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자기소개

by 액시엄

“글로는 솔직해지고 싶다. 이것이 나의 자기소개다, 연혁 대신 살아온 이야기로.”


나는 국민학교에 입학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뛰놀고 축구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도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었다. 동화책에서 시작해 세계 명작, 추천 소설, 역사서, 시사평론, 과학저널까지… 그 시절 나는 세상을 활자 너머로 배웠고 지금 내가 가진 어휘력은 대부분 그때의 잔재다. 문제는, 그 어휘들이 이제는 조금씩 퇴화하고 있다는 것.


나는 0교시와 자정을 넘기는 야간자율학습이 당연하던 시대의 고등학교를 다녔다. '자율'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야자에 반드시 참여하겠다는 각서를 쓰는 것이 '자율'의 전부였다. 체벌도 당연했다. 요즘은 꿀밤 한 대에도 인터넷에 올리네 마네 한다지만 나는 여전히 교사와 교수는 존경받아야 하는 존재라 믿는다.


대학은 산업대였고, 전공은 생명화학공학.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수학이 제일 쉬웠는데 고등학생이 되자 앞이 안 보이기 시작했고, 대학 입학 즈음엔 수학이 외계어가 되었다. 다행히 전공에서 수학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군대를 다녀와서도 방황하던 중 유전공학을 전공한 지도교수님의 수업에 감명을 받아 분자생물학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같은 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미생물의 유전자를 조작하고, 단백질을 분석하고, 유전형질을 해석하고, 실험을 설계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그 무렵, 아버지는 위암 진단을 받으셨다.


석사 도중 첫 직장에 들어갔다. Mouse antibody와 NC membrane을 생산하는 회사였다. 박사급 책임을 부여받았지만 대우는 석사급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때 알았다. 이 나라에 ‘박사님’은 있어도 ‘석사님’은 없다는 것을. 분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과학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시작과 동시에 부친상을 치렀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곳에서 내 연구 커리어의 대부분이 쌓였다. 임상 샘플이 풍부했고 현실적인 연구를, 현실적인 조건에서 할 수 있었다. 동물실험도 많이 했다. 질식과 경추탈골이 안락사 방식이라는 걸 그곳에서 알았다. 매년 열리는 희생동물 고사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꿈에 쫓겨 다녔을지도 모르지…


이후 한의과대학 연구실에 갔다. 한약재를 다룬다는 것을 제외하고 연구환경은 익숙했다. 한의대생들의 전공서적이 전부 한자라는 것에 놀랐다. 한 학생에게 이걸 다 읽냐고 물으니, 못 읽으면 공부 못 한다고 했다. 그곳에서 탕약 다리는 법도 배웠다.


다음은 간질환 연구를 하는 중소기업이었다. 입사 3개월 만에 대표와 면담을 했다. 대표는 말했다. “칭찬보다는 질책이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 그러니 나는 칭찬을 하지 않고 질책만 할 것이다.” 그 말대로 그는 질책만 했다. 연구는 본래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려는 일인데 잘됐을 땐 칭찬하지 않았고 안 됐을 땐 질책뿐이었다.


10년 넘는 연구 커리어에 회의가 들었다. 무언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한 자리에 몰두하는 일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움직이고 싶었다. 그래서 사직서를 썼다.


카페를 열어보려 했다. 상권도 조사하고, 매장도 알아보고, 인맥도 만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시도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었다. '나이 들어서 이룬 게 없으면 기회도 없다'는 현실.


헤드헌터 일을 해봤다. 바이오 전공자였으니 자신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내게 전자/컴퓨터 쪽 채용을 맡겼다. 바이오 관련 회사라더니 실은 하드웨어나 반도체 엔지니어를 구하는 곳이었다. 내가 알던 바이오가 아니었다.


재무 컨설팅도 해봤다. 재무제표, 보증기금, 대출의 구조를 익혔다. 신기했다. 내가 알던 바이오산업은 몇 년 안에 매출이 일어날 수 없는 구조였는데 다른 산업들은 짧게는 수개월 만에 실적을 만들었다.


캠핑카 내부의 전기 시스템을 만들기도 했다. 배터리가 그렇게 무겁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사 하나에도 이름이 따로 붙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원래 있었던 곳에서는 에이스였던 내가 그곳에선 바보였다. 유튜브로 배웠던 속성 강의는 현장에서는 쓸모없었다.


말로만 듣던 물류센터에 가봤다. 쌀이 가장 무거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차라리 쌀이 나았다. 진짜 복병은 물과 세제였다. 수도꼭지만 돌려도 식수가 나오는 우리나라가 되길 바랐다. 몽둥이를 휘두르며 손으로 직접 세탁을 하는 유행이 번지기를 바랐다. 일이 끝날 때는 시작한 인원의 반도 채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곳에서는 그들을 '조퇴자'라고 하지 않았다. '낙오자'라고 했다. 그 새벽에, 그 오지에서, 셔틀버스도 없는데 돈을 벌려고 나왔다가 택시비를 날리고 가다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실은 나도 낙오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이 일로 돌아왔다. 내 시간을 내 방식대로 쓰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여전히 좋다. 이번엔 실패를 각오하고 돌아왔다. 오만함이 아니라 각오와 준비로 시작한다.


이젠 누군가를 찾아가기보다, 내가 ‘찾아올 만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나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