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아름답게 잘 지켜내면서도, 현재 살고 있는 이들의 위트와 유머러스함을 담아내는 데 귀재인 프랑스 서부에 위치한 낭트. 친구들과 낭트 시내를 걷다가, 우연히 1919년부터 시작됐다는 'DEPUIS 1919'에 이끌려 한 서점, librairie coiffard(쿠아파르 서점) 앞에 멈춰 섰습니다.
보통의 작디작은 동네 서점들과는 다르게, 마주 본 건물의 2층에 달하는 공간까지 함께 갖고 있는 것을 보며 '잘되고 있는 서점이구나'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존도 아니고, 대형 서점 체인점도 아닌 낭트의 쿠아파르 서점이 이렇게 큰 규모로 시내 중심지에 자리 잡을 수 있게 한 비법이 무엇일지 호기심을 장착한 채로 서점에 들어갔습니다.
진열된 방식에 차이가 있나? 했지만 여느 서점들과 비슷한 진열 방식으로, 특별할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눈에 띄는 분홍색, 파란색 하트들이 책들을 수놓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갔던 프랑스인 친구에게 이 하트 택들이 다 왜 붙어 있는 건지 아냐 물어보니 직원들이 좋아하는 책들에 표시를 해둔 것 같다 하여 하트 택에 뭐라 쓰여있는지 자세히 보니 'coup de cœur de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해석을 찾아보니 '00가 반한/심쿵한'이란 뜻입니다. 쿠아파르 서점의 직원들 각자의 마음을 훔친 책들을 서점을 방문한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보고 아마존이나 대형 서점에선 하기 어려운 동네 서점만의 강력한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명 안 되는 직원들이니, 직원들마다의 책 취향을 알 수 있고, 내가 평소 좋아하는 책에 Chloé의 하트택이 있다면, 또 다른 Chloé의 하트택이 붙여져 있는 책은 믿고 구매할 것입니다. 나와 책 취향이 같다는 유대감을 갖게 되고, 그의 추천은 온라인 서점의 이름도 취향도 모르는 아무개들의 리뷰들보다 더 따르기 쉽습니다.
자연스럽게 서점 직원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취향을 함께하는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입니다. 책을 읽고 싶긴 한데 어떤 책을 고를지 고민이 될 때, 혹은 책 하나를 사러 갔는데도 나와 같은 취향의 직원이 추천하는 또 다른 매력적인 책들을 볼 때 주저 없이 하트 택들을 따르게 됩니다. 프랑스어를 잘 모르는 저조차도 '이런 식이라면... 책을 한 권만 사고는 못 나오겠는데?' 싶은 생각이 들었으니, 쿠아파르 서점이 '대 아마존 시대'에도 문을 닫지 않고 1919년부터의 역사를 이어올 수 있는 비법의 답은 찾은 것 같습니다.
아마존은 방대한 데이터 기반 추천으로, 낭트의 쿠아파르 서점은 직원들의 추천 택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합니다. 철저히 이성적으로만 생각하면 내가 그동안 클릭하고 망설였던 책, 구입까지 갔던 책 등 실제로 이루어진 행동 패턴을 추적해 '내 취향'에 맞춰주는 아마존의 추천에 따르는 것이 구입 후 내가 만족하며 볼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쿠아파르 서점 직원들의 직원마다 다른 글씨체로, 구겨지기도 하고 낡기도 한 손때 묻은 추천택이 더 마음을 움직입니다.
우리는 소비를 결정할 때 이것저것 따지며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 같지만, 7-80% 이상은 감성적인 판단으로, 합리적이지 못한 결정들을 내린다고 합니다. 쿠아파르 서점 직원 Chloé의 마음을 훔쳤다는 꼬질꼬질한 하트 택이 내 마음까지 훔치는 것입니다.
온라인에선 경험할 수 없는 날것의 아름다움, 대형 서점에선 형성하기 어려운 직원과의 유대감이 동네 서점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고, 무려 아마존과 경쟁해도 뒤지지 않는 감성적인 경쟁력을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오프라인 공간에서 쿠아파르 서점의 매력들을 탐구하며, 이렇게 센스 있는 곳은 온라인에선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져 인스타 계정을 찾아봤습니다. @librairiecoiffard 계정에 들어가 보니, 역시나 그들은 매력발산의 귀재들입니다.
쿠아파르 서점은 인스타 계정에서도 직원들의 추천 작품들을 콘텐츠화시켜 소개합니다. 오프라인에서는 알아볼 순 없었던 직원 한 명 한 명의 얼굴까지 알 수 있게 되면서, 더 강력한 유대감을 갖게 합니다.
특히나 앞서 계속 소개했던 그 Chloé가 이 Chloé였구나! 하며 내적 반가움에 흥분까지 됩니다.
이외에도 직원들이 책과 함께 행복한 웃음들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보며, 왠지 모르게 함께 웃게 됩니다. 이곳의 책들을 사랑하는 순수한 매력들을 느끼며 '내가 낭트에 살았다면 단골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었겠다' 생각합니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은 있지만, 서점 주인이 되고 싶다는 꿈이 없었음에도 내가 서점을 차린다면 쿠아파르 서점처럼 인간미 넘치고 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