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으로 산다는 것, 매일 고개 숙여 인사하는 이유

낯선 학교에서 배운 진심, 오지랖, 그리고 책임의 리더십

처음 네 달, 나는 ‘낯선 어른’이었다


교감으로 발령받아 9월부터 12월까지, 네 달을 보냈다.
처음 학교에 섰을 때 나는 학생들에게 ‘아직 이름 없는 어른’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누군지 몰랐고, 선생님들과도 어딘가 어색한 거리가 있었다.

그때 우연히 본 한 장면이 오래 남았다.
무대 위에서 팬들을 향해 고개를 깊이 숙이며 인사하던 한 아이돌의 모습이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진심을 다해 감사하는 태도.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교감이라는 자리도 결국은 사람 앞에 서는 일 아닌가.

그날 이후, 나는 아침마다 마음을 다잡고 등교한다.
우리 학교의 좋은 점을 떠올린다.
아이들의 밝은 얼굴, 묵묵히 교실을 지키는 선생님들의 하루.
그리고 교문 앞에 서서, 아이들을 만난다.

90도로 고개를 숙인다.
“얘들아 안녕.”
“오늘은 어때?”
“밥은 먹고 왔어?”

사소한 말이지만,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또렷이 보려 애쓴다.
눈이 나쁘고,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그 앞에서는 최대한 진심으로 바라본다.

마음은 결국 전염된다

나는 오래전부터 마음이 양자역학과 닮았다고 생각해 왔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긍정과 부정, 기대와 두려움이 동시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중 어떤 감정을 키우느냐에 따라 마음의 전체가 달라진다.

교감으로 서 있는 지금, 나는 의식적으로
‘가장 좋은 마음’을 먼저 꺼내려 한다.
아이들을 향한 고마움,
선생님들을 향한 존중.

그래서 인사도, 대화도, 행동도
기술이 아니라 태도로 하려고 한다.

요즘 나는 매일 학교에서 쓰레기를 줍는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상관없다.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들 앞에서
‘이 학교가 소중하다’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다.

교무실에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반드시 일어난다.
밝게 인사하고, 짧게라도 말을 건다.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그러나 관심은 분명하게 전한다.

교감에게는 ‘오지랖’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다.
표정이 어두운 아이, 행동이 불안해 보이는 아이를 보면서도
‘괜히 오해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망설였다.

하지만 몇 번의 사안을 겪으며 깊은 후회가 남았다.
문제가 커진 뒤 상담을 하며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그때 한 번만 더 물어볼 걸.
“괜찮니?”라고.

그 이후로 나는 마음을 바꿨다.
교감은 오지랖이 있어야 한다.

복도에서 우당탕 소리가 나면
교무실을 박차고 나간다.
울음소리가 들리면
“아이들 같네” 하고 넘기지 않는다.

사후 약방문보다, 사전 개입이 낫다.
이건 경험이 가르쳐 준 분명한 진실이다.


“말해도 괜찮습니다”라는 문화

선생님들께 꼭 하는 말이 있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말하는 건 책임을 나누는 겁니다.”

나 역시 초임 시절,
학급에 문제가 생기면 혼자 끙끙 앓았다.
능력이 없어 보일까 봐,
윗사람이 불편해할까 봐.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 말했더라면 훨씬 쉬운 해결책이 있었을 일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약속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모른 척하지 않겠다고.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고.

실제로 여러 갈등과 민원 앞에서
나는 한 번도 뒤로 숨지 않았다.
책임이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교감의 자리는 앞에 서는 자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가 아닌 교감, 함께 배우는 교감

교감은 학교에 한 명뿐이다.
그래서 더 외롭고, 더 낯설다.

교원 인사, 사업 관리, 학부모 상담, 갈등 중재까지
체계적으로 배우기 어려운 일들의 연속이다.

그래서 나는 인근 학교 교감 선생님들과의 소통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회의와 협의 자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모르면 묻고,
시행착오는 기록해 둔다.

선배 교감 선생님들의 한마디 조언이
몇 달의 시행착오를 줄여주기도 한다.

교감은 혼자 성장할 수 없는 자리다.
관계 속에서 배우고, 타산지석으로 단단해진다.


다시, 신규의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좋은 학교에서,
좋은 선생님들과,
참 예쁜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
그저 고맙다.

그래서 내년에도
신규 교사의 마음으로 출발하려 한다.
과거의 경력보다,
지금의 배움을 더 소중히 여기며.

교감으로서,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이 발자취를 조용히, 그러나 진심으로 남기고 싶다.

매일 아침 90도로 인사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자리가, 이 사람들이, 이 하루가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