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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름 Apr 27. 2022

[독후감]곰팡이 쓴 사진, 또는 실마리

-w.g 제발트 『자연을 따라, 기초 시』, 『이민자들』에 대해-



1. 망자의 분신화

사람은 누구나 어떤 ‘순간’에 꽂히기 마련이다. 0.5초, 어쩌면 0.1초 보다 더 미세한 시간일지 몰라도, 우리는 그 순간의 주변 상황과 느낌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이 주는 어떤 특수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다큐멘터리 작가 겸, 소설가인 ‘존 버거’는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텍스트 화 하여 『존버거의 글로 쓴 사진』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것을 상기해보면 어떠한 사진이나, 강렬한 이미지는, 굳이 작가가 아니어도‘한 세계관을 만들어 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런 이미지가 세계관으로 자연스럽게 치환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매일 ‘이미지’와 관계 맺고, 싸우며, 움직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써의 ‘이미지화’또한 위에 언급했던 파급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말하자면 작가 나름대로의 개성이나 나타내고자 하는 느낌, 오감 등을 더 증폭시켜주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바로 ‘세계관을 생성해 내는 능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빈프리드 게오르그 제발트(이하 w.g제발트)’라는 작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당 작가는 이미지를 텍스트화 만드는데 아주 뛰어난 기지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의 첫 번째 작품이라 불리는 『자연을 따라, 기초 시』라는 책을 살펴보자. 제발트는 주로 소설가 겸 비평가라는 의식이 강한데, 사실 그 전에 시에 한동안 몸 담궜던 시인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해당 시는 그가 세상으로 처음 던진 첫 산문집이다. 이 책을 처음 펴는 순간 온갖 생소한 작품들이 눈에 띌 것이다. ‘린덴하르트’라는 교회의 제단이라든지, 성 게오르기우스의 모습이라든지 말이다.


린덴하르트 교회 제단

양측 날개 패널을 닫아

나무조각상 인물들을

속에 가두면,

왼쪽 날개 패널 위로

성 게오르기우스의 모습이 나타난다.

-w.g 제발트 자연을 따라 기초 시(문학동네 -배수아 옮김) 인용 11쪽과 142쪽 옮긴이의 말 인용)   


우리는 린덴하르트 교회의 제단의 역사와 전통을 잘 모른다. 양측 날개는 또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나무 조각상은 또 뭘 내포하는 건지 난해하기만 하다. 필자도, 심지어는 이 책을 옮긴 옮긴이-배수아-도 ‘이게 뭔 말이지? 진짜 1도 모르겠다’라며 그저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건 정말이지, 안 그래도 어려운 책을 더 어렵게 읽으려 노력하는 꼴이었다. 사실 어렵기만 어려웠을 뿐이었지 린덴하르트 교회의 제단에 있는 그림, 『이젠하임에 제단화』 그 자체를 가볍게 묘사한 것이었다. 해당 시는 결국 자연을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텍스트로 담아, 작가 자신의 개성을 더 부각시킨 것이었다. 이렇게 이해하니 나는 해당 산문시가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해당 작품에는 챕터 차례대로 그뤼네발트라는 예술가, 슈텔러라는 탐험가, 마지막으로 제발트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3개의 산문시의 분위기가 모두 서슬퍼렇고, 을씨년스러워 결국 한 이미지로 겹친다. 바로 ‘고뇌’와 ‘음산함’이다. 제발트는 해당 시에서 서로 다른 삶과 인생의 굴곡을 산 사람들에게서 ‘고뇌’와 ‘음산함’이라는 엑기스를 도출해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망자를 분신으로 불러낸 이미지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 텍스트가 주는 이미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제발트는 고유의 이미지들을-설사 그것들이 성별도, 나이도, 취미도, 시대도 전혀 다르다 하더라도, 심지어는 사람이 아닌 풍경이나 그림이라 하더라도-찾아 텍스트화 하는데 아주 능통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그의 단편 소설인 『이민자들』을 보자.   

개암나무 길은 테니스장이 있는 곳에서 끝났다. 테니스장 옆은 흰색 벽돌담으로 막혀 있었다. ‘Tennis used to de my great passion(한창 테니스에 열중한 적이 있었지요), 라고 쎌윈박사는 말했다. 'But now the court has fallen into disrepair, like so much else around(하지만 여기 다른 곳도 대개 그렇듯이 이젠 테니스장도 황폐화 되었습니다) 그는 상당히 파손된 빅토리아 양식의 온실과 멋대로 자라난 나무 울타리를 기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w.g 제발트 이민자들(창비-이재영 옮김) p14 발췌-   


이로써 제발트의 특성을 알 수 있다. 텍스트가 주는 고유의 이미지를 묘사하되, 텍스트가 가진 이미지와 제발트 자신이 가진 고유의 이미지를 섞어 특이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이민자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해당 소설은, 4명의 이방인들이 나오는 소설로써, 고향을 잃고 떠도는 그들에게는 ‘어딜 가도 자신이 타인일 것’이라는 이질감, 무력감을 이미지를 통해, 그리고 그것을 담은 텍스트를 통해 이야기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것이 2차 세계 대전을 눈으로 확인한 작가로써, 그것을 비판하지 않는 독일 작가로서의 사명감, 아니 자괴감이 이 책에 녹아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이미 문학을 포함한 거의 모든 장르의 예술은 아름다움이기를 포기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써, 사회와 거리를 두고 그것과 급진적으로 다른 타자로 머무르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예술가의 길이라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배우고, 작문을 연습하는 이유가 저 의견에 부합하고 있다는 생각을 최근 해본다. 내가 쓰고 문학적 글쓰기 또한 일정한 거리두기가 가능해야 비로소 쓸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영매로써의 관점에서도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하며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방법’으로 그것들과 화해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발트는 내게 독특한 퀘스트와 자극을 주고 있었다. 바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는 느낌보다, 선명하게 자신의 색을 덧칠하며 문장을 완성하고 있는 제발트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그런 느낌을 주는 제발트의 문장은 현재에 있는 우리에게 평범하고 쉬운 대화와 화해하기를 거부하는 현재 예술과, 쉬운 것만 찾는 내게도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예술은 그 자체로 무언가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이미지가 주는강력한 주체성이 없다면, 낡아져 ‘곰팡이가 쓴 사진’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서 기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예술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견해로 마무리하고 싶다. 더 나아가 문학이라는 것도 어떤 이미지를 텍스트화 함으로써.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스펙트럼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기에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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