서 그렇게 슬퍼하는 일도. 글을 쓰는 지금, 내가 자란 곳은 그 이름만 남은 채 아파트에 잠겨 사라져 버렸다.

큰 애정을 가진 동네는 아니었다. 서울의 변두리, 봄이면 벚꽃잎이 눈처럼 내리다가도 곧 송충이가 비처럼 내리는 곳이었다. 울타리는 칠이 벗겨지다 못해 아이들의 손 때로 닳아 있었다. 길조차도 원래의 길보다 사람들이 자기들 좋을 대로 만들어 낸 길들이 더 많았다. 그러니 처음 지어졌던 모습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낡은 아파트 단지가 이제 멋들어지게 새로 지어진 건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이유로 재건축을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에게도, 어찌 되든 별 상관이 없이 그저 구질구질한 동네에서 벗어나 잊어버리고만 싶었던 나에게도 말이다.

그렇게 한동안 잊고 지내던 옛 동네가 갑자기 떠오른 건, 이미 사라져 버린 내 동네와는 달리 아주 조막만 한 마을이 오랫동안 그 공간을 유지한 채 지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였다. 그 조그마한 마을은 핀란드의 Viitasaari로서, 이곳에는 눈여겨볼 만한 공공 미술이 있다. 이 마을의 공간과 시간을 매개하는 Tuulensuu 조각 공원 (Tuulensuun veistospuisto)이다.

000021.JPG Viitasaari의 호수


핀란드 말로 어린 숲의 섬이라는 뜻을 가진 Viitasaari 에는 약 6100명의 사람이 산다. 핀란드의 인구가 약 550만 명임을 고려해도 그 규모가 크지 않다. 농업과 축산업이 주가 되는 마을에 공공 미술은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이 조각 공원은 나름의 방명록도 갖춘 엄연한 예술 공간이다.

Tuulensuu 조각 공원의 주된 주제는 이 마을 Viitasaari이다. 조각공원의 대부분 작품은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하거나, 그곳의 자연환경을 소재로 한다. 이 마을의 역사를 반영한 공공미술로는 폴란드 출신의 미술가, Radoslaw Gryta가 만든 다리 (Silta, 2005)라는 작품이 있다. 과거 이 마을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아마 230개나 달하는 호수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에 마을 사람인 Albert Kananen은 외부 세계로 통하는 돌다리를 만들었다. 1989년, 그 돌다리가 철거되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바로 이 다리 Silta라는 작품이다. 과거 다리가 마을 사람들을 외부 세계와 연결하였듯, 사람과 예술 또한 시공간을 뛰어넘어 매개되기를 바란 마음이 이 작품에 담긴 것이다.


siren_IMG_8064-1.png Hannu Siren, Omatunto, 1991-1992

더불어 Tuulensuu의 공공미술은 이 마을의 자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Hannu siren의 양심 (Omatunto, 1991-1992)은 이 Viitasaari라는 공간을 잘 담아내는 대표적인 작품일 것이다. 이 작품은 공개되기까지 1년의 시간이 걸렸다. Viitasaari의 다른 지역에서 가지고 온 돌들이 이 공원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잡기까지의 시간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단순히 주된 소재로 쓰인 돌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 그곳의 나무, 풀, 바람 그리고 빛까지, 그 공간을 이루는 모든 자연이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 설명에도 적혀 있듯, 그 장소의 모든 자연적인 사건은 이 작품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Tuulensuu 조각공원은 미술로서 Viitasaari라는 장소를 향유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그 공간의 역사를 미술로 매개하여 더 넓은 의미로 확장시키기도 하고, 마을의 자연을 예술의 영역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물론 공공 미술이 어떤 장소의 역사를 기념하거나, 그 장소의 자연을 반영하여 만들어지는 게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조각 공원이 여타의 공공미술과 구별되는 점은 바로 미술을 통해 그 공간의 미래를 담보한다는 점이다. 바로 Ateljeetalo, 즉 아뜰리에 하우스는 미술로써 Viitassari의 시공간을 그려내는 역할을 한다.


ateljeetalo-järven-puoli.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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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Ateljeetalo의 전경 , 우; Ateljeetalo 내부 모습



이 아뜰리에 하우스는 문자 그대로 예술가들로 하여금 이 마을의 자연을 즐기며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다. 이 조각 공원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아뜰리에 하우스에 머물렀던 예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바로 그 점에서 우리는 Viitassari에 대한 또 다른 작품이 이 공간에서 탄생할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예술 공간은 Vittasaari의 미래에 대한 약속이다. 앞으로 있을 이야기들에 대한 기념비가 세워질 거라는 예술과 공간 사이의 약속. 이 공간으로 하여금 이 마을의 미래를 그리겠다는 담보. 따라서 이 Tuulensuu 조각 공원이 단순히 마을의 역사, 즉 과거나 현재만을 반영하지 않고 시간을 매개한다는 언급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다시 나의 옛 동네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그 동네에 대해 큰 애착이 없었다고 해서 좋았던 순간이 마냥 없었던 건 아니다. 좋아하던 친구와 헤어지기 싫어 괜히 멀리 돌아가던 길도, 아파트마다 달리 심어진 꽃나무 향기도 다 그 동네의 것이다. 그러나 그 동네가 사라지면서 그 모든 기억을 끌어오는 건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다. 더불어 어찌 보면 사람은 공간보다 더 유약한 존재다. 그러니 공간이 사라지고 사람이 사라졌을 때 누가 그 기억의 몫을 가져올 수 있을까?

앞서 마을 사람들을 다른 세상으로 이어주었던 돌다리를 기념하기 위한 작품인 Grayta의 다리 Silta는 어떻게 예술이 우리의 공간을 기억해내는지 보여준다. 비록 그 돌다리는 허물어졌고 만든 이도 세상을 떠났지만 그 작품만은 남아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노마드가 성행하는 21세기에 공간의 해체는 당연한 수순일 지도 모른다. 사람이 공간에 애착을 가지지 못한 채 쉽게 떠나 버리고, 공간마저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공간도 사람도 사라지는 시대에서, 어쩌면 “바람의 입”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가진 Tuulensuu의 조각공원이 그랬듯, 미술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조금은 낭만적인 기대를 해본다.


000022.JPG Radoslaw Gryta, Silta, 2005


예술은 사람들 사이의 영원한 연결 고리이다.
(Taide on loppumaton yhteys ihmisten välillä.)






작품 해설 참고; http://www.tuulensuu.net/wp/

핀란드어 번역 도움; Tiia M. , Jussi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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