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잊어버린 그때의 감정이란
브런치를 시작한 이후 조각조각 글을 쓴다. 여기저기에 담아두었다가 조각보를 짜맞추듯 여기저기 기워올 때도 있고 한가지 주제를 들어 다시 잘 다듬는 경우도 있고.
이번 짧은 출장길에 오르면서 여행일지를 토닥토닥 써내려갔는데 오늘 다듬으려보니 어디에도 보이지가 않는것이다. 좋은 글감도 두어개 발견한 탓에 잔뜩 적어두었는데 아무리 뒤적거려도 영 나오지가 않는다. 그제서야 며칠 전 - 쓸모없어진 파일을 정리한다고 이것저것 삭제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연동 되어 있다보니 그러다 어어어 휩쓸려 삭제된 모양이었다.
잃어버린건 단순한 글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그때의 감정과 생각까지 전부였다. 졸지에 시간을 잃어버린 격이 되어 얼마나 허탈했는지. 다만 이러고 보니 요즘 따라 꽤나 소원해진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잃어버린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기록하지 않으면 그저 흘러간 하루라서, 그 순간을 붙잡고 싶어 일기를 쓴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 하곤 했었는데.
사실 쓰는 행위로 뭔가 수익을 내 보자는 마음을 가진 이후부터 감정의 색이 좀 바랬다고 느꼈다. 나만 보는 그래서 가장 적나라하고 가감없던 글의 공간을 조금 열어 노출시킨 이후로는 내가 나로썬 머물 공간이 없어진 기분이랄까. 애써 묻어두었던 감정이었는데 이번에 이렇게 글을 잃고나니 이런 핑계를 대며 남기지 않은 몇 줄의 활자들이 간절했다. 사실 말을 하면 할 수록 느는 것 처럼 글도 쓰면 쓸 수록 느는 것인데.
글을 처음 써서 전시 할 때 가장 처음 끌어내는 감정은 꽤나 네거티브한 것들이었다. 나의 슬픔, 외로움, 공허함. 사회생활을 하면서 전면에 내새우지 못하는 감정들을 글에 쏟아놓고는 '이게 내 진정한 모습이에요!'하고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글에 굳은 살이 배겨가면서는 유머와 재치를 찾아낸다. 감정을 쏟아내기만 하다가 그것을 읽을만한 문장으로 다듬고 또 이야기를 꾸려가야하므로. 삶에는 유머와 재치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게되는 대목이기도하다.
그래, 누군가의 말처럼 기억나지 않는 글이라면 이미 나에게 잊힌 글일것이다. 그때의 감정과 시간은 이미 흐릿해졌지만, 나도 여기에 마음을 쏟아내면서 흐릿한 글을 실체화 시킬 힘을 내는 것이다. 다시 써야지. 핫초코나 따끈하게 내려서 마시멜로를 동동 띄우던지, 새콤달콤 귤을 좀 까먹으면서 종종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