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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조띠끄 김서윤 Jun 29. 2024

이그조띠끄; 공간디렉터의 1979년식 빈티지 단독주택

서울 아차산 자락, 한 폭의 설치미술같은 예술가의 집을 상상했습니다.



"유럽의 고풍스러움과 빛바랜 잉크 컬러가 

나른하게 충돌하는 집은 얼마나 비일상적일까?"



공간 이그조띠끄[Exotique]는 지중해의 강렬한 햇볕을 담은 빛바랜 잉크 컬러가 뿜어내는 빈티지한 관능미와 예술로 은유하는 공간 디렉터의 단독주택 메종 아뜰리에(maison et atelier)입니다.  




서울 아차산 자락, 1970~90년대 집들이 오밀조밀한 조금은 낙후되고 오래된 동네에 집 곳곳에서 시대를 버틴 나름의 디테일을 찾아 볼 수 있는 작고 오래된 집, 이 곳을 조금은 더 살만한 곳으로 고치고 세월의 흔적이 담긴 빈티지 가구와 이국의 여행길에서 길어 올린 독특한 오브제와 심상들로 공간을 채웠습니다.


때로는 집처럼 때로는 작업실처럼 그리고 때로는 문화예술살롱처럼. '나'라는 오롯한 한 사람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투영하여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을 아우르는 혼성체적인 공간, 이그조띠끄를 만들었습니다.  







청록색 양개 도어를 열고 들어서면 거실 전경이 투명한 중문 유리 사이로 여과없이 펼쳐집니다. 



제가 자연스럽게 눈이 가고 좋아지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항상 이국적이고 오래된 것, 동서양의 양식이 혼재된 비일상적인 것들이 존재했습니다. 단순히 유럽이나 서구권을 향한 동경이 아닌 이슬람, 동남아시아, 인도... 등 익숙하지 않은 모든 세계에 대한 제 관심과 환상들입니다.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공간과 시간, 비일상적인 것에 대한 갈망에서부터 저의 디자인은 시작되죠.   


지난 시절, 일에서 고유한 나다움을 찾고자 했던 바램이 컸었는데 그 진한 갈증들이 이국의 호기심을 향한 낯선 여행으로 어어졌습니다. 때로는 즉흥적으로 때로는 애써 떠난 여행길에서 마주한 수많은 예술 작품과 경이로운 이국의 문화에 앞으로 저를 형언하게 될 생(生)의 키워드와 가장 행복했던 절정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체화한 모든 유무형의 예술적 감각들을 이 집이라는 공간 안에 집약적으로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곁에 두고 내내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반야외 반실내'인 듯한 햇볕과 바람이 자유자재로 넘나 들도록 최대한 열어 놓은 이 거실은 집 안팎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서정적인 시퀀스를 만들어 냅니다. 마치 중정(中庭)처럼, 사계절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작은 마당과 맞닿아 있는 이 공간이 안온한 자연의 미감을 더하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안을 채우는 투명한 크리스탈 샹들리에와 빈티자한 느낌의 가구 너머 거울빛 담긴 슬라이딩 도어가 높은 박공천장 아래 오브제처럼 존재합니다.  


빈티지 인테리어하면 흔히들 가구나 소품만을 연상하기 쉬운데 그것과 더불어 조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어요. 특히나 팬던트 조명은 공간에 높낮이를 주면서 동시에 빛으로써 입체감까지 전달해주며 평이한 공간도 감미롭게 만들어주는 흥미로운 인테리어 요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실의 이 샹들리에를 무척이나 애정합니다. 화려한 형태면서 크리스탈의 투명함 때문에 과해 보이지 않아 어떤 공간, 어떤 색채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며 우아한 공간으로 만들어 줍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서 기독교와 이슬람 양식이 혼재된 건축 양식과 패턴을 보며 "대비된 것들의 충돌이 만들어 내는 극적인 이미지"를 제 작업의 메인 화두로 삼게 되었습니다. 고요한 적막 속에 오렌지 향기만 간간히 감각을 자극하던 그 골목에서 언뜻 들여 다 본 주택의 비밀스러운 중정은 정말 질투가 날만큼 신비롭고 아늑해 보였어요. 유럽의 고풍스러움과 이슬람의 기하학적인 아라베스크 문양이 지닌 독특한 색채가 섞여 이질적인 '충돌'이 오묘한 '조화'를 만들어 내던 곳...., 그날부터 햇살이 쏟아지는 중정이 있는 집에 독특한 세비야풍 타일로 인테리어를 하고 살겠다는 로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예술을 찬미합니다. 저에게 그 예술이란 동시대적인 것보다는 과거 한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낸 미술사에 근간한 작품들을 의미하는 편이죠. 오랜 시간 수많은 유럽의 미술관을 돌며 수집한 화집과 포스터, 미술 엽서 등의 아트 오브제를 함께 스타일링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켜켜이 내밀하게 쌓여져, 저의 개인적인 공간 뿐만 아니라 작업하는 곳 모두 근본적으로는 이국적인 문화에 뿌리를 둔 우아하고 예술적인 공간이기를 추구합니다. 



제 삶와 작업에 대한 온갖 영감은 이국으로 떠난 여행길에서 얻었고 그 여행에 대한 영감은 책에서 얻었습니다. 서재에 그 책들과 함께 유럽과 동남아를 여행하며 벼룩시장에서 모아 온 제 추억의 산물이자 세월을 간직한 이국적인 소품과 오브제를 함께 두었습니다. 햇살, 바람, 사람의 손끝을 거쳐 시간을 표류한 물건들이죠. 오브제마다 담긴 지난 여행의 추억이 달라서 그저 보고만 있어도 제 삶의 밀도가 풍성해지는 느낌입니다.


저를 둘러싼 수많은 물건에는 제 빈티지 서사가 담겨져 있고, 그것들은 삶의 일부가 됩니다. 



머무는 여행지마다 의식처럼 들르던 벼룩시장의 수북하게 쌓여진 빛 바랜 사물들을 바라보면서 거기에 깃들여진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축적된 시간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어요.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그저 알 것만 같은 모호한 느낌이었지만 꽤나 분명했죠. 폐허가 된 유적지가 건네는 허무의 무드를 좋아하는데 비슷한 맥락이었을 것 같아요.


어쩌면 퇴색하고 낡은 물건이 주는 쓸쓸함과 고루함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많은 오래된 것들 중에서 뭔가를 얻는 순간, 그 물건에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찾게 되고 또 나만의 가치를 부여하게 됩니다. 빈티지의 매력은 이미 비밀스런 사연이 있는 물건에 내 비밀까지 덧대며 '유일함'이 되어 가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빈티지에 대한 저의 애정은 벼룩 시작을 구경하는 재미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럴듯한 예술 작품 하나 없이도 지난 이국의 여행길에서 길어 올린 오브제와 심상들로 한 폭의 설치 미술 작품 같은 집을 내내 상상했습니다. 


제가 오마주하는 19세기 상징주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의 집에는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수집한 가구와 진귀한 이국의 물품들이 가득했죠. 그리고 당대 유명한 예술가와 문인들이 모여 밤새 토론을 하고 홈파티를 열었습니다. 이 모든 게 제가 꿈꾸고 있는 "나의 공간"에 대한 개념이고 생생한 레퍼런스였습니다.


시선끝에 항상 책이 머무는 집,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자유롭게 유희할 수 있는 살롱같은 예술가의 메종 아뜰리에를 꿈꿉니다. 



복층과 다락, 마치 지중해 석회 동굴같은 고요한 공간, 그 평온한 침묵 속에 머무릅니다. 비오는 날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한껏 나른해지는 낭만도 느낄 수 있어요. 서사(敍事)와 서정(抒情)을 아우르는 빈티지의 속삭임이 자연과 함께 나즈막한 울림을 남깁니다.



거실, 방, 복층, 다락방... 이렇게 전통적인 구조로 공간이 나뉘어져 있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이 모든 장소들이 유기적으로 (또한 형태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거실과 복층 다락은 투명하게 반쯤 열린 유리창으로, 서재와 복층은 계단으로 그리고 위에서 보면 오픈된 구조의 복층으로 서재와 거실이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복층 계단 끝과 연결된 (철거 후 남겨진) 기존의 다락은 작업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어찌보면 이 조각조각의 여러 공간들이 하나의 공간인 셈입니다. 그렇게 컨셉은 존재하되 표현 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규정 짓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이길 구상했습니다. 


같은 철학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과 연결되고픈 제 욕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죠. 공간은 유기체이기에 이렇듯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이 반영되어야만 그 공간과 애틋한 관계가 맺어지고 정서적으로도 풍요로운 밀도의 서사가 생긴다고 확신합니다.



빈티지한 공간을 꾸밀 때는 색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명도나 채도가 높은 비비드 컬러나 모노톤보다는 다소 톤다운된 깊은 색조를 선택합니다. 뭔가 햇살에 한 톤 바랜 듯한, 해가 훝고 지나간 해변가의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 '지중해'를 깊이 갈망하는데, 이런 색조톤들은 그 지중해의 강렬한 햇볕을 담은 빛 바랜 잉크 컬러가 뿜어내는 빈티지한 관능미와 고급스러움이 느껴져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공간에서 시각적인 중심을 잡아줄 인상적인 시그니처 오브제(그것이 가구든, 조명이든, 식물이든)를 선택하여 힘을 싣고 나머지는 조금 느슨하게 펼쳐내며 각각의 모양과 색의 이미지들이 만들어 내는 강약의 리듬감을 즐기는 거죠. 어떤 공간이든 그 안에서 바라보고만 있어도 그저 좋은 풍경 하나쯤은 지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아침마다 복층 창으로 바라보는 이 거실의 풍경이 그것입니다.



블루 타일과 블루 소품으로 청량한 컬러 포인트를 준 화이트 색조 주방 그리고 스페인 남부 이슬람풍 타일과 독특한 인상의 조적 욕조는 낯선 이국의 장소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공간에 가장 많이 신경 쓴 부분 중 하나가 빈티지한 요소를 극대화할 수 있는 타일입니다. 유약을 입힌 오늘날 형태의 타일은 페르시아 문화권에서 중국 도자기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탄생했으며 오스만 제국 시대에 이르러 화려하게 채색한 타일을 보편적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서유럽으로 역수입되어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에서 타일을 제조했어요. 그러니 이 인테리어 자제 또한 제가 지향하는 문화적 혼성체와 맞닿아 있는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타일을 건축 자재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데 다른 어떤 요소보다 예술적 오브제가 될 수 있는 미학적 가치를 지녔습니다. 



지중해 뉘앙스의 빛바랜 청록색 양개 도어를 열고 들어서면 어떤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청록색 양개 도어는 이 공간의 아이덴티티 같은 요소입니다. 외부의 골목과 집의 경계를 분명하게 나누기 위해, 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을 위해 임팩트 있는 문을 달았습니다. 아차산 자락을 향해 길고 좁다랗게 흐르는 이 골목길과 마주한 저의 공간이 이질감 없이, 그렇지만 색다르게 녹아듭니다. 


'집은 이래야 한다'라는 고정 관념과 유행하는 인테리어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저의 미학과 욕구를 가장 편안하게 담아낸 집의 구조 속에서 아끼는 사물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이 '미美'에 온전한 가치가 맞춰진 이 공간이 생활하기에는 다소 불편할 수 있겠지만 유미주의자인 저에게는 '여기엔 이게 가장 잘 어울리니까', '이렇게 놓는 게 더 예쁘니까'.... 이 대답이 모든 이미지를 견인해 나갑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추구하는 저의 라이프스타일과 관점을 고스란히 담았기에 저에게는 분명 '좋은 집'이 된 셈입니다.





Inspiration Journey to EXOTIQUE


우리가 낯선 장소에 깃든 문화를 오감으로 즐기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누군가의 집을 구경하는 것도 같은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취향으로 선택된 수많은 사물들 하나하나에 깃든 한 사람의 고유한 공간을 경험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공간이 가져다주는 예술적이고 사색적인 힘을 믿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정서적 안식처가 될 만한 그런 곳이면 얼마나 근사할까요.


우리에게 익숙했던 일상을 벗어나 생경한 비일상적 공간으로 마치 먼 여행을 떠나 온 것처럼, 이그조띠끄로 영감의 여행오세요. 이 공간에 어울리는 향을 사르고 음악을 틀고 책을 펼쳐내며 고요히 차든 와인 한잔이든 기꺼이 내어 줄 수 있는 예술적 영감과 철학적 공감의 삶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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