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해보자! 감미로운 음악, 샴페인, 한껏 아름다운 치장을 한 사람들을
아름다운 시절, 벨 에포크
From 19세기말 To 1914년
개인적으로 '시대'보다는 '시절'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시대는 '서사적'이고, 시절은 '서정적'이라고 확언하기에.
패션과 일본 그리고 프랑스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함축할 수 있다는 심우찬 작가의 책이다. 조르주 상드와 프랑스 상징주의 시에 매료되어 파리 8대학의 대학원 과정을 수료했다는 그는 벨 에포크 시대 프랑스 살롱의 백작부인만큼이나 품위있고 고상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을 거라 내멋대로 상정해본다. 아름다움에 대한 절대적 찬양없이 누가 '패션이 곧 라이프스타일이며, 어떤 면에서는 삶의 정치적 화두'라고 까지 말할 수 있을까.
나도 벨 에포크의 그 관능을 애정한다.
인간이 오로지 아름다움과 기쁨만을 위해 존재했던 그 시절은, 내겐 자연을 닮은 곡선의 철 & 유리, 공예적 장식의 우아한 아르누보와 치환된다. 돌아보니, 나의 벨 에포크 시절이라 할 수 있던 2017년의 유럽 여행의 많은 단면에는 아르누보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때때로 누군가는 내게 '유럽'이라는 문화에 대한 허영 가득한 추종이라고 폄하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우아한 지적 아름다움에 대한 오마주일 뿐이다. 비단 유럽뿐만 아니라, 나는 내가 졸곧 살아온 이곳과 다른 색채의 문화를 존중하고 찬양한다. 인도가 그렇고, 동남아가 그렇고, 이슬람에 대한 궁금증도 그렇다. 그건 경이로운 다른 세상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다.
'아, 저 고루한 이미지!!'
맞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프랑스풍 맞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르지. 우리 주변 아무곳에나 널려 있는 르느와르나 고흐의 19세기 이상주의 화풍 이미지처럼, 그 통속성이 너무 지겨워 구닥다리로 느낄 수 있다. 나도 예전엔 그렇게 느꼈었으니까. 또 실제로 알폰스 무하는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져가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백화점의 등장, 명품의 시초, 스타 마케팅, 상업 예술, 브랜드 홍보 전쟁 등 지금 우리가 일상으로 여기는 이 모든 것들은 아름다운 벨 에포크의 유산들이다. 이 책이 일찌감치 출판되었더라면, 지난 나의 '예술'이라는 키워드로 호기롭게 떠났던 여행들이 더 깊은 이야깃거리들로 훨씬 풍성했을텐데 싶은 아쉬운 마음이다.
* 벨 에포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
①물랑루즈 ②코코 샤넬 ③미드나잇 인 파리 ④콜레트
벨 에포크에 대한 거시적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섬세한 경이로운 시공간이 담겨 있는 귀한 책이다.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생생한 사진 자료들은 내게 많은 영감과 일에 대한 레퍼런스를 건네 주기도 했다.
그럼 이쯤에서 기억하고 싶은 벨 에포크의 상징적 인물 몇 명을 소개하고 싶다.
알폰스 무하가 그린 사라 베르나르의 공인 포스터
①지스몽다 GISMONDA ②사마리아 여인 LA SAMARITAINE ③토스카 LA TOSCA
2001년 영화 [물랑 루즈]에서 여주인공 사틴(니콜 키드먼)의 분장실 거울에 사라 베르나르의 사진이 붙어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 사진 앞에서 사틴은 언젠가 그녀에 버금가는 여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이렇듯 미디어가 지금처럼 발달하기 전인 19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이름을 날리던 '원조 셀럽'이었고 대중에게는 슈퍼스타로, 예술가에게는 뮤즈로 불리던 연극 배우였다. 또한 그녀는 무명이던 알폰스 무하를 세계적인 아르누보 아티스트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알폰스 무하의 아르누보 포스터들
①뿌리는 향수 '로도',1896년 ②모나코 공국의 관광 홍보포스터,1897년 ③페르펙타 자전거 광고,1902년
알폰스 무하의 [슬라브 대서사시]
① 본향의 슬라브인들, 1912 ② 뤼겐 섬의 스반토비프 축제, 1912 ③ 불가리아의 황제 시메온 1세
④ 크로므제르지쥐의 얀 밀리취, 1916 ⑤ 크리지쥐카히의 집회, 1916
예전 프라하 국립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해외 전시 중이어서 볼 수가 없었다. 언제 이 작품 앞에 설 수 있을까.
그레퓔 백작부인은 20세기 최고의 소설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실지 모델이자, 프루스트에게 엄청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이 책의 표지모델)
16세기에 시작되어 20세기 초까지도 명맥을 유지했던 프랑스 살롱은 문화와 생활양식에서 현대의 우리가 연상하는 '프랑스풍'을 만들어 냈는데 그 중심에 상류사회의 우아함을 뛰어넘는 지성과 예술적 식견을 지닌 그녀의 살롱이 있었다. 그녀는 살롱을 운영하며 발레 뤼스와 멜로디 프랑세즈가 꽃피게 하고 마리 퀴리의 라듐연구소와 드레퓌스가 편견에 저항할 수 있도록 지지했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벨 에포크 시대의 진정한 아이콘이었다.
(좌)프루스트와 (우)레날도 안
살롱을 통해 싹트고 가꾸어져온 대화와 사고의 정신은 벨 에포크 시대를 넘어 20세기 최고의 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루스트(1871-1922)를 등장시킨다. 그는 당시 파리 최고 살롱에서 문학적 소양을 닦았고, 사교계의 많은 인간들을 관찰하여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멜로디 프랑세즈'라고 불리는 프랑스 예술 가곡으로 유명한 작곡가 레날도 안은 프루스트의 평생의 친구이자 동성 파트너였다.
*멜로디 프랑세즈(프랑스 예술 가곡) : 문학가들의 아름다운 시에 작곡가들의 음악을 결합한 장르로, 벨 에포크 시대와 살롱 문화, 또 프랑스 문학과 음악의 황금기라는 3박자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만들어낸 결정체였다.
레날도 안의 음악은 프루스트 덕분에 뛰어난 문학적 감성을 갖기 시작했고 프루스트의 작품에서 클래식 음악의 영향은 곳곳에 등장한다. 그러나 프루스트가 세상을 떠나자 레날도 안은, 단 한 곡도 멜로디를 작곡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의 곁에서 어휘를 선택해주고 그가 만들어낸 멜로디에 시를 찾아주던 프루스트와의 기억을 레날도 안은 오롯이 혼자 간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