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 교사 주도성의 재발견

교사의 자율성과 관계의 회복이 미래 교육을 결정한다

2026년 교실은 무엇을 지킬 것인가?

2026년의 새 학기, 교문을 들어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은 평온해 보이지만 그들이 마주할 교실 내부의 기류는 그 어느 때보다 복합적이다. 정권 교체 이후 교육정책은 복지와 돌봄이라는 국가적 책무를 강화하는 동시에,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의 도입이라는 기술적 대전환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정책의 거대 담론과 교육 현장의 구체적인 삶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과연 미래 사회의 학교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2026년의 학교는 이제 단순한 지식 전달의 공간을 넘어,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성을 증명해야 하는 ‘실존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확장된 책임의 시대, 학교는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교육 현장은 급격한 변화를 기대하거나 우려하지만, 2026년 현재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확장된 책임’의 고착화이다. 늘봄학교와 학생맞춤통합지원 체계는 학교를 단순한 배움터를 넘어 복지와 돌봄의 종착지로 재정의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학교에 과도한 기능이 집중되는 ‘구조적 위험’이 발생하며 정작 교육 본연의 기능이 잠식되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아무리 선한 의도의 정책일지라도 현장의 목소리 대신 하향식 실행에 치중한다면, 그 책임의 무게는 온전히 교실의 피로감으로 남을 뿐이다.

따라서 미래 교육 정책은 학교에 숙제를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의 ‘자율성’과 교사의 ‘전문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맞춤형 지식을 제공하는 시대에 학교의 존재 이유는 표준화된 지침의 수행이 아닌, 각 교실 맥락에 맞는 창의적 교육과정 운영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학교는 모든 짐을 홀로 떠맡는 섬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자원을 교육적 가치로 연결하는 ‘교육적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학교가 교육의 본질을 지키며 연결의 중심추가 될 때, 비로소 정책은 학생의 실질적인 삶에 가닿을 수 있다.


AI 시대의 역설: ‘대리 사회’를 거부하는 교실의 힘

인공지능 대전환은 교사의 역할을 지식 전달자에서 학습 촉진자이자 코치로 재정립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기술적 격차가 아니라 학생들의 ‘사고의 외주화’이다. 사회학자 엄기호가 진단했듯, 현대 사회는 자신의 경험과 고통조차 스스로 언어화하지 못하고 시스템에 맡기는 ‘대리 사회’로 치닫고 있다. 학생이 생성형 AI가 내놓은 매끄럽고 최적화된 정답을 자신의 생각이라 믿는 순간, 주체적인 배움과 내면의 성장은 멈춘다.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정답은 편리하지만, 그 정답에 도달하기까지의 고뇌와 사유의 즐거움을 앗아간다는 점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미래 사회의 교실은 AI가 주는 정답을 확인하는 곳이 아니라, ‘기분 좋은 실패’와 ‘불편한 성찰’이 일어나는 안전지대가 되어야 한다. 교육철학자 존 듀이가 강조했듯 ‘성찰적 사고’는 매끄러운 알고리즘 속이 아니라, 좌충우돌하는 직접 경험과 그 과정에서의 갈등 속에서만 싹트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통한 대리 경험은 실패의 위험을 제거해주지만, 동시에 실패를 통해 얻는 단단한 자아의 형성 기회도 함께 박탈한다. 타인이 설계한 경로를 따라가는 것은 안전할지 모르나, 그것은 결코 자신의 삶이라 부를 수 없다.

따라서 2022 개정 교육과정이 표방하는 ‘학생 주도성’은 단순히 디지털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기능적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의 편리함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감각하며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힘이다. 교실은 실재하는 친구와 부딪히고 갈등하며 협력하는 과정 그 자체가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인간만이 나눌 수 있는 깊은 정서적 교류와 갈등의 해결 과정을 통해 시민성을 체득하는 것, 그것이 인공지능 시대에 교실이 지켜내야 할 유일한 ‘실존적 공간’으로서의 가치이다.


교사 주도성: ‘교육과정 설계자’의 귀환

기술이 화려해질수록 역설적으로 교사의 존재감은 더욱 선명해진다. 이제 교사는 지식의 독점자가 아니라 학습의 궤적을 학생과 함께 그려 나가는 동반자이자 상담자로 재정립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생의 주도성만큼이나 ‘교사의 주도성’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행정학자 립스키의 관점에서 교사는 단순한 정책 집행자가 아니다. 교사는 교실이라는 생생한 현장에서 정책의 실질을 결정하고 배움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교육과정의 설계자’이다. 교사의 손끝에서 죽어 있는 텍스트가 살아있는 지식으로 변모하며, 교사의 눈빛을 통해 학생은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교사가 새로운 도구를 탐색하고, 수업을 창의적으로 설계하며, 학생과의 관계를 세심하게 조율하는 에너지를 잃는다면 어떤 첨단 플랫폼도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특히 교사의 태도와 가치관이 은연중에 학생에게 전달되는 ‘영 교육과정’, 즉 교사가 몸소 보여주는 삶에 대한 태도는 인공지능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다. 교사가 먼저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에 도전하는 주체로서 설 때, 학생들 또한 미래 시민으로서의 자립성을 배운다.

이러한 교사의 주도성은 인공지능이 줄 수 없는 ‘맥락적 판단력’에서 기인한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통계적 확률을 제시할 뿐, 한 아이의 표정 뒤에 숨겨진 슬픔이나 망설임의 의미를 읽어내지 못한다. 교사가 교육의 주체로 당당히 설 때 비로소 교실의 민주주의와 배움의 역동성이 살아난다. 교사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교육적 재량을 보장하는 것이 미래 교육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사의 자율성이 확보될 때, 비로소 인공지능은 교사를 보조하는 강력한 도구로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법적 갈등의 파고를 넘어 교육적 관계의 회복으로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학교 현장은 사회적 갈등이 여과 없이 투영되는 ‘사법적 갈등의 최전선’이 되었다. 교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조금씩 마련되고 있으나, 여전히 많은 교사는 무분별한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의 위협 속에서 방어적인 교육 활동으로 내몰리고 있다. 사법적 잣대가 교육적 관계를 잠식할 때 교실 내의 역동적인 배움은 사라지고,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진다.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시사하듯, 학교는 갈등을 회피하는 곳이 아니라 갈등을 민주적으로 다루는 법을 익히는 교육의 공간이어야 한다.

교사에게 두터운 법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은 단순히 직업적 보호를 넘어, 우리 아이들의 ‘판단 경험’을 지키는 일이다.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고, 때론 엄격하게 훈육하며, 학생의 사회성을 길러내는 교육적 개입이 위축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교육의 민주성은 법 조문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인간으로 마주하는 두터운 신뢰의 토양 위에서만 자라날 수 있다. 학교를 둘러싼 갈등을 사법적으로만 해결하려 하기보다, 교육적 재량이 보장되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학교의 자정 작용을 믿어주는 문화가 시급하다.


인간을 더 깊게 다루는 곳으로의 회귀

2026년 교실의 풍경은 단순하다. 기술을 더 많이 쓰는 곳이 아니라, ‘인간을 더 깊게 다루는 곳’이어야 한다. 학업 중단 학생의 증가와 청소년 정신건강의 위기라는 복합적인 난제 앞에서, 우리는 교육의 목적을 다시 균형 있게 바라봐야 한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의 양을 늘리거나 성적 데이터를 축적하는 과정이 아니다. 성적과 데이터라는 ‘자격’의 영역을 넘어, 타인과 어우러져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사회화’, 그리고 타인의 언어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다운 삶을 찾아가는 ‘주체화’가 건강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성장은 AI가 내놓는 알고리즘의 결과값이 아니라, 우리가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매 순간의 궤적 속에 존재한다. 교육 정책은 위에서 아래로 하달되는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 교실에서의 분 단위 선택들이 모여 완성되는 예술이다. 교사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학교의 자율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며, 지역사회가 학교와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시스템이 구축될 때 우리 교육은 진정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라고 해서 교육의 본질이 다르지 않다. 기술에 의존하는 교육이 아닌, 학생과 교사가 함께 주체로 서는 교실을 만드는 일. 그것이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교육의 본질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2026년의 봄, 우리 교실이 단순히 정답을 찍어내는 공장이 아닌, 아이들의 삶이 스스로 부딪히고 성장하는 ‘실존의 공간’이자 배움의 생명력이 꿈트는 공간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별의별 교육연구소장 김대성


미래엔 책이 있는 자리 20260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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