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남자의 밤은 지루하다 01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끝난 관계〉

by bluepeace

그와의 관계는

끝났다는 말이 오가기 훨씬 전부터

이미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남자는 나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의 말은 언제나 부드러웠고

표정은 자주 친절했다.

나는 처음에 그 자상함을 호의로 받아들였다.

누군가 나를 세심하게 바라본다는 감각은

언제나 사람을 방심하게 하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관심은 내가 아니라

내 몸의 일정에 머물렀다.

그는 내 생리일을

내가 기억하기 전에 먼저 확인했고

그 확인은 배려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점점 통제처럼 느껴졌다.


나는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햇빛 아래서 걷고,

한강을 따라 아무 말 없이 걸으며

가끔 눈을 마주치고 웃고 싶었다.

서울 어딘가의 오래된 빵집에 들어가

부스러기를 털어내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하루를 상상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장소는

언제나 비슷한 결의 실내였고

그 공간은

대화를 허락하지 않는 구조로

우리 사이를 밀어 넣었다.


결정적으로 나를 지치게 한 건

관계의 매 순간마다

말로 확인받으려는 그의 버릇이었다.

괜찮은지, 좋은지, 문제는 없는지.

그 질문들은

나를 배려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나를 평가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나는 점점

감정이 아니라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확인에 대답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불편함을 설명해야 하는 설명서가 된 기분.


매력은 그렇게

한 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아주 조금씩,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서서히

닳아 없어졌다.


가장 질려버린 이유는

그의 집요함이었다.

그는 어떤 방식을

마치 의무처럼 반복하려 했고

나의 침묵이나 망설임을

신호로 읽지 않았다.


단 한 번,

정말 단 한 번이었지만

그가 무심하게 보인 행동 하나가

내 안에서 모든 것을 끝내버렸다.

설명할 수 없는 소름이

등을 타고 올라왔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이 사람과는

다시는 손을 잡고

걷고 싶지 않겠구나.


그날 이후

나는 그를 더 이상

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나와 함께 무엇을 나누는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서 무엇을 얻고

확인받으려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끝내자는 말도,

싫다는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내 마음은 그 관계를

떠난 뒤였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함께 걸으며

손의 온도를 느끼고

눈을 마주치고

별것 아닌 이야기로 웃는 것.


관계가

침대 위에서만 증명되지 않고

하루의 골목과 계절과

생활의 결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끝난 관계는

대개 이런 얼굴을 하고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이미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 상태.


그리고 그건

실패가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킨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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