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 아내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은행을 퇴직한 후로 두 아이의 육아에 전념하면서도, 경력에 대한 얘기를 종종 하던 아내였다. 은행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아내가, 은행을 그만두고 느꼈을 허전함을 왜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이제 두 아이가 어느 정도 각자 생활을 해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다시 사회에 기여하고 경제활동을 하고자 하는 욕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주제가 '사회복지'가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이전에 비하면 드문 일이 되긴 했으나, 은행에서 파트타임으로 채용하기도 하고 있으니 그런 일들을 찾아보겠지 생각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어느 날부턴가 아내는 실버산업에 대한 이야기들을 종종 했다.
시에서 건립하는 요양보호시설이 생기고,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싶다고 했다.
또 얼마 전에 태어난 조카의 영향인지, 육아도우미 교육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궁금했다. 뒤늦게 하는 공부에는 목적이 분명해야 질리지 않을 텐데 갑자기 이런 노선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말이다.
아내는 나이 상관없이 혼자 힘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고 했다.
책 보고 글 쓰고 재택근무에 익숙해져 있는 나와는 좀 다른 방향이었다. 아내가 하고자 하는 일 모두, 스스로의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본인도 나이가 들어가는데 오래오래 하고 싶다니, 갑자기 무슨 사명감이 일렁인 것은 아닐 테고 더 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겐 그런 선입견이 있었던 거다. 크게 봤을 때 사회복지의 영역은, 개인적 소명의식과 업무에 대한 진실된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선입견 말이다. 더 나아가 그런 마음이 없다면, 관련 업무에 종사하면 안 된다는 철학마저 갖고 있었다. 다 같은 일의 영역에서 해석해 볼 여지가 있었을 법한데, 내게 있어 사회복지라는 학문 혹은 국가사업의 영역은 '뜻'이 있는 이들이 할 수 있는 분야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아내의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이제 두 아이가 크고 있고, 한동안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고도 중요할 텐데 사이시간을 활용하여 일도 하고 돈도 벌고 보람도 느끼며 자녀 양육도 하는, 그리고 가계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격을 취득해 두면 언제든 나의 선택으로 일을 할 수도, 쉴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감사한 영역의 일이라고 했다. 아내다운 생각이긴 했지만, 현실에서의 해당분야 종사자들의 상황 그러니까 고용과 업무환경 및 난이도 등등의 구체적인 상황들은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차 알아서 잘 헤쳐나가겠다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자격 취득에도 조건이 따르는 시험이기에, 적정기준의 수업을 듣고 학점을 취득해야 한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있고, 중간중간 과제도 있다. 물론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수업이기에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공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집에서든 도서관에서든 근처 커피숍에서든 내 편한 곳에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관련 교육기관에 유선상담도 받아보고 온라인 문의도 해가면서 아내는 차곡차곡 준비했고 주 1회 새롭게 업로드되는 강의들을 듣고 있다.
공대출신 아내가 사회복지라니.
법대로 전과하여 사법시험을 보고자 했던 정치학도인 나보다 더 개연성 없는 선택을 한 셈인데, 모쪼록 순항하길. 그리고 내년엔 원하는 자격을 꼭 취득할 수 있길 바라본다.
아이 둘을 낳고, 이제 은행을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하며 퇴직을 권유한 6년 전의 내가 떠오른다. 만약 그때 그냥 은행을 다니라고 했다면, 그래서 지금 아내가 일을 하고 있다면, 자신의 커리어를 잘 만들어가고 있음에 만족하고 이런 고민은 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 물론 사람 일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라지만, 평생 은행원이 꿈이었던 아내의 퇴직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자신의 커리어를 잘 이어나가고 있었을 거란 강한 확신이 든다. 두 아이의 양육문제가 있었겠지만, 이는 또 어찌어찌 잘 풀어나갔겠지. 나의 재택근무와 육아휴직을 적절히 활용해 가면서.
역시 선택하지 않은 것,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상상은 무용하다.
그때의 내가 이런 선택을 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감사함만을 가지면 되는 것을. 그리고 곧 마흔을 바라보는 시절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그녀를 응원하며, <<아내관찰일지>> 총 30화의 연재를 마무리해 본다.
*한동안 쓰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연재라 함은 꾸준히 지속해야 하는 것인데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에, 이 글의 주인공이 되어준 아내에게 참 미안합니다. 아내를 관찰하며 글을 써보자 했던 취지도 후반엔 저의 생각을 더 많이 담아낸 것 같아 길을 벗어났다는 혼란스러움이 커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별것 아닌 30화 연재를 또 마무리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뿌듯함이 몰려옵니다. 후속작으로 <<9세 아들 관찰일지>> 와 <<11세 딸 관찰일지>> 를 계획해보려 합니다. 언젠간 소설을 써보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관찰력을 키우는 일환이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관찰보다 해석이 많았음은 반성해야 할 대목입니다. 비록 제목을 확정 지은 것은 아니지만 두 아이에 대한 관찰일지의 시작은 이번 여름방학이 적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가 되든, 가끔 들러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7살 연상의 남편을 참아주고 달래고 조련하면서 함께하는 아내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