쌉싸름하고 달콤한 홍차 케이크처럼

by 털찐 냥이

커피가 없으면 밥을 많이 먹어도 허전하다.

살짝 빈 속에 적시듯 넘기는 커피가 주는 만족감은 밥으로 채워지지 않는다.특히 고소한 우유와 살짝 산미가 있는 진한 에스프레소가 어우러진 카페 라테를 좋아한다. 커피가 진할수록 친구와 수다가 길어질수록 커피와 함께 케이크 한 조각을 곁들여 먹기 좋다. 결정 장애가 나타나는 순간은 확고한 커피 취향에 비해 화려한 외모에 속아줄 것인지 망설이게 되는 케이크를 고를 때이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한 입 테스트는 있으면서 왜 케이크 한 입 테스트는 없는 것일까? 진열장 앞에서 살짝 멍청한 표정으로 눈을 요리조리 굴리다가 결국 ‘어느 것을 고를까요~’ 속으로 노래를 부르고 싶을 지경이다.


조각 케이크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다. 아무래도 먹어본 종류보다 먹어보지 못한 종류가 더 많을 것이다. 딱 떠오르는 생각은 생크림에 딸기가 살포시 얹혀 있는 모습이다. 생크림과 딸기의 조합은 너무도 훌륭해서 집에서도 만들기 수월한 롤 케이크를 종종 만들어 먹곤 했다. 물론 모양의 예쁨은 내 손에서는 찾지 않기로 하고 말이다. 치즈가 잔뜩 들어간 치즈 케이크도 커피와 먹으면 입 안에서 따뜻하고 씁쓸한 맛에 단맛이 만나 살살 녹는 순간이 즐겁다. 요즘에는 단맛과 잘 어울리는 홍차가 들어가 빵을 찾게 된다. 정직한 홍차 맛, 블랙 티가 들어간 생크림 또는 진한 게 얼 그레이를 우려내서 만든 빵에서 나는 맛은 달콤함과 쌉싸름함의 경계에서 내 혀를 아리송하게 만든다. “이 맛이 인생 같지 않아?” 케이크를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재료만큼이나 상상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맛이 늘어난다. 그래서 케이크처럼 경험의 다양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와 타인의 경험

경험 없이 채워진 삶은 없을 것이다. 아주 멋진 경험들이 많은 사람도 있고 평범하게 누구나 겪는 일들로 채워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나 공간 또는 환경에 따라 성격에 따라 선택에 의해 독특한 경험들을 한다. 사람들을 새롭게 알수록 크고 작게 나에게 없는 것들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게 본다면 경험은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이라는 두 가지 만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쩌면 그동안 역경이나 제약을 마치 막힌 변기처럼 힘들게 뚫어내고 성취라는 멋진 단어로 포장된 경험만이 한 사람을 설명한다는 잘못된 시선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인생은 멋있어 보인다. 그러나 내가 쉽게 해 내는 일이 어쩌면 누군가에는 노력이 필요할 수 있고 내가 인정하지 못하는 내가 한 일이 누군가에는 도움이 되거나 잘했다고 평가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마치 피 땀 눈물을 흘려서 등반한 에베레스트 산 만이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닌데 매일 보는 동네 산조차도 오르지 않으면서 너무 높은 곳에 가치를 두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의욕적으로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기 쉬워진다.


짐 보따리는 추위와 냉혹한 산세를 대비하기 위해 꽉꽉 채워야 하고 체력을 단련해야 하고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기능성 신발을 준비하다 보면 어느덧 이미 다녀온 것처럼 헛배 부름에 지쳐서 나가떨어진다. 방바닥의 평평함이 이리 좋을 수가 있을까? 뒹굴 뒹굴 하는 것이 최선의 걸음이 되고 만다. 자칫 늪에 빠져 정체되어 있다가도 그래도 한 걸음 나아서 뒤돌아 볼 공간을 두려면 ‘작은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생각해본다. 작은 경험은 아무래도 익히 알고 있는 나의 경험타인의 경험으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인생 후르츠’를 보면 두 노부부의 부지런함과 의미를 찾아 매일 발걸음만큼 실행하는 삶에 대한 모습을 보면서 ‘아 저렇게 살아가는 방법도 있구나’ 생각해보게 된다. 그들의 삶을 엿보면서 만약 내가 저렇게 나이 들어간다면 어떨까? 상상해보고 좋은 거름이 될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모아 버리지 않고 나무의 거름이 될 수 있도록 주는 것처럼 말이다. 계절의 재료를 활용하는 할머니의 쿠킹 실력이 부러웠다. 뚝딱 구워내는 할머니 표 케이크는 그 손맛이 어떠할지 유명한 베이커리보다 더 궁금하다.


나는 다른 이들의 일에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기도 전에 왜 그리 남의 집 밥숟가락까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직장 사람들과 약간의 거리를 둔 이유에는 그런 부분도 있었다. 이직을 했을 때였다. 자리를 넘겨주던 전임자는 내가 초등학교를 어디에 나왔고 현재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게 많았다. 나도 잘 모르는 인맥을 동원해 조사를 하고, 소문을 냈다. 매우 활동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던 그녀는 나의 동창이 다른 부서에 있음을 찾아내 주었다. 나와 동창이라고 말하는 그 동료는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고 이름도 가물했는데 나를 기억한다면서 친절하게도 주말에 부모님 집에 가서 초등학교 앨범에서 나를 찾았다고 했다. 우리가 몇 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고 이었다고 백지상태의 내 기억 도화지에 말썽꾸러기 본인에 대한 어렴풋한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였다. 그리고 그때 이미지와 정 반대로 지금 얼마나 성실한 직장인이 되어 일과 가정을 충실히 꾸려가는지 앞으로 새롭게 기억할 수 있도록 틈틈이 와서 자랑을 해주었다. 물론 동문, 동창이 꽤나 중요했던 회사였던 것 같다. 신임 사장님이 오고 같은 동문 대학 출신들만 따로 불러서 인사를 했다는 소문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초등학교 동문을 굳이 회사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찾고 싶지는 않았다. 몰라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는 것들을 머리 아프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말이다. 나의 두뇌는 그리 탁월한 용량을 갖고 있지 않고 많은 곳에 동시에 에너지를 배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에너지는 아쉽게도 소진이 빠르게 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을 위해 좀 남겨두고 싶다. 연비가 참 아쉽다고 해야 하나…


내가 서 있는 곳

어떠한 경험은 서 있는 자리 또는 어떠한 역할에 따라 다가오기도 한다. ‘을’의 입장으로 일을 하던 때였다.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비슷한 또래의 몇 명 팀원들과 함께 나가서 갑의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사무실이 작았다. 좁은 공간에 담당자들과 같이 있다 보니 눈치가 여간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나른한 오후에 팀원들을 데리고 나가서 근처 대학가 골목에 산책을 했는데, 담당자가 보기에 싫었던 모양이다. 업무에 지장을 주는 행동이라면 회의시간에 말을 했을 텐데 그런 것은 아니었던지


“자기들끼리만 어디 좋은 데 갔다 오나, 맛있는 거 먹고 오나 봐?”


심술이 붙은 말을 던졌다. 스무 살 가량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남자 담당자에게 한 소리를 들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같이 산책을 나가서 과자 한 봉지, 핫도그 하나를 뜯으며 한 바퀴 걷고 오자고 하기에는 이모저모 어려운 관계 아닌가. 결국 지갑을 털털 털어서 잔돈만큼의 간식거리를 사 들고 미안한 얼굴을 하고 전했다.


“좀 출출해서 간식 좀 사 먹고 왔어요. 이거 같이 드세요~”


그때는 계약서에도 갑과 을이 명시되던 때였다. 일은 일로서만 대하고 싶었기에 어려웠다. 여하튼 그 후로도 나의 처세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며칠 후, 산책을 다녀온 사무실은 갑자기 떡볶이 파티를 하고 있었다.


“간식 먹는데 좀 줄까요? 아, 먹고 왔나?”


평소에 과자 부스러기 하나 없다 보니 개미 숨소리도 안 들리던 좁은 사무실이었다. 남의 사무실에 갇혀 나갈 생각 없이 진하게 퍼진 떡볶이 냄새가 퇴근할 때까지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그때의 경험은 ‘나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 올해 여름이었다. 더위의 정점을 지나던 어느 날이었다. 예고 없이 갑자기 터진 화장실 배관 때문에 난리가 났었다. 화장실을 쓸 수 없다는 충격과 더위의 숨 막힘에 넋이 나가기 일보직전이었다. 다행히 전문가를 찾았다. 그리고 공사를 시작한 날, 아저씨에게 냉장고를 탈탈 털어서 떡, 과일, 음료를 대접했고 다음 날에는 식사를 넉넉히 차려드린 적이 있었다.


“이걸 다 어떻게 먹어요? 좀 덜어 줘 봐요.” 아저씨는 난감해했다.

“다 못 드시겠어요? 그러면 싸드릴게요. 가시면서 드세요.” 어차피 차려놓은 음식들이라 따로 도시락처럼 담아서 드렸다. 그런데 너무도 고마워하셨다. 사실 그렇게 놀란 눈을 볼 정도로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것은 아니었다. 추석을 앞두고 있었고 미리 쌓아둔 먹거리들을 풀어 내놓은 것뿐이었다. 그런데 고맙다면서 주방 싱크대 실리콘을 새로 작업해주겠다고 했다. 사실 싱크대 사이로 틈틈이 올라와 여기저기 아예 자리를 잡아버린 흉물스러운 곰팡이가 눈에 거슬린 지 오래였다. 전문가의 눈에는 더 잘 보였던 모양이다. 선뜻 먼저 제안을 하셨다.


“저거 사실 손 많이 가는 작업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잘 대접해주셔서 나도 뭐 좀 더 해드리고 싶네요.” 사실 직접 해보려고 시도했다가 엄두가 나지 않아서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미루다가 보니 언젠가부터 눈에 익숙해져서 잊고 있었다. 예상치도 못하게 속 가려운 곳을 벅벅 긁어내 주신다고 하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덕분에 나는 실리콘 곰팡이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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