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어느 날, 건강검진대 위에서 다시 시작을 생각하다
처음으로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
수십 가지 검사를 받는 동안, 몸보다 먼저 마음이 떨렸다.
이상하게도 결과보다 과정이 더 두려웠다.
기다림, 숫자, 기계음, 차가운 검사대 위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삶의 끝을 아주 가까이 상상했다.
그동안 나는 건강을 믿고 살았다.
정확히 말하면, 건강을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몸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피로가 쌓이고, 회복이 느려지고,
이유 없이 아픈 곳이 늘어나고,
어제와 같은 몸이 오늘은 아니게 되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몸은 늘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나는 그 신호를 무시하며 속도를 유지해왔다는 것을.
40대 후반.
이제는 인생의 반환점을 지났다는 말이 낯설지 않다.
남은 시간이, 지나온 시간보다 짧다는 사실은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감정이 된다.
그 감정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삶의 태도를 바꿔 놓는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쉽게 마음을 흔든다.
잔인한 장면을 피하게 되고,
작은 불안에도 깊이 잠식되고,
감정은 예전보다 쉽게 요동친다.
나는 나약해진 걸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니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최악을 먼저 상상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걱정은 준비라고 믿었고,
불안은 성실함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준비가 아니라
삶을 미리 소모하는 방식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나는 나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가정을 이루었고, 아이들이 있고,
직업적으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은 늘 불안했다.
이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었는데
결국 답은 하나였다.
나는 ‘충분함’을 배우지 못했다.
항상 더 나아가야 했고,
항상 더 성취해야 했고,
항상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20대의 나는 성공을 꿈꾸었고,
그 꿈은 어느 순간
나를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압박이 되었다.
나는 쉬지 않는 삶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결국 나를 소모시키고 있었다.
어느 강연에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현대인은 너무 많이 비교하고,
너무 치열하게 경쟁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을 갈아 넣으며 살아간다.
나는 그 문장을 부정할 수 없었다.
우리는 쉬는 것을 죄처럼 여긴다.
쉬면 뒤처질 것 같고,
쉬면 무너질 것 같고,
쉬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쉼은 멈춤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다.
쉼이 없는 삶은
속도는 빠르지만 방향을 잃는다.
돌아보면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든 것은
상황이 아니라 ‘해석’이었다.
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다.
늘 단편적으로, 편협하게,
그리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했다.
이것이 바로
내 안에 오래 쌓여온 사고의 습관이었다.
문제는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방식이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조금은 숨이 쉬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시간을 ‘얼마나 많이 채웠는가’로만 판단해왔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얼마나 깊이 살았는가 아닐까.
삶의 밀도, 시간의 밀도는
속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방향으로 만들어진다.
남과 비교하며 달리는 시간은
빠르지만 얕고,
내 속도로 걸어가는 시간은
느리지만 깊다.
어쩌면 우리는
빠른 삶을 살면서
얕은 삶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건강검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오랜만에
‘두근거림’이라는 감정을 떠올렸다.
불안과 두근거림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한다.
불안은 나를 움츠리게 하고,
두근거림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나는 그동안
두근거림을 잃어버리고
불안으로만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이제는 다시
백지 상태의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해보고 싶다.
누군가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으로,
누군가의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로,
나의 방향을 다시 정해보고 싶다.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그 말이 이제야 가슴에 닿는다.
건강은 단순히 몸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신호다.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행복은 비교에서 나오지 않는다.
행복은 ‘내 시간’을 스스로 설계할 때 생긴다.
그리고 그 설계는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오늘,
나는 다시 스무 살의 마음으로
삶을 시작해보려 한다.
이번에는
성공이 아니라
두근거림을 따라가며.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