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못 살기 위해 이혼을 선택한다.

〈견디는 사람의 내부〉

by bluepeace


〈견디는 사람의 내부〉


나는 여덟 해를 연애했고, 그 끝에 결혼을 했다.

사람들은 긴 연애 끝에 하는 결혼은 단단하다고 말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단지 오래 버텼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나는 버티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끝까지 가는 사람이 되었다. 선택이라기보다는 관성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결혼 초반의 기억은 흐릿하다.

특별히 나쁘지 않았고, 그렇다고 특별히 좋지도 않았다. 다만 안정적이었다. 나는 그 안정감이 행복의 다른 이름이라고 믿어보려 애썼다. 불안하지 않은 삶은 좋은 삶일 거라고,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관계는 성숙한 관계일 거라고.


남편은 착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무례하지 않았고, 내 하루를 무시하지 않았으며, 내가 아플 때는 약을 챙겼다. 그런 장면들을 떠올릴수록, 내가 느끼는 이 허기를 어디에도 붙여놓을 수 없게 된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은 늘 사람을 고립시킨다.


우리는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처음부터 맞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진 건, 우리는 서로를 크게 오해하지는 않았지만 깊게 이해하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단순한 선의를 가졌고, 나는 복잡한 감정을 가졌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했고, 나는 문제를 그냥 곁에 두고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는 점점 말을 줄였다.

내가 무슨 말을 꺼내도 결국은 설명이 필요했고, 그 설명은 늘 과잉이거나 부족했다. 설명하는 나 자신이 싫어졌고,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될수록 차라리 침묵이 편해졌다. 말하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늘 ‘견디는 쪽’을 택했다.

갈등이 생기면 내가 물러났고, 불편함이 생기면 내가 삼켰다. 누군가는 그걸 성숙함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안에서는 조금씩 마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마모는 소리가 없었고, 그래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조차도.


스무 해가 넘는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이상하게도 분노보다 공허를 먼저 느꼈다. 남편이 미운 감정보다는, 이 삶 전체에 대한 피로가 더 컸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일, 하루를 반복하는 일, 내일을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숨 막히게 느껴졌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래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 생각은 나를 놀라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을 이제야 문장으로 만든 느낌이었다. 나는 타인의 일상에 나를 맞추는 데 능숙한 사람이었지만, 그 대가로 나 자신을 자주 잃어버렸다. 결혼은 그 성향을 가장 극단적으로 요구하는 제도였다.


남편은 나를 살폈다.

내 표정을 읽고, 말끝을 더듬으며, 내가 불편해질까 봐 한 박자 늦게 행동했다. 그의 그 조심스러움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나는 그가 미안해하지 않기를 바랐고, 동시에 내가 이 관계에서 더 이상 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안함이 나를 잠식했다.

미안함은 화보다 오래 남는다. 화는 언젠가 터지거나 식지만, 미안함은 늘 자리를 차지한다. 나는 남편에게 미안했고, 나 자신에게도 미안했다. 그 사이 어디쯤에서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누군가와 헤어지고 싶다기보다는, 아무 관계도 맺지 않고 존재하고 싶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곳,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나를 규정하는 호칭이 하나도 없는 공간. 그런 곳에 가만히 처박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숨이 조금 편해졌다.


그 생각이 나를 비겁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망과 휴식의 경계는 늘 애매했다. 나는 이 삶에서 도망치고 싶은 게 아니라, 잠시 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 남의 기대 속에서 호흡해 왔으니까.


나는 결혼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만 나에게 맞지 않는 삶을 오래 살아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결혼을 통해 자신이 확장되고, 어떤 사람은 결혼 안에서 점점 축소된다. 나는 후자였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만도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있다.

도망치지도, 완전히 머물지도 않은 채. 다만 예전처럼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는 않으려 한다. 이 글을 쓰는 행위는, 어쩌면 처음으로 나를 편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건 누군가를 떠나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그리고 불행하다는 고백도 아니다. 그저 오래도록 눌러 두었던 진실이, 이제는 조용히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더 이상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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