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제야 나를 묻는가
요즘 한 목소리에 오래 머문다.
국악이라는 오래된 시간의 언어를 빌려, 전혀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히는 한 젊은 예술가.
그 이름은 송소희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단순히 ‘잘한다’는 감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각이 밀려온다.
마치 시간의 결을 따라 흐르다가,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차원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느낌이다.
익숙한 듯 낯설고, 전통인 듯 미래적인 그 경계에서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다.
국악은 원래 틀이 많은 장르다.
음의 높이, 장단의 흐름, 발성의 규칙, 해석의 방식까지
이미 수백 년 동안 축적된 질서와 전통이 존재한다.
그 안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단순한 ‘변형’이 아니라
어쩌면 스스로를 부정당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 틀 위에서 춤을 춘다.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고 확장한다.
마치 바람이 길을 만들 듯, 구름이 형태를 바꾸듯
그녀의 목소리는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결국 더 깊은 질서로 귀결된다.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예술은 결국, 자유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라는 것을.
나는 평생을 모범생으로 살아왔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정해진 길을 따라 성실하게 걸어왔다.
졸업과 동시에 교사가 되었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오면서
단 한 번의 휴직도, 단 한 번의 이탈도 없이
‘바르게’ 살아왔다고 믿었다.
그것은 분명 틀린 선택은 아니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충실했고,
책임을 다했고,
나름의 성취도 이루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
이유 없는 불안.
잘 살아왔는데,
왜 자꾸 어딘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송소희의 노래를 듣던 어느 날,
그 답이 조금은 선명해졌다.
나는 ‘틀’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쩌면 ‘틀 안에 나를 가두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누가 나를 묶어둔 것이 아니다.
사회가 강요한 것도 아니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게 맞는 길이야”라고 끊임없이 말하며
다른 가능성들을 조용히 지워왔다.
그것은 가스라이팅과도 비슷했다.
타인이 아닌,
내가 나를 설득하고, 제한하고, 길들이는 과정.
그래서 더 단단했고,
그래서 더 벗어나기 어려웠다.
우리는 자주 환경을 탓한다.
교육청에 있어서 답답하다가
학교에 가면 괜찮아질 것 같고,
학교에 있어도 답답하면
퇴직하면 자유로워질 것 같다고 믿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안다.
환경은 바뀌어도,
내 안의 답답함은 그대로라는 것을.
결국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있는가’였다.
나는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지 않았고,
그저 주어진 길 위에서
최선을 다해 달려왔을 뿐이었다.
그래서 멈추는 순간
길이 사라지는 것 같은 두려움이 찾아왔다.
인생은 유한하다.
이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닳아버린 문장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말이
비로소 ‘감각’으로 다가온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아직도 ‘나의 길’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는 자각.
그때 비로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
송소희의 음악은
나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당신의 목소리를 살고 있는가.”
그녀는 국악이라는 틀 안에서 시작했지만
그 틀에 머물지 않았다.
자신만의 색을 만들고,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불안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길이 ‘자신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이해한다.
삶의 답답함은 바쁨 때문이 아니라,
방향의 부재에서 온다는 것을.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이 숨을 쉬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 한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길 위에서
비록 서툴더라도,
비록 느리더라도,
나의 리듬으로 걸어가 보려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이 ‘내 것인가’이다.
송소희의 목소리는
내게 광야를 보여주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공간,
하지만 그만큼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
그녀의 노래는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로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반드시 한 번은 흔들려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내가 서 있던 자리와
내가 가야 할 방향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조금 늦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라도 나를 묻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시작에
한 사람의 예술가가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당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라고
조용히 묻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질문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작은 바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김대성
https://youtu.be/Zbo7UY8dxh8?si=CASOLWfVhVEsrfE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