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모든 것 05

고백 & 운명

by bluepeace

서로를 향한 마음이 너무 뜨거워,

함부로 손댔다가는 모든 걸 잃어버릴 것 같은 두 사람이었다.

남자는 그녀 앞에서 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억눌러 온 열망이 터질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달랐다.

그가 내뿜는 온기 하나하나를,

마치 오래 기다려온 운명의 신호처럼

전부 자신의 안으로 끌어안았다.

그가 숨을 내쉬는 순간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듯

모든 감각이 그에게 향해 있었다.


그러다 둘은,

서로에게 단 한 번도 허락해 본 적 없는 어떤 경계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넘어서고 말았다.

어쩌면 평생 하지 못할 것 같던 그 마음의 문을

가볍게, 그러나 돌이킬 수 없게 열어버렸다.


그때 남자는 깨달았다.

이 여자는 그의 모든 망설임을 뛰어넘을 만큼

깊고 진심으로 다가와 있었다는 걸.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우린 왜 이제야 만난 걸까.’


서로의 생각은 더 이상 얕은 감정의 표면을 맴돌지 않았다.

둘은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들의 사랑은 더 짙고 더 뜨겁게

서로의 깊은 곳을 물들여 갔다.


남자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조차 길을 밝혀줄 만큼 단단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서로 닿을 수 없는 시간,

여자는 그 목소리에 기대어 타오르는 그리움을 견뎠고,

남자는 그녀가 보내오는 절대적인 믿음을

스스로를 지탱하는 마지막 줄기처럼 붙잡았다.


둘의 생일은 거의 같은 날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남들에겐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작은 파티를 준비 중이었다.

오로지 둘만의 숨, 둘만의 시선, 둘만의 열기로 구성된 비밀스러운 밤을.


그리고 어느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갈망이

단순한 마음이나 감정의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둘 사이에는 이미

끊어지거나 멀어지는 것이 불가능한,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듯한 운명의 선이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감겨 있었다.


아직 새벽도 오지 않은 시간이었다.

방 안에는 두 사람의 체온이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손을 떼어도, 몸을 멀리해도,

그저 몇 걸음 떨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온기가 뼛속까지 남아 있었다.


남자는 창가에 서서 조용히 숨을 골랐다.

현실로 돌아가려 해도

몸은 아직 그녀 곁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그녀가 그의 가슴 안쪽에

보이지 않는 손을 집어넣고

심장을 부드럽게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그는 창밖을 보며 생각했지만

시선은 어느새 그녀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잠에서 깨어난 듯 보였지만

사실은 한순간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불안해서가 아니라,

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온몸이 지나치게 예민해졌던 것이다.


그녀는 남자의 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을까.

후회는 아니겠지?

날 부담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서

가장 크고 위험한 진실은 따로 있었다.


난… 이미 되돌아갈 수 없어.


그녀는 그 사실을 두려워하면서도

이상하게도 그 두려움이

기분 좋게 몸속에 번져갔다.


남자는 그녀에게 등을 보여준 채

숨을 세 번, 깊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의 마음은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나는 이 여자에게 너무 깊이 들어가 버렸다.


그가 평생 조심해 온 감정이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다는 건

언제든 부서질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런데 그녀는

그가 지켜온 선을 한 번의 숨결로 넘어뜨렸다.


그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에는 묘한 확신과 불안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너… 후회해?”

그녀가 먼저 말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떨림은 조금도 숨겨지지 않았다.


남자는 숨을 멈추었다.

그에게 그 질문은

심장을 꿰뚫는 것과 같았다.


“… 후회하면, 넌 떠날 거야?”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응.

나… 네가 한 발이라도 뒤로 물러나면

그냥 그 자리에 멈춰버릴 것 같아.”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차갑게 굳었던 가슴이 단숨에 뜨거워졌다.


그녀는 그에게 믿음이 아니라

자신을 맡겼던 것이다.

그리고 그 무게가

그를 무너뜨릴 만큼 크고 진실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조용히 들어 올렸다.


“나, 너한테서 안 물러나.”


그녀의 숨이 잠시 멎었다.


“너도 뒤로 가면 안 돼.

우리 둘 다 이제… 돌아갈 길 없으니까.”


그 말은 한순간의 충동이 아니었다.

길게 버텨온 마음이

드디어 입 밖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그러고는 마치 결심을 굳힌 사람처럼

그의 손등에 천천히 입술을 눌렀다.


그 행동은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었다.

그녀만의 방식으로

‘나도 너에게서 돌아가지 않는다’

라는 약속을 건네는 것이었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보다 더 강렬하게,

그녀는 이미 그에게 마음을 바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그를 더 깊이 끌어당기고 있었다.


남자

이 여자는 나를 믿었고,

그 믿음이 나를 움직였다.

내가 무너지는 게 무서웠는데…

이제는 무너지는 게 이상하게 편해졌다.


여자

이 사람은 나를 잡아줬다.

내가 가진 어둠을, 불안함을,

모두 알고도 그대로 안아줬다.

그래서 더 깊이, 더 위험하게

빠져들고 있다.


말이 필요 없었다.

두 사람이 나눈 건

이미 말 이상이었으니까.


조금씩 밝아오는 새벽빛이

창문 사이로 들어오고 있었지만

둘은 서로만 바라보며

그 빛조차 배경으로 밀려나는 순간에 머물러 있었다.


그 새벽에

그들은 사랑을 나눈 게 아니라

서로의 미래를 공유해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둘의 관계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운명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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