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과 사회가 다시 연결돼야 한다
청년의 삶을 이야기할 때 나는 늘 교실을 떠올린다. 정책은 멀리 있어 보이지만, 그 파장은 결국 아이들의 표정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국가통계연구원이 발간한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는 그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미래 세대의 어려움을 감정이나 주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데이터로 짚어냈고, 무엇보다 “청년의 어려움은 개인의 탓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구조의 문제”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나는 이 보고서가 한국 청년이 크게 세 가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말한 대목에서 오래 멈췄다. 위태로운 내면의 세계, 치열한 외부의 현실, 그리고 성취의 역설. 이 세 문장은 지금의 청년을 관통하고, 동시에 부모 세대와 국민 전체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이 청년들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해 왔는가.
청년의 내면은 이미 오래전부터 소진되어 왔다. 번아웃은 단순한 피곤이 아니다. 장기간 누적된 소진과 정서적 피폐의 상태이며, 상시적 위기가 되면 몸도 마음도 버티지 못한다. 문제는 이것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너무 이른 시기부터 아이들에게 “성공”을 경쟁의 언어로만 주입해 왔다.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말이 사회에 떠돌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비교와 선발의 트랙에 올려놓았다. 초·중·고, 입시, 대학, 취업까지 이어지는 긴 터널에서 아이들은 ‘관계’와 ‘협력’을 충분히 배우지 못한 채, ‘경쟁’과 ‘증명’만 반복해 왔다. 그러니 사회적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고립감과 우울감이 높아지는 것은 어쩌면 예고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특히 청년 사망 원인 1위가 질병이 아니라 자살이라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우울감의 증가, 번아웃 경험 비율, 외로움을 느끼는 비율은 ‘정서 정책’이 더 이상 부수적 의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영국 등에서 ‘외로움’ 자체를 사회적 의제로 다루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사회가 파편화되고 관계가 깨질수록, 개인의 정신은 더 쉽게 무너진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가슴이 찔린다. 나는 학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면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첫 직장에 들어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지고, 체감 실업률은 공식 통계보다 훨씬 높게 느껴진다. 더 큰 충격은 고졸 이하 청년의 취업까지 걸리는 기간이 더 길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직업계고면 빨리 취업할 것”이라는 단순한 상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일자리는 줄고, 문턱은 높아지고, 청년은 점점 더 오래 ‘대기 상태’로 머문다.
일자리의 질 문제도 심각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단지 숫자의 차이가 아니다. 안정성, 복지, 승진, 존엄의 차이다. 청년이 정규직을 원한다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생존의 언어에 가깝다. 그런데 사회는 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청년은 사회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부채라는 벽과 마주한다. 학비, 주거비, 생계비, 그리고 불안정한 투자 유혹까지 겹치며 악순환이 형성된다.
이 대목이 가장 뼈아프다. 한국 청년은 역사상 가장 높은 학력 수준을 성취했다. OECD 평균을 압도하는 고등교육 이수율, “스펙”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될 정도로 높은 성취를 이뤘다. 그런데 삶의 만족은 따라오지 않는다. 일자리 만족, 소득 만족, 소비생활 만족이 낮게 나타난다는 진단은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교육 성취와 사회 보상 사이의 연결이 끊어졌다.
과거 고성장 시대에는 사회의 성장과 개인의 성장이 일정 부분 함께 갔다.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 가능하다는 사회적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더 치열하게 노력했는데도, 그 노력은 ‘자리’로 번역되지 않는다. 그래서 청년이 느끼는 공정성 불만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구조가 설명되지 않아서” 커진다. 노력은 했는데 경로가 불투명하고, 결과는 납득되지 않는다. 이것이 불신의 시작이다.
보고서 결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 있다. “범부처 차원의 협력 강화.” 말은 그럴듯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흐지부지되기 쉽다. 왜냐하면 구조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특히 국가 정책에서 반복되는 ‘예산 둔갑’의 관행을 매우 경계한다. 기존에 각 부서가 하던 사업을 모아 이름만 바꿔 “몇 조 투자”처럼 제시하는 방식은 국민을 현혹한다. 사업에는 원래 목적이 있다. 그 목적대로 집행되는 예산을 가져와 새 간판을 달고 성과를 과장하면, 정작 필요한 곳에 새로운 자원이 들어가지 않는다. 저출생 대책에서도, 특정 정책 프레임에서도 우리는 이런 장면을 너무 많이 봤다.
청년 정책도 마찬가지다. “청년을 돕겠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숫자 놀음이 아니라 직접 투입이어야 한다. 보고서용 예산이 아니라 당사자의 삶을 바꾸는 예산이어야 한다. 더불어 지표도 정직해야 한다. 고용률과 ‘양질의 일자리’는 다르다. 공식 실업률과 체감 실업률은 다르다. 국민이 현혹되지 않도록 기준을 분명히 하고, 현실을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교육자이기 때문에 더 절박해진다. 청년의 번아웃 원인 중 상당 부분이 ‘진로 불안’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은, 교육이 해야 할 숙제를 정확히 알려준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경쟁을 가르쳤지만, 사회를 살아내는 법은 충분히 가르치지 못했다.
교육이 할 일은 분명하다.
첫째, 진로교육을 정보 제공이 아니라 ‘삶의 설계 교육’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직업 소개 몇 장, 적성검사 몇 번으로는 부족하다. 노동의 현실, 직업 이동의 경로, 실패 후 재도전, 협업과 소통, 금융·주거·계약 같은 생활 역량까지 포함해야 한다. 사회 진입은 시험이 아니라 생활이다.
둘째, 교육과 현실의 ‘이상 격차’를 줄여야 한다.
“경쟁만 이기면 안정된다”는 신화를 더 이상 아이들에게 주입해서는 안 된다. 그 말은 이제 상처가 된다. 대신 다양한 경로의 성공, 느린 성장, 여러 번의 이동이 가능한 사회를 함께 설명해야 한다.
셋째, 자율성과 시행착오를 허용하는 학교문화가 필요하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은 소진이 덜하다. 선택권이 있을 때 사람은 버틴다. 반대로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생존을 위해’ 끝없이 해낼 때 번아웃이 온다. 학교는 더 많은 선택과 시도, 실패의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넷째, 대학 교육도 혁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대학의 기능이 취업만은 아니지만, 삶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산업과 연계된 커리큘럼, 특성화, 현장 기반 교육이 강화돼야 하며, 사회는 양질의 일자리를 국내에서 확보하는 방향으로 산업정책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교육만 바꾸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교육과 산업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
청년 인구 비율은 줄고, 1인 가구는 늘고, 결혼과 출산은 늦춰진다. 이 현상은 청년이 “이기적이라서”가 아니라, 삶이 너무 불확실해서 나타나는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청년은 부모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되는 삶을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청년의 삶이 안정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안정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교육으로 예방할 수는 없었을까.
답은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방향만큼은 분명하다. 청년 정책이 ‘몇 조’라는 숫자를 키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실제로 청년의 삶에 닿는 방식으로 설계돼야 한다. 보여주기식 포장이나 기존 사업의 재분류가 아니라, 당사자가 체감할 수 있는 직접 지원이 필요하다. 동시에 지표는 더 정직해야 한다. 통계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현실을 가리는 장식이 될 때, 정책은 신뢰를 잃고 청년의 좌절은 더 깊어진다. 결국 교육의 역할도 다시 정의돼야 한다. 교육은 누군가를 선발해 줄 세우는 장치가 아니라, 배움이 삶으로 이어지도록 연결하는 다리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청년의 내면 위기를 개인의 나약함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우울과 번아웃, 고립은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경쟁과 불안정, 관계의 붕괴가 만들어낸 사회적 결과이며, 우리는 그 현실을 구조의 언어로 진단하고 구조의 방식으로 책임 있게 다뤄야 한다.
청년의 어려움을 방치하면, 결국 대한민국의 미래도 어둡다.
그 경고를 우리는 이제 ‘데이터’로도 확인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데이터를 보고도, 또다시 형식으로만 대책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년에게 직접 투입하라. 교육과 사회의 미스매칭을 줄여라. 관계와 회복을 복원하라.
그것이 청년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자, 우리 사회가 다시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별의별 교육연구소장 김대성(상인천초등학교 교감)
https://youtu.be/NJFyiljo6YA?si=P9-48w0mf6PBlY6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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