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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교실을 ‘시민됨의 첫 공간’으로 되돌리는 길

민주시민교육, 주입이 아니라 ‘같이 살아보기’로

교육은 ‘시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수많은 지식을 가르친다. 수학 공식, 과학 법칙, 역사 연표, 영어 단어. 그러나 정작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반드시 마주하게 될 질문은 따로 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혐오와 거짓이 넘치는 세상에서 무엇이 옳은가?”, “공동체 속의 나는 어떤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시험지에 적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사회는 결국 균열과 분열, 혐오와 배제 속에 무너진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부 잘하는 개인’을 넘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데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금 다시 민주시민교육을 말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민주시민교육은 더 이상 교사 몇 명의 열정으로 이뤄지는 작은 실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한국 사회 곳곳에서는 세대 갈등, 젠더 갈등, 지역·계층 간 혐오가 상시화되고 있다. 비판과 질문 대신 침묵과 분노가 쌓이고, 타협과 경청 대신 선 긋기와 낙인이 일상화된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교실에서 시작된다”는 말은 더 이상 수사로만 들리지 않는다. 교실이 안전한 토론장이 되지 못할 때, 아이들은 ‘다름’을 두려워하고, ‘질문’을 주저하며, ‘표현’을 자제하는 법부터 배운다. 그러한 교실은 민주주의의 훈련장이 아니라, 침묵의 교실, 복종의 교실이 된다.

민주시민교육은 단순히 학생회 활동이나 토론 수업 한두 차시로 채워질 수 없다. 그것은 학교 안의 작은 결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떤 규칙을 따를지, 어떤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지, 누구의 의견이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는지. 이 모든 과정이 민주주의의 학습이자 실천이다. 교육이 현실의 갈등과 정치, 사회 문제를 외면할수록, 아이들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갈 준비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다.


주입이 아닌 ‘삶’으로 배우는 시민됨

진짜 민주시민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살아보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앎이 아닌 삶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아이가 직접 회의에 참여하고, 갈등 상황에서 다른 의견을 듣고, 다수결로 결정하면서도 소수의 목소리를 보호할 때, 민주주의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과 손에 새겨진다.

학생이 단순히 교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계획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는 자율성과 주체성을 가질 때, 진정한 시민됨의 토대가 마련된다. 그것은 단지 ‘학생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의 시작이다.

학교는 작은 사회이다. 민주주의를 살아보는 첫 번째 사회다. 이 작은 사회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다름을 수용하고, 규칙을 만들고, 함께 지켜가는 경험은, 아이들이 앞으로 마주할 세상의 축소판이다. 민주시민교육은 교양이나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한 교육의 ‘기본값’이어야 한다.


침묵하는 교육은 아이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오늘의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이슈 속에서 살아간다. 기후위기, 기술발전, 젠더와 인권, 불평등과 복지, 정치와 선거. 그러나 이 중 대부분은 교실 안에서 다루지 않는다. ‘민감할 수 있다’, ‘정치적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많은 교사들은 침묵하고, 학생들도 점점 말을 줄인다.

이러한 침묵은 교육의 실패다. 아이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경청하고, 근거를 가지고 말하고, 논쟁을 통해 더 나은 해답을 찾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점점 더 극단적인 소리만 커지게 된다. 아이들이 극단의 언어에 길들기 전에, 교실이 먼저 대화의 훈련장이 되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은 갈등을 없애는 교육이 아니다. 갈등을 다루는 법, 다름을 견디는 법, 의견을 나누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러한 교육이 없는 사회는 결국 갈등이 터졌을 때 싸우거나 도망치는 방식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금이 바로 정책으로 되살릴 때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민주시민교육은 몇몇 교사의 헌신이나 일부 교육청의 실험으로는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이제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함께 나서서 정책 중심에 민주시민교육을 되살려야 할 때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시민됨’을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학교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은 단기간의 체험이나 기념행사로는 충분하지 않다. 민주주의는 반복적인 실천과 경험을 통해 체득되며, 학생은 그 경험을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처음 맞이한다.
학생 스스로 학급 규칙을 만들고, 공동의 회의를 통해 의견 차이를 조정하며, 학교 예산 일부를 직접 기획·집행해보는 과정은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시민적 자질을 기르는 ‘훈련’이다.
이를 위해 학교 운영 전반에 민주적 절차가 작동하도록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학급회의 모델, 학생자치 운영 기준, ‘학교민주주의 지표’ 등을 제도화하고, 교사와 학생이 공동 운영하는 ‘민주시민학교 만들기’ 사업을 정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는 지시와 순응의 공간이 아니라, ‘시민됨’을 살아보는 민주주의의 첫 장이 되어야 한다.


둘째, 학생자치를 형식이 아닌 실질적 권한 중심으로 재구조화해야 한다.

많은 학교의 학생자치는 여전히 행사·전달 중심에 머무르고 있다. 학생회가 존재하더라도 주요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하지 못하며,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학생자치는 단순한 의견 제시가 아니라,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이를 위해 학생자치회에 정기 예산을 배정하고, 학생이 직접 참여하는 갈등조정위원회·권리보장위원회 등을 제도화해야 한다.
또한 교사는 지도자나 관리자가 아니라, 학생과 함께 민주주의를 공동 운영하는 ‘협력자’로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 학생자치는 민주주의의 축소판이며, ‘참여’가 아니라 ‘공동 결정’이 핵심이다.


셋째, 침묵하지 않는 교실, 논쟁을 품은 교육을 회복해야 한다.

갈등과 다양성이 일상이 된 시대에, 교실만이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많은 교사들이 정치적 중립성의 이유로 사회적 이슈를 다루기를 주저하지만, 중립성이란 침묵이 아니라 모든 관점을 공정하게 다루는 전문성이다.
학생이 사회 문제에 대해 질문했을 때, 교사가 “그건 말하지 말자”라고 답하는 순간, 교육은 민주주의를 금기시하는 공간으로 변한다. 교실은 안전하게 질문하고, 근거를 기반으로 주장하며, 서로의 차이를 다뤄볼 수 있는 훈련장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논쟁교육·갈등조정교육·표현의 자유 연수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교사의 발언권과 교육적 자유를 보호하는 법적·행정적 장치가 필요하다.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교육의 위기는 ‘시민됨’의 위기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식은 넘쳐나는데, 시민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성적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쏟아붓지만, 정작 ‘함께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타인을 두려워하고, 사회를 불신하며, 공동체를 외면한다.

민주시민교육은 이 흐름을 되돌리는 마지막 기회이다. 교육이 시민을 키워낼 수 없다면, 그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만드는 사회는 결코 민주적일 수 없다.

다시, 민주시민교육이다. 이제는 시민됨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법’을 함께 실천할 때다.


2025. 11. 17.(월) 별의별 교육연구소장 김대성(상인천초등학교 교감)


ps) 아래 토론회에서 발표 했던 내용을 정리해서 글을 작성했습니다.

"미래교육의 변화 키워드는 소통과, 입시경쟁 극복"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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