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쏠림사회’에서 이탈해도 괜찮지 않을까?

모두가 한 방향으로 달릴 때, 나는 멈춰 서고 싶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한곳으로 몰려가는가


요즘 우리 사회를 단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단연코 ‘쏠림’이다.


몇몇 우량주에 투자 자금이 몰리고, 강남 아파트에 수요가 집중된다. 의대로 온 나라의 인재가 흡수되고, 소수의 연예인과 특정 유튜브 채널에 폭발적인 관심이 쏟아진다. 기호도 쏠리고, 꿈도 쏠리고, 심지어 감정마저 쏠린다. 마치 거대한 자석이 하나 놓여 있고, 우리는 아무런 저항 없이 그 방향으로 빨려 들어가는 쇳가루 같다.


정보는 넘쳐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선택지는 더 좁아진다. SNS에서 누군가 “이게 좋다”고 목소리를 높이면 처음에는 무심하던 사람들도 서서히 동요한다. 여기에 “누가, 어떻게 했다더라”는 소문이 더해지면, 그 대상의 심리적 가치는 실제 가치를 훌쩍 뛰어넘어 급등한다.


우리는 이제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상세 페이지의 스펙보다는 타인의 ‘리뷰’를 먼저 찾는다. 타인의 평가가 나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고, 다른 사람의 선택이 나의 선택을 기꺼이 대신하는 사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쏠림사회의 정체다.


다양성을 말하지만, 삶은 더 비슷해졌다


요즘은 모두가 ‘개별화된 인생’을 산다고들 말한다. 맞춤형 소비, 맞춤형 교육, 맞춤형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들여다볼수록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비슷해지고 있다.


출생부터 성장, 소비와 취향, 심지어 노후까지 우리는 유튜브와 SNS를 통해 타인의 삶을 생생하게 라이브로 지켜본다. 남의 일상이 콘텐츠가 되고, 때로는 삶의 위기마저 수익화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제 삶은 직접 부딪히는 '체험'이 아니라 안전한 '시뮬레이션'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직접 겪어보기도 전에 이미 남의 삶을 통해 예습을 마치고, 그들이 내려준 결론을 내 삶에 그대로 복사해 붙여넣는다. 불확실한 나만의 선택을 믿기보다, 이미 타인을 통해 검증된 길을 따르는 것. 그것이 훨씬 더 안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의대 쏠림과 정답지가 펼쳐진 인생


이러한 현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의대 쏠림'이다.


공부를 잘하면 의대에 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 되었고, 충분히 갈 수 있는 성적임에도 다른 길을 택하면 당장 “도대체 왜?”라는 질문과 우려가 쏟아진다. 과학고를 졸업해도 의대를 가고, 명문 공대를 다니다가도 다시 수능을 준비해 의대로 향한다.


마치 인생의 정답지가 미리 배포된 것처럼, 모두가 똑같은 문제를 풀고 똑같은 답안을 적어내려 안간힘을 쓴다. 이 길을 따라가면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맹신, 여기서 이탈하면 영원히 뒤처진다는 공포. 쏠림사회는 단지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다. ‘이탈의 비용’이 지나치게 가혹한 우리 사회의 구조가 낳은 서글픈 결과물이다.


가장 안정적인 길 위에서 느끼는 지독한 답답함


고백하건대, 나는 누구보다 안정적인 길을 걸어왔다. 공립학교 교사로 시작해 장학사를 거쳐, 지금은 학교 교감으로 일하고 있다. 누군가는 부러워할 만한 탄탄한 경로다. 이대로 몇 년이 조용히 지나면 교장이 될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기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평온한 삶. 그런데 요즘 나는 이상할 정도로 지독한 답답함을 느낀다.


평생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아오다 보니, 말을 할 때도, 행동을 할 때도, 어떤 결정을 내릴 때도 ‘이것이 위험하지는 않은가’ 하는 검열이 먼저 앞선다. 도전보다는 검증을, 모험보다는 예측 가능성을 택해왔다.


실패하면 끝이라는 사회적 압박, 저성장 시대의 냉혹한 경쟁, 자영업의 몰락과 팍팍한 경제 상황. 이 모든 현실이 우리를 더 단단히 뭉치게 하고 쏠림을 가속화한다. 우리는 스스로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상은 정교한 알고리즘과 거대한 사회적 압력 안에서 방향이 정해진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죽음을 떠올리면, 비로소 질문이 달라진다


요즘 들어 실존주의 철학에 기대어 자주 묻게 되는 질문이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 나는 과연 무엇을 가장 후회할까?"


남들이 정해준 안전한 선택만을 고분고분 따라간 삶을 후회할까, 아니면 다소 불확실하고 거칠었더라도 온전히 '나의 길'을 걸어보지 못한 시간을 후회할까. 결국 삶의 진짜 의미는 나 스스로 내린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에서 나온다. 쏠림사회는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지는 몰라도, 우리를 진정으로 '살아 있게' 만들지는 못한다.


요즘 나는 글을 쓰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주변에서는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이제 교감인데 굳이 사서 고생을 해?” “조용히 묻어 가면 교장도 될 텐데.”


나를 아끼는 진심 어린 조언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되묻고 싶다. 안전하기만 한 삶이, 정말 후회 없는 삶일까?


내가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나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이 아니라 내 안의 내면을 지키고 성장시키려는 몸부림이라면. 나는 멈추지 않고 말하고 싶다. 내 생각과 철학을 계속 써 내려가고 싶다.


쏠림사회에서 이탈해도, 꽤 괜찮다


쏠림사회에서 한 발짝 벗어나면, 당장 주식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고 부동산 자산이 남들보다 뒤처질 수도 있다. 직업적인 성취에서 조금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의 궁극적인 수익률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일치’에서 결정되는 것 아닐까. 모두가 맹렬히 한 방향으로 달려갈 때, 잠시 멈춰 서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용기. 남들의 기호나 평가가 아닌, 내 안의 작은 목소리를 기준 삼아 내딛는 발걸음. 불확실하지만 즐겁고, 두렵지만 심장이 설레는 길을 기꺼이 택하는 일.


거대한 쏠림 속에서도 나는 꼿꼿이 나의 중심을 세울 수 있을까. 오늘 나는 다시 한번 묻는다.


쏠림에서 이탈해도, 정말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지만 단단하게 대답해 본다.


괜찮다. 적어도 나에게는.


2026.2.26.(목) 새벽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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