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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름 Apr 08. 2022

나는 분류 동물입니다.

 -'나는 특별하다'고 주장하는 본인에 대한 고찰

 "그래그래. 서른하나. 뭐 하나 내세울 거 없는 백수. 이러면 되냐."

  이렇게 되면 스스로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카페에서 세 시간 동안 잡코리아나 사람인 같은 걸 들여다보고 있으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된다. 

 "밥이나 먹을까"

 지갑을 열었다가 짜증이 치밀었다. 사천원. 분명 만 사천원이 들어있어야 할 터. 일주일 전, 용돈을 받을 때 부모님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나는 한 동안 분에 못이겨 지갑을 째려보다, 가방에 넣었다. 

 불현듯, 몇 년 전에 기사에 떴던 어떤 가수가 떠올랐다. 월세 때문에 수상을 하자마자 트로피를 팔아치운 아티스트. 그게 퍼포먼스인지, 진심이었는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게 진실이었다고 믿는다. 체감상, 상은 상이고, 당장 급한 건 급한 거다. 유감스럽게도 인생엔 스킵이 없다.


[낙동강 오리알-분류가 안 되는 경우, 사람은 불안감을 느낀다]

 "카테고리에도 없는데 어떡하라고"

 구인사이트에 가보니, 졸업한 학과에 맞춘 카테고리가 있었다. 근데 눈씻고 찾아봐도 내가 졸업한 과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기타사항에 내 과를 적어냈다.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여태 누가 물어보면 '프리랜서'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직종으로 나를 소개했었다. 물론 뚱딴지 같은 소리는 아니다. 나는 2018년, 2019년 내 대본으로 연극을 두 번 올렸고, 프리랜서로 기획 일을 세 번이나 맡았었다. 그 중에는 강사일을 겸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졸업 후에 같이 쌓아뒀던 결과물이다. 그때의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너무 만족했고, 그들과 같이 쭉 함께할 줄 알았다. 이들이면 정말 나는 계속 하고싶은 것을 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꽤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마땅히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그들이 다른 일을 한다고 하나둘 떠났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일은 어떻게 따낸 거야? 나도 노하우 좀 알려줘."

  그들은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을 하고 씩 웃었다. 나도 나름대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대로 처망할 수는 없었기에, 언어로 쿠션을 만들어 이리저리 돌려가길 반복했다. 혹시 아는 선배가 있느냐는 둥, 혹시 자리 남는 곳은 없느냐는 둥. 구차해도 내 자리가 없어지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정보를 캐내려 애썼다. 하지만 그들은 모아이석상마냥 꿈쩍도 안했다. 결국 나는 그들에게서 아무런 정보도 들을 수 없었다. 학교를 졸업한 지 2년이 될 무렵, 나는 일에 대한 센스도, 정보도, 선배도 없었다. 분위기상 '제발 나도 껴줘'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능력으로 일을 따낸 것이고, 만약 여기서 함께하자 제안한다면, 조별발표에 무임승차하는 경우가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사실 프리랜서라는게, 체감상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정말 모든 커리어가 끝난다. 그 후엔 기약도 없이 인맥과 아는 사람들을 총동원해야 겨우 일이 하나 떨어진다. 매일이 일을 따내기 위한 경쟁이며, 인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그만큼 언변도 뛰어나야 한다. 또한 나를 매일매일 세일즈하는 것도 전문화 되어야 한다. 티비에서는 "프리랜서"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지만, 일을 알아볼 때도, 일을 할 때도, 일을 마칠 때도 '이제 그런 일을 맡을 수 있을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막막하기만한 게 프리랜서의 삶이다. 세 번의 기획을 연달아 맡고, 밤낮으로 일을 하고난 후에 번아웃으로 한 달 정도를 쉬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다들 쉬니까, 다들 힘들잖아, 라며 자위했던 것도 잠시, 난 어느새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있었다. 나는 학교를 갓 졸업한 연극작가였고, 기획자였고, 강사였다. 아 물론, 현재는 어느 분류에도 속하지 않는 백수이다. 참 핍진성 없는 인생이다.

 

[분류가 사람을 잡아먹는 법]

 친구가 MBTI를 맹신한다. 마음은 바빠 죽겠는데 카톡으로 자꾸 자기는 F니, 상대는 완전 P니 한다. MBTI, 저 안에 내가 꾸깃꾸깃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뭔가 온 몸이 꺾이고 뒤틀리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친구에게 '나는 MBTI를 싫어하는 편'이라고 이야기하질 못했다. "내 앞에서는 MBTI 금지"라고 선언해버리면 친구가 쿨한 척하는처럼 볼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싫어하는 이유까지 들어가며 친구와 말다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눈치를 많이 보고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인프피'인 성격의 나는, 결국 'ㅎㅎ완전 공감나도 인프피인데'하고 메시지를 쳤다. 영혼이 1도 함유되있지 않은 가공 멘트였다. 나는 MBTI를 맹신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뉴스에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MBTI 취업시장에 도입'이라니. 그냥 우리끼리 히히덕대는 그런 거 아니었냐는 둥 이거 신빙성이 떨어지는 검사 아니었냐라는 둥,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누가 나한테 "너는 엔프피인지 인프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던 게 기억 났다. 주변에서는 내가 빼박 인프피랬는데, 사실 이 성격이 회사에서 제일 꺼리는 성격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MBTI는 언제든 환경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건데, 사람들은 이걸 알면서도 이거에 열광하는지 말이다. 이유를 어디서 찾을 필요도 없이, 이게 제일 편한게 그 이유다. 이를테면, 아귀가 딱 맞아 깔끔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에서 오는 쾌감 말이다. 알아서, 잘, 깔끔하게, 센스있게(요즘 말로 '알잘딱깔센'). 분류가 사람을 잡아먹는 법은, 이런 편의성에서부터 시작한다.


[나는 특별하다, 생떼 써보기]

 "나는 한 가지로 정의될 수 없어. 무엇보다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회사의 맞는 사람으로 나를 끼워 넣는 영업제안서. 줄여서 '자소설'을 쓰면서까지도 나는 이런 생각을 놓지 못했다. 자소서는 이렇게 쓰지만 나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자소서는 굵고 짧게, 두괄식으로 나를 표현해야한다. 그렇기에 너무 길어서도, 짧아서도 안 됐다. 글에서 나오는 임팩트가, 회사를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는 나의 전부가 되는 세계에서, 내 자리는 당연히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자소서와 자존심 어딘가에 빠져 있던 와중, 내가 좋아하는 부류인 '시티팝'풍의 노래가 카페에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네이버 앱을 켜서 음악 검색을 눌렀다. 휴대폰을 든 팔을 위로 쭉 뻗어 카페 천장에 있는 스피커에 최대한 밀착했다. 곧 노래가 결과로 떴다. 나는 그걸 캡쳐해서 저장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하다. 나는 분명 내가 어떤 한 주제로 분류되는 것이 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가수는 누군지, 장르는 시티팝인지 아닌지까지 분류하고 있었다. 마치 누가 내 무릎을 살짝 쳤을때 반사적으로 튀어오르는 신경회로같은 신기함을 느꼈다. '당연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게 왜 당연하지?' 하는 그런 느낌. 그래서 나는 내가 분류 안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인지했다. 그렇게 분류가 짜증났던 내가, 다른 것을 볼땐 분류부터 하다니. 그거야 말로 참 버라이어티하다.


[분류에 거역하는 연습 - 분류 사이에 들어가지 않을 이유]

 스스로를 분류하지 못하면 살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계속해서 구분하고, 구별하며, 차별할 것이다. 자소서에는 '취미', '좌우명','내가 회사에 들어가면 발휘될 장점' 따위를 분류에 쓸 것이고, 회사도 그것에 상응하는 결과를 줄 것이다. 거기에는 글을 쓰는 필자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자신이 스스로를 분류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분명, 자소서에는 짧고 간결하게 나를 써야 회사에서 봐줄 것이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해 난생 처음 내 공연을 올린 일, 책을 읽고 나를 발견하는 일, 힘들고 많은 역경이 있었지만 행사가 진행됐을 때에 느끼는 보람이 꿀맛인 기획 일등을, '독서'와'작문' 그리고 '프리랜서 '라고 분류하고 싶지는 않다. 도저히 억울해서 납득을 못하겠다. 때문에 나는 이 글을 쓴다. 사회에 타협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마음만큼은 분류에 거스르는 발칙한 상상을 해보기 위해서. 이런 '나'라는 분류가 조금이라도 '행복'하기 위해서.

 "그래서 나를 제대로 소개하려면 한 달도 넘게 내 이야기만 해야 할걸?"

  자소서는 쓰고 집에 간다는 것이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수정의 수정을 반복하면서 내 자소서는 A4 3장에서  스무 줄로 변했고,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내 소중한 머리가 붕괴할 참이다. 그럼에도 아직 줄여야 한다. 지금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혹시 모른다. 내 진가를 알아줄 일을 찾을지. 아무래도 집 가는 길엔 이천원짜리 캔 맥주를 한 캔 사가지고 들어가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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