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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그리고 이혼숙려캠프

빛이 되는 관계를 위하여

by Johnstory

조용한 연휴 마지막 날 밤, 우연히 아내와 이혼숙려캠프를 보게 되었다. 끝까지 시청하지는 않았으나, 생각보다 오랜 시간 남의 부부 이야기에 몰입했다.



남녀 간, 특히 부부의 문제를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옳고 그름을 논하기엔 어려움이 있으나 역시나 이 프로그램도 자극적인 요소가 많이 담겨있었다. 보이는 것만 보고(앞뒤 매우 긴 맥락들이 있고 여러 사건들을 통해 형성된 그들의 사고와 어린 시절의 성장과정 등을 알지 못한 채) 상황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아내와 난 부부들의 스토리 전개를 빠져들 듯 시청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좋은 말을 하고 좋은 생각을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 남편이나 아내나 하루동안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저마다의 고충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 가정으로 돌아왔을 때 새로운 감정으로 서로를 마주하기 위해서 많은 경우 의도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서로가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수고했어, 고생했어, 오늘도 고마워,라는 말을 해주는 것이 부부의 관계와 가정의 분위기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



우리는 어땠을까.

아내는 어떠했을까.



아내는 연애 때부터 표현을 잘하는 여자는 아니었다. 7살의 나이차 때문이었는지 그런 표현이 없어도 내 눈엔 그저 애 같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그에 대한 불만 없이 평온하게 살아간다. 오히려 그런 감정표현은 내가 더 잘했다. 이제는 무던하고 기복 없는 아내를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 TV를 보면서 유독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소음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아내는 그런 내게 최적의 파트너였다.


받아들이기 나름이겠다 싶었다. 지금의 상황을 해석하는 것은 나의 역할이니, 나와 우리 부부에게 유리한 해석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아니겠는가? 억지로 이해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면, 가정의 평화를 위한 선하고 의도적인 노력이라 할 수 있겠다. 감정의 동요 또한 미미한 수준의 아내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감정의 파고가 큰 남편과 사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아내는 잘 버텨냈다. 난 그게 너무 고맙다.




어떤 상황에서든 견디지 못할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당사자와 주변인들 모두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스스로 이겨내는 것이 어렵고, 부부가 함께 극복하는 것이 어려워 상담을 받고자 방송에 출연하는 결정을 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시도라고 본다. 누군가는 중도하차할 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회복한 후 더 최악에 이르기도 하겠으나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자 애쓰는 부부에게는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을 것이다.


부부에게는 서로의 존재가 축복이고 감사이며, 나의 가장 추한 면과 밝은 면 모두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의 오랜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로 남기도 한다. 변함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호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일방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한쪽만 늘 참으며 살 수가 없다.


가끔 난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사람 말고 또 누가 나와 살아줄까?




도움이 된다. 아내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종종 하게 된다. 그러면 절로 감사하다. 9시가 다 되어 퇴근해도 아내는 늘 나의 저녁을 챙기고 술안주도 준비해 준다. 주말 아침 등산을 다녀온 내가 막걸리를 한두 통 사 오면 김치전도 부쳐준다. 승진이 누락되어 새벽까지 술 마시고 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집에 온 그날도, 서럽게 울던 나를 말없이 안아주던 아내였다. 은행을 퇴사하고 이직을 한다 했을 때 모두가 반대해도 아내만은 내 편이 되어주었다. 다툴 때도 있었으나 아내는 내게 늘 좋은 것을 주었다. 그것을 난, '정말 좋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관계의 화학작용은 성혼선언문에 기초하지 않는다. 서로의 존재에 대한 인정과 감사함이 그 시발점이 된다. 내가 모르지만 상대가 주고 있던 '좋은 것'을 보게 된다면 이런 TV프로그램 보다 더 강력한 솔루션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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