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취업과 이직과 퇴사를 반복하며 얻은 것은, 나의 발견이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바라는지, 누구에게 사랑받고 미움받으며 또 어떤 삶을 기대하는지 일을 내려놓고서야 알게 되었다. 나의 지난 경험은 누군가에게 어떻게든 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오만함도, 늘 나의 경험은 소득 없이 무용한 것으로 남게 되었다는 비관도, 한동안 집착하던 성공의 모습도 결국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앞에서는 연기처럼 흩어졌다. 어쩌면 이런 발견의 경험을 하는 이가 내 예상보다 더 적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일을 어제와 같이 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중 있게 반복되는 업무가 되고 그것이 생활의 근간이 되는 경제력이라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보다 중요한 것은 고장 나지 않은 기계처럼 단계별로 움직이는 시스템일 것이다. 나는 지난 20년간 시스템을 아주 잘 운영해 온 감독관이었다. 그 덕에,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감사한 인연들 덕에 삶의 안정을 꾀할 수 있었고 가정을 이뤘다.
마음만은 이십 대인데, 곧 반백살이 될 터이다. 이만큼 와보니 이제야 빛나는 진실들이 드러나는 듯하다.
빛난다 생각하며 지냈던 커리어의 뒤에서 늘 나를 지지해 준 것은 사회적 갑옷 안의 내 모습이었다. 그리고 매우 빈번하게 내 모습과 커리어가 화학반응하게 되는 우연이 발생하는 날엔, 유독 강점이 돋보이거나 바닥을 드러냈다. 대게 전자는 소수였으나 후자의 다수로 인해 나는 더 단단해졌다. 그러면서 인정을 배웠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 부족한 것은 때로 내가 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을 다해도 메워질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대로 두어도 될 것을, 어떻게든 채우고 메우려 했던 발버둥의 연속이었다.
비로소 여유가 생김은, 남은 생은 이제 부족한 나인채로 살아도 괜찮음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를 만나도 나의 강점을 힘주어 부각할 필요가 없어졌다. 숨기고 싶은 모습을, 그건 내가 아니라고 변명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리고 세상의 연과 나의 흔적 그리고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궤적들의 끈으로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게 될 것이다. 내가 취해야 할 것은 알맞은 때에 내게 올 것임을 믿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당장 눈앞에 판타지처럼 펼쳐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 머릿속에 있던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현재진행형인 나의 커리어의 끝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알게 된 지금의 이 감정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내면의 빛으로 충만한 삶의 의미를, 그 길을 미리 바라보고 있는 듯한 감정을 먼저 느껴본 이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두 아이에게 알려주어야 하는 진리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