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왜 힘들지?

나에게 질문하는 방법

by 털찐 냥이

“그런데, 나 왜 힘들지?”


갑자기 막히는 생각에 답답함이 밤 고구마를 통째로 입에 문 것처럼 몰려왔던 날이다.
텁텁함을 넘어서 꾸역꾸역 잘도 먹다가 갑자기 목구멍에 턱 하니 자리를 잡고 내려가지를 않으니 물이든 우유든 살살 녹여가며 입을 오물거리게 만들어야 했다. 당장 생각과 마음이 턱턱 막히니 무엇을 물로 삼아야 할지 우유로 부드럽게 넘겨서 고소함으로 달래줘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때 발견한 것이 평소에 조금씩 취미로 모아두었던 그림책이었다. 그냥 펼쳐본 책에는 따뜻함이 있고 웃음이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한 톨씩 묻어있었다. 질문이 떠올랐고 공감이 되는 장면들이 바로 눈앞에 보였다. 결국 모아놓은 그림책들의 먼지를 훌훌 털어내며 생각을 모으기 시작했다.


감기 기운이 있을 때에는 뜨끈한 쌀국수, 졸음이 몰려오는 오후에는 아이스 라테를 사 먹는다. 기분이 가라앉는 저녁에는 산책을 나가서 소프트 콘 아이스크림 하나를 입에 가득 물고 골목을 걷는다. 찬바람이 부는 한 겨울에도 손은 시리지만 타는 속을 달달하게 녹여주기에 콧물을 닦아가며 먹는다. 한 여름에 걸리는 감기에도 혀를 익히는 뜨거운 쌀국수를 꼭 먹고 약을 먹는다. 등에 땀이 흘러도 ‘아! 시원하네 이제 감기가 곧 떨어지겠구나’ 후루룩 부어있는 목구멍으로 넘긴다. 이런 것들은 삐걱거리는 나를 부드럽게 해주는 일종의 기름칠이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 그때마다 스스로 처방한다.


기분이 가라앉아서 앙금이 생기고 뭉쳐버릴 때가 있다. 점점 돌처럼 딱딱해질 때를 위한 처방으로 그림책을 들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열리는 작은 바자회에 가서 500원에 한 권씩 사 오기도 했고 종종 중고서점에 가서 사 오기도 했다. 중고서점은 한가한 시간에 간다. 그림책 주요 고객들에게 방해를 주기도 싫지만 받기도 싫은 탓에 조용한 시간을 노려본다. 마음에 확 안겨오는 책은 바로 구입을 하지만 망설여지는 책들은 시간을 좀 더 두고 본다. 밀당의 시간이 필요하다. 쌓여가는 책들을 잘 진열해놓을 서재가 없기 때문에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을 열고 손에 들여놓는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모아놓은 그림책들을 가끔씩 들여다보곤 한다. 사실 대부분의 그림책들은 이미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로 별 꼴을 다 본 오염된 생각과 마음에 강한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갑자기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황망하고 생각이 혼란스러울 때 다시 보게 된 그림책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나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뜻밖의 공감을 해주는 친구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속을 다 털어버리고 싶지만 예전처럼 그렇지 못한 상황일 때, 이해받고 싶고 공감받고 싶은데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작은 도움을 주었다. 당장 외부의 도움을 바로 받을 수 없다면 마음이 닿는 그림책을 한번 열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림책을 열면 마치 답답하고 매캐한 뜨거운 여름 저녁에 작은 창문을 여는 것과 같다. 가는 솔바람 한 가닥이 들어와 환기를 시킬 수 있다.


그림책이 좋은 이유


그림책을 좋아하면 뜻밖의 재미가 있다. 매우 어렵고 난해한 그림이 아니기에 선뜻 다가서도 나를 거부하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또한 내가 어떠한 그림을 좋아하는지 알 수가 있다. 사실 내가 어떠한 그림을 좋아하는지 마주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미술관을 열심히 찾아다니거나 핀터레스트(Pinterst)에서 찾아볼 수도 있지만 일부러 무엇을 느껴봐야지 라는 의도적인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중고서점의 한쪽을 쭉 둘러보면 어른들의 대화에서는 찾을 수 없는 재미있는 제목들과 그림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살짝 웃음이 지어지는 제목을 펼쳐보면 쭉 연결된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볼 수 있다.


둘째, 그림책을 보는 것만으로 꽉 막힌 마음의 공기가 순환된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은 수채화와 같은 물감과 은은하고 따뜻한 색감이 녹아있는 그림이다. 색과 선이 강한 그림보다는 가만히 보고 있기에 피로하지 않은 그림이 좋다. 그림책 대부분이 글자가 많지 않아서 그림을 보기에 방해를 많이 받지 않는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들과 마음에서 치고 올라오는 많은 감정의 언어들을 잠시 제쳐둘 수 있다.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뜨끈뜨끈 할 때에는 그림책 한 권 펼쳐보면 어떨까?


셋째, 사실 굳어버린 마음에 그림책을 본다고 대부분의 책들에서 순순하게 몽글몽글한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의외로 다 자라서 이미 굳어버린 상상력과 마음의 단단 문을 살짝 두드려주는 이야기들이 있다. 너무 건조하고 바쁘게 살았다면 그러한 이야기들이 나를 새삼스럽게 돌아볼 수 있게 해 준다.


넷째, 뜻밖의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점점 무엇으로부터 따뜻한 울림을 받을 기회가 적어진다. 마음은 따듯하게 이성은 차갑게 살고 싶어도 마음이 차가워져야 머리도 차갑게 돌아가는 순간이 올 때 비로소 사회에 적응이 된 것 같다. 어른 인 척하고 살아도 그렇지 않은 내 속 모습이 있다. 그림책을 보면서 아직 그런 내가 남아있음에 안도가 될 때가 있다.


다섯째, 나에게 질문하는 방법

잘 살아온 것일까? 지금 내 상태는 어떤 것일까? 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많을 때가 있다. 적당한 질문을 생각해내고 또 제대로 물어보고 싶다. 그럴 때, 그림책은 작은 힌트가 될 수 있다.


유리 슐레비츠의 '보물'이라는 책을 보면 이삭이라는 주인공은 너무도 가난했다. 엉뚱하지만 꿈을 꾸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보물을 찾아 나선다. 산 넘고 물 건너 신발 밑 창이 다 닿도록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조롱 어린 조언을 듣고 집으로 빈 손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아궁이 밑을 파고 뜻밖에 보물을 찾는다. 내 집 안에 보물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이런 글귀가 쓰여있다.


'가까이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멀리 떠나야 할 때도 있다.


밋밋한 마음이라면 이런 싱거운 책이 다 있나 싶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무 힘들 때 '비록 결과적으로 실패할지라도 그것을 해야 할 때가 있다.'라는 말을 들은 것이 생각났다.


인생이라는 것이 단순하지 않기에 상식적인 일들만 있지는 않다. 그래서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젓가락으로 도토리 묵을 집어야 하는 느낌이지만 분명히 뜻이 담겨 있는 말들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도 가까이 있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지금 멀리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마지막 이유는 '그냥 좋다.'

무엇이 그냥 좋아해 본 적이 어른이 되어서는 별로 없어진 것 같다. 이래서 좋았고 이래야 좋을 것이라는 이유에 대한 핑계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박혀있는 듯하다. 마치 누가 물어보면 잘 대답해하듯이 말이다. 어쩌다 보니 감정까지도 생각으로 계산해버린다. 그러나 그냥 보기만 해도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다시 발견했다. 이제는 이런 말이 낯설지만 '그냥 좋다'


*글에 쓰인 책

-보물, 유리 슐레비츠 저,네버랜드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