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 관점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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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심청전을 읽고 오기!
다 읽고 왔나요?
못 읽은 독자를 위해 심청전 줄거리를 제공하오니 꼭 읽으시길..!
<줄거리>
심청전은 눈이 먼 아버지 '심봉사'를 극진히 모시는 효녀 '심청'의 가슴 아픈 사연으로 시작해요. 심청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어머니를 여의고, 앞 못 보는 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삯바느질 등으로 아버지를 정성껏 보살폈습니다.
어느 날 심봉사가 물에 빠졌을 때 지나가던 스님이 구해줍니다. 스님은 공양미 삼백 석을 절에 바치면 심봉사가 눈을 뜰 수 있다고 말하고, 심봉사는 순간적인 욕심에 공양미를 바치겠다고 약속해 버려요. 이 사실을 안 심청은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몸을 뱃사람들에게 팔아 공양미 삼백 석을 마련합니다. 뱃사람들은 심청을 풍랑을 잠재우는 제물로 바치기 위해 깊고 거친 바다 '인당수'로 데려갔고,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 달라 빌며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하지만 심청의 깊은 효심에 감동한 용왕 덕분에 심청은 죽지 않고 연꽃을 타고 다시 세상으로 나와 황제와 결혼하여 왕비(황후)가 됩니다. 심청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전국의 맹인들을 초청하는 큰 잔치를 열었고, 그 자리에서 심봉사를 만납니다. 딸을 만난 기쁨에 심봉사는 눈을 번쩍 뜨게 되고,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다 읽으셨나요?
시작에 앞서 '심청이는 정말 효녀인가?'에 대해 나의 생각을 간단히 적어보세요.
그 이유도 생각하면 더욱 좋습니다!
다하셨나요?
그렇다면 진짜 시작하겠습니다.
심청전의 주인공인 심청이를 우리는 당연하게 '효녀 심청'이라고 배워왔습니다.
이 고전 소설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효'의 의미를 다양한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함께 깊이 있는 대화를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정말 심청이가 효녀인가에 대해 '나'는 어떤 답을 낼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효녀'라는 전통적 관점에서의 심청
심청전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로 추측됩니다. 조선시대의 핵심 덕목이었던 유교적 가르침에서 '효'는 부모에 대한 공경과 사랑을 바탕으로 살아서는 봉양과 공경, 돌아가신 후에는 예로써 장례와 제사로 이어지는 매우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심청이는 앞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 심 봉사를 헌신적으로 봉양하고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심청이를 효녀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정성껏 보살핌 : 생계를 책임지고 아버지를 돌보는 헌신적인 태도(예시: 끼니를 챙기고, 빨래를 하며, 아버지의 눈과 수족이 되어 생활을 보조함)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 위한 희생 :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인당수에 몸을 던짐.
왕비가 된 후에도 효행을 지속함 : 아버지와 재회하기 위해 잔치를 열고, 결국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여 봉양을 이어감.
'효'의 확장된 관점에서 다시 보는 심청
하지만 '효'의 개념은 시대, 사회, 종교, 가치관 등 다양한 외적 환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과연 봉양과 공경에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효를 다했다'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공자는 효의 시작을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즉 부모님께 받은 몸을 손상하지 않는 것에서 찾았습니다. 살아계실 때 예로 섬기고, 장례와 제사도 예로써 모시라 했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효'를 이야기할 때,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은 대단히 큰 불효로 여겨집니다. 특히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자살'이나 '자발적인 희생'일 경우, 부모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는 '가장 큰 불효'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심청이를 '불효녀'로 볼 수 있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봉양해야 할 부모보다 먼저 죽음 : 아버지가 의지할 사람을 세상에 남겨두지 않고 떠나, 심 봉사가 또 다른 고통과 어려움에 처하게 만듦.
스스로 목숨을 버림: 이는 공자의 가르침인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어기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는 가장 큰 불효 중 하나로 간주됨.
관점의 재구성
지금까지 심청이가 '효녀'인가에 대해 상반된 관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가치'라는 것은 시대적 배경, 사회적 규범, 종교적 신념 등 다양한 외적 환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변할 수 있습니다.
만약 무조건 심청이를 '효녀'라고만 가르치고 받아들인다면, 이는 "부모를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희생, 심지어 목숨까지도 무조건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위험하고 잘못된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정답에 이유를 꿰맞추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심층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를 하며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얻는 힘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심청이는 효녀다'라는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닌 '심청이가 정말 효녀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가며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 이제 독자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여러분은 심청이를 '효녀'라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불효녀'라고 생각하나요?
효녀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생각하나요? 불효녀라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며, 심청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까요?
다음 브런치 주제는 '흥부는 좋은사람일까?'입니다.
다음 글을 더 재미있고 풍성하게 읽기 위해 '흥부와 놀부'를 다시 한번 읽고 오는 것을 추천합니다.
더욱 깊이 있는 생각의 대화를 하실 준비가 되었다면 다음장으로 함께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