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극기훈련일까 소풍일까?

by 털찐 냥이

“어라? 저거 내 옷 같은데?”


길거리에서 얇은 카디건이 뒹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베이지 색 바탕에 줄무늬인데 왠지 너무 눈에 낯이 익었다. 어라? 그런데 정말 내 옷이 맞았다. 익숙하다 못해 옷 사이즈까지 딱 내 것이다. 바로 몇 시간 전에 그곳을 지나면서 떨어뜨린 것이다. 정작 떨어뜨린 줄도 몰랐던 옷을 다시 그곳을 지나가다가 발견한 것이다. 심지어 나는 그 옷을 발견했을 때까지 옷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었다! 황당함과 나에 대한 어이없음으로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가끔씩 옷이나 가방을 놓고 다닐 때가 있었는데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일은 학창 시절 버스에 가방을 두고 내린 일이다. 버스에서 정신없이 내려보니 교대 근처였는데, 왠지 너무도 심하게 허전했다. 없어진 가방에 멍하니 있다가 정류장 앞, 작은 슈퍼 가게 주인아저씨의 배려로 차비를 빌려서 집에 온 경우가 있었다. 그뿐인가, 한 겨울이었다. 친구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진 날이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아주 가볍게 밖으로 나오다가 친구가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고 웃음이 터져서 달려갔었다. 나의 코트가 친구의 손에 도톰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외투를 카페 의자에 걸쳐놓고서 푹신한 등받이로 쓰다가 몸만 가볍게 나온 것이다. 어쩐지 조금 춥더라니……


“이번 생은 망했어!”


나의 절규와 닮은 녀석을 발견했다. “이번 소풍은 다 망쳤어.” 울고 있는 다람쥐가 있다. 나보다는 덜하지만 그림 속 절규하는 녀석은 세상 다 망한 표정이다.

나와 비슷하게 길에서 짐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녀석들의 이야기가 있다. 별다른 이름이 없는 평범한 다람쥐와 두더지는 잔뜩 짐을 싸서 소풍을 갔다. 설렘이 잔뜩 담긴 배낭을 메고 지도까지 들고 길을 나선다. 마치 인생이라는 대단한 소풍 길을 나선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첫걸음부터 난감하다. 배낭이 나무 가지에 긁히며 부지직하는 소리를 낸다. 소풍 장소를 찾는 두 녀석의 발걸음마다 툭 툭 배낭에서 물건이 하나씩 떨어진다. 두 친구는 열심히 물건을 잃어버리며 강을 건너고 동굴에 갔다가 바닷가에도 가본다. 결국 가장 마음에 드는 장소로 아까 왔던 장소에 돌아온다. 힘이 빠지고 지쳐서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은 둘째치고 맙소사 배낭 안에 물건이 하나도 없다. 텅 비어있는 것이다. 두 친구가 부여잡고 우는데 마치 그림책 밖으로 소리가 들리는 듯하게 절절하다. 이 그림책은 상황마다 동물들의 표정이 압권이다. 어찌나 시기적절한지 감정에 같이 동요된다.


20211023_190243.jpg 세상에서 가장 멋진 소풍 _ 시아라 플러드

나는 가끔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 나를 만날 때가 있다. 세상만사 내 뜻대로 안 된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한다고 싶을 때가 있다. 소풍에 알맞은 더 좋은 장소를 열심히 찾아다니듯 나름의 길을 간 것뿐인데 잠시 멈춰보니 ‘멍’ 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만약 저들처럼 준비한 가방이 다 찢어져서 남은 것이 없다면, 만약 그것이 내가 걸어온 내 인생인데 지금 멈춰서 보니 가방 안에 아무것도 없는 심정과 같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림책에의 소풍은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와 설렘, 새로 시작하거나 다시 시작하는 사회생활 같은 마음이랄까? 순조로운 항해가 되기도 하지만 인생이라는 소풍은 그리 순조롭지만은 않다. 소풍 길에 오르니 정신없이 헤매거나 갖고 있는 것을 다 잃어버리기도 하고 심지어 길을 잃어버려서 허둥대기도 한다. 건강이 상하기도 한다. 세상에 나왔다가 처음 넘어졌을 때가 시간이 한 참 흘렀어도 가끔 트라우마가 되어 떠오른다. 처음 겪은 사회생활의 나쁜 기억은 마치 교통사고를 당한 것 같은 얼얼함이었다. 분명 잘못된 것이 맞는데 그럼에도 견뎌야 하기에 이를 악물고 끙끙거렸던 기억이 난다. 사실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면 됐었다.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작은 일들을 해낼 수 있었다면 다른 곳이라고 못할 내가 아니었다. 그만둔다고 내가 이상하거나 못난 것은 아니다. 자존심 상할 일도 아니었다. 처음 해본 일을 끝까지 완주하지 못했다고 ‘나는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 나를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없었다. 세상의 아주 작은 한 부분에 나라는 퍼즐이 맞지 않았는데 억지로 나를 찢어 맞추느라 상처가 깊에났다. 자존감이 낮았던 나는 계속 주변의 눈을 평가의 잣대로 두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때 보다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의 작은 나를 보면서 ‘왜 그때 그렇게 참았을까’ 싶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이 나에게 나쁠 수도 있다. 내 위장이 약하다면 빈 속에 먹는 사과는 몸을 더 아프게 할 수 있는데 마치 다들 먹는 사과를 나는 왜 먹으면 위가 아플까 내가 이상한 것인가 생각했던 것이다. 밥벌이 일이라도 막상 해봐서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다른 일로 바꿀 수 있다. 다시 찾으면 된다. 친구들이 동료들은 잘하는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 그것으로 나의 행동을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떠한가를 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데 스스로 먼저 그 기회를 포기했기에 막상 지쳐버려서 주저앉다 보니 다른 여러 갈래의 길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버틴 결과로 나는 혹독한 후유증을 치렀다.


인생 소풍은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예측을 할 수가 없다.

아침에 비가 오다가도 오후에 해가 뜨면 땅이 마르듯이 우산을 들고나간다고 해도 양산으로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완벽히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날씨만은 아니니, 살면서 좌절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오늘도 잔뜩 흐리고 비가 퍼부었다. 그런데 점심을 지나니 해가 강하게 한번 드리웠다. 나무마다 젖은 물기를 바람에 흩뿌리면서 맑은 하늘에 나뭇잎을 말린다.


결국 감당해야 할 것들은 피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내일에 대한 불안이 클수록 오늘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늘이라는 날은 종이처럼 평평해서 어제와 똑같아 보인다. 기대가 되지 않는다. 어떤 특별한 일이 있어야 조금 설레는 감정을 느끼고 일상이 무뎌지면 점점 작은 일로부터 오는 설렘 조차 무뎌진다. 결국 내일의 설렘을 만들려면 오늘이라는 재료가 필요하다는 당연한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평평한 오늘이라는 종이를 가로로 접고 세로로 접어서 종이 접기를 열심히 하다 보면 입체적인 내일의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코엑스에서 열린 도서 박람회에 갔을 때였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종아리가 당겨오기 시작했다. 배도 출출하던 차에 샌드위치를 파는 곳 바로 옆에 앉을 곳이 있었다. 드디어 앉을 곳을 발견했다. 샌드위치를 사 먹기 위해 긴 줄을 섰고 바로 옆 길고 좁은 의자가 놓여있는 곳에서 어떤 인터뷰가 곧 진행된다는 안내판을 보았다. 다리도 아프고 궁금하기도 해서 의자에 앉았는데 ‘오월의 종’ 대표의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는 곳이었다.


오월의 종은 한 때 틈만 나면 가던 빵집이었다. 무화과가 푸짐하게 박혀있는 씹을수록 맛있는 바게트와 방직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공간이 주는 묘한 느낌이 좋아서 영등포에 있는 지점으로 종종 가던 곳이었다. 내가 아는 곳이라는 반가움과 유명한 곳이라 도대체 어떤 사람이 사장일까 호기심이 생겼다. 그런 빵을 만드는 사람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하고 근사한 말들이 오고 갈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나 보자 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뜻 밖에 매우 수수한 차림의 야구모자를 눌러쓴 인상 좋은 사람이 나타났다. “어라” 나는 정말 뜻밖으로 놀랐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더 놀랐다. 유명인의 직업이 제빵인 줄 알았더니 삶이 곧 빵인 사람의 이야기였다. 진짜가 나타났다. 무엇보다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본인이 하고 있는 그 일이 삶과 색상이 같아지게 되었는지 삶으로 겪어 낸 이야기들이었다.


매일매일을 그 하루로 살고 있지 않았다는 것

기본을 지키지 않은 내 세상은 굽어져 있었고 쓰러지면서 충격이 한 번에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만난 진짜의 삶의 이야기에 매일의 빵이라는 저자의 책을 사들었다 그리고 발견한 한 문장은

빵 만드는 작업을 즐기고, 솔직하게 만들고, 결과물에 순응하자.

매일의 빵 중에서_저자 정웅


빵이 팔리는 것은 손님들의 선택이기 때문에 본인이 할 수 있는 것, 즉 만드는 그것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많이 팔라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이라는 날은 날씨에 따라 우중충하기도 하고 어제와 똑같아서 기대가 되지 않기도 한다. 어떤 특별한 일이 있어야 조금 설레는 감정을 느끼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작은 일로부터 오는 설렘이 무뎌진다. 결국 내일의 설렘을 만들려면 오늘이라는 재료가 필요하다는 당연한 것을 바보 같지만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제야 깨우쳤다.


나는 종종 잘 속아왔다. 무엇인가 몰아쳐서 열정을 다해야 하는 그 무엇이 존재할 것이고 그 무엇을 찾아야 만하고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다소 무모한 신념이 있었다. 마치 과제해야 하는데 그 과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 같았다. 그러다 보니 정작 오늘이라는 가장 밀착되어있는 시간을 휴지통에 양보하면서 신기루를 보듯 ‘그 무엇’을 쫓아왔던 것이다. 거참, 나에게 잘도 속아왔다.


어쩌면 나는 습관적으로 제대로 살지 못한 어제의 부스러기로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또다시 오늘이라는 빵을 통통하고 부드럽게 굽지 못하고 다시 오늘의 부스러기가 내일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는 제대로 된 빵을 굽는 날이 올 것이야 라며 미루고 또 미루면서 말이다.

오늘이라는 종을 제대로 울렸는가 나에게 기분 나쁘지 않은 말투로 물어본다.



*글에 쓰인 책

-세상에서 가장 멋진 소풍, 시아라 플러드 저, 출판사 키즈엠

-매일의 빵, 정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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