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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탈 Sep 03. 2022

고음 불가

꼬락서니도 모르고 욕심부린 대가

# 고음 불가  


왠지 이놈의 앰프가 말썽을 부릴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결국 첫 음을 너무 높게 잡았다. 절정은커녕 도입부도 넘기지 못했다. 말로만 듣던 ‘고음 불가’ 주인공 탄생이다.


산골음악회 발표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기타 동아리도 피해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산골 남성 중늙은이 위주로 구성된 팀에겐 큰 도전임에 틀림없다. 관객인 산골 노인들 취향도 고려해야만 하기에 곡 선정도 중요하다. 


고심 끝에 최종 선정한 곡은 ‘아름다운 사람, 홍시, 솔개’다. 약 한 달간 연습을 했지만, 한 주에 한 번 수업시간이 전부인 그 알량한 연습량으로는 어림도 없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발표 2주를 남기고 한 곡은 동혁이 책임지기로 한다. 아무리 다급하다지만 무슨 배짱으로 그런 결정을 했는지 후회가 막급한 대목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멋들어지게 해내자 의욕을 불태운다. 곡도 솔개에서 추가열이 부른 ‘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로 바꾼다. 할머니들이 좋아한다는 주위 권고가 솔깃하게 다가온 결과다.


노래를 들어보니 기대와는 전혀 다르다. 너무 높고 심지어 느끼하기까지 하다. 원곡 흉내를 내보니 가사보다 기침이 먼저 나온다. 그렇다고 도망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꾀를 내본다. 무리 중 기타 실력이 가장 좋은 친구를 꼬드겨 합류시킨다. 멜로디와 애드리브 연주로 부실한 노래를 감추기 위해서다. 그리고 중저음 스타일로 바꿔 부르기로 한다. 시간은 흘러 발표일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망상이던가. 순서가 다가오자 마음 한편에서 원곡과 비슷하게 부르면 어떨까, 하는 욕심이 불쑥거린다. 무대를 오르면서도 망설임은 계속되는데 인생사 참으로 묘하다. 실패나 실수를 부르는 일에는 반드시 전조현상이 발생한다. 


리허설 때까지도 이상이 없던 기타 앰프가 말썽이다. 시간에 쫓기는 진행팀을 고려해 앰프는 포기하고 마이크를 가까이 대고 첫 곡을 소화한다. 드디어 솔로 순서다. 친구가 연주하는 감미로운 전주를 뒤로하고 첫 소절을 내뱉는 순간 ‘어! 이게 아닌데’ 하는 외마디가 같이 나온다. 


맙소사, 가수 흉내를 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마디 소화도 못하고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코믹 프로에 나오던 ‘고음 불가’를 연출한 것이다. 위기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미 눈치챘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마이크가 이상인 것처럼 애꿎은 마이크를 만지작거린 후 처음 준비했던 대로 무사히 연주를 마친다. 마지막 곡까지 끝내고 하모니카 팀에 합류하는 여유까지 부려본다. 뻔뻔하기 짝이 없다.


공연을 마치고 홀가분하게 앉아 있지만, 지은 죄가 있는지라 주변 눈치를 살피게 된다. 다행히도 대부분은 별 관심이 없는 듯하지만, 몇몇은 각기 다른 반응으로 다가온다. 짝지는 동혁이 맘 상할까 봐 촬영한 동영상을 지우고 있었고, 팀원 가족들이 올린 동영상에도 문제 장면은 삭제한 체 올라오고, “기타 잘 치데!”라며 비아냥이 섞인 격려를 하는 주민도 있다. 결국 알 사람은 다 안다. 


본인 주제도 모르고 욕심부린 대가는 혹독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순발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자기 분수를 알아차리고 그 선을 넘지 않은 채 자족하며 살아가는 게  슬기로운 중년의 삶이다.


사족)

물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야만 하는 일도 있다.

비록 망신살은 뻗쳤지만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올해도 남덕유산 자락에서 감미로운 기타 선율이 들려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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