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거의 하루에 한 번 택배 문자가 온다.
우편함은 청구서나 고지서같이 나에게 볼일이 있는 곳에서만 날아오는 종이들로 쌓이지만, 며칠 전의 내가 나에게 보내는 선물이 온다는 소식은 마치 손 편지가 오는 듯한 기대감이 든다. 오전에 ‘택배가 몇 시 사이에 배송될 예정입니다’ 문자를 받으면 종일 기분이 붕붕거린다.
몇 년 전에 이사를 온 후 주소가 헷갈렸다. 이전에 살던 집과 동과 층이 유사해서 동 호수를 잘못 적어은 줄도 모르고 물건을 주문했다. 생각도 못하고 있던 날 택배 아저씨의 벨소리에 나가보니 \
“아휴! 동, 호수 잘 못썼네요. 여기 다른 층으로 써놨네~”
다행히 얼마 전에 이사 온 집이라 기억을 해둔 택배 아저씨 덕분에 당연히 잘못 갔어야 할 택배가 집으로 무사히 도착했다. 코로나 이후에는 택배 아저씨를 직접 대면할 수 없지만 어찌 됐든 내 택배는 문 앞으로 잘 도착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올 해에는 유난히 더운 날씨에 편안하게 택배를 받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스크 안으로 나의 숨기운에 숨 쉬는 것조차 덥고 잠시 나가서 걷는 것조차 ‘헉’ ‘헉’ 거리게 되며 땀이 차는 통에 문 앞에 차곡히 쌓이는 택배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으로 여기까지 왔을지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내 마음 편하고자 간식과 음료수를 문 앞에 내놓기 시작했다. 다행히 미리 오는 안내 문자에 대략의 시간에 맞추어 내놓았다.
막상 받는 행동에서 주는 행동으로 변하다 보니 내 택배가 문 앞에 놓여있는 것보다는 무사히 나의 물건을 가져갔는지 문을 열었을 때 없어졌을지 더 궁금해졌다. 택배사별로 오늘은 ‘어느 택배가 오는지’ ‘34도가 넘을지’ ‘무엇을 내놓을지’ 그 전과는 다른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하루는 한낮에 음료와 과자 얼음 팩을 내놓았다. 최고 기온을 유지하며 매일 더위를 견디다 보니 비가 간절히 내려주길 바라는 날이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한 낮, 매미가 어찌나 울어대든지 나무가 많은 동네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싶고 몽둥이 들고 나무마다 매달려서 살겠다고 울어대는 매미를 다 쫓아버리고 싶은 날이었다. 얼음 팩을 꽁꽁 얼려서 시원한 음료가 식지 않도록 잘 기대어 두었다. 작은 과자들과 함께 내어 놓았다.
‘택배 기사님 드세요.’라는 큼지막한 종이를 문 앞에 같이 내놓았다. 시간이 지나고 집에 왔을 때 뜻밖에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사실 당연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얼음 팩’이 사라진 것이다. 어떤 간식을 내놓을까?라는 생각으로 자양강장제가 좋을까 두유가 좋을까 이런 생각들을 했지만, 막상 얼음 팩을 몇 개 내놓을까 생각은 못했다. 차가움을 유지시켜 줄 보조의 역할만 바랬는데 한낮에 뛰어다니느라 열 숨이 가득 찬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시리도록 차가운 얼음이었던 것이다. 사실 얼음 팩은 냉장 냉동식품을 주문하면서 받아 놓아다 보니 점점 개수가 늘어나서 처치 곤란이 되어있었다. 냉동실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부엌 구석에 아무렇게나 쌓여가는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아이스팩 몇 개를 종량제 봉투로 교환해주는 지역도 생겨났으니 나만의 난감함은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배송으로 나에게 전달해준 사람에게 다시 적절하게 쓰이다니, 내 생각의 짧음에 잠시 당황했지만 ’ 잘했구나’ 싶었다.
이렇게 사소한 경험이 재미있는 것은 자꾸만 좁아지는 내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늘려준다. 작은 깨달음으로 아주 작지만 생각이 유연해질 수 있다는 것은 점점 변화가 어렵고 경직되어가는 나에게 ‘아! 그렇구나’ 하는 순간들을 만들어줄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다가오는 작은 경험도 있지만 다가서는 작은 경험도 있다. 가끔씩 공모전 소식을 찾아본다. 나에게 생소한 분야들도 기웃거려본다. 그리고 많이 애쓰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서 응모해본다. 수상을 하지 않아도 커피 쿠폰을 준다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했다. 공항에 대한 주제였다. 주어진 주제에 나름의 도움이 될 만한 아이디어들을 생각해본다. 평소 잘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여도 여행을 갔던 기억들을 끄집어내서 이리저리 새로운 지점에 생각의 닻을 내려본다. 이렇게 생각의 엔진이 녹슬지 않게 기름칠을 해준다.
조금씩 나에 대한 실망을 줄이고 잔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기 위해 작은 배를 저어나가듯이 경험이라는 노를 잘 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고 큰 경험들의 노를 나이가 들어도 그에 맞는 것으로 계속 저어나간다면 갑자기 코가 깨지듯 앞으로 철퍼덕 넘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앞으로의 경험은 계속 만들어보자 싶은데 그렇다면 그동안은 어떠했는지 뭔가 정리를 조금 해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어떻게 정리를 하지?
‘작은 승리들을 추적하라’
『모든 것이 되는 법』이라는 책에 나오는 문장이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진척이 될 때 이것들을 무심코 넘기지 말고 기록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의 작은 승리들을 추적한다면,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의 불편한 마음을 다독이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충분한 동기 부여가 된다고 설명한다. 어쩌면 공모전에 응모했던 경험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응모했던 단 몇 시간의 과정에서 문장으로 정리하고 말을 만들어보니 ‘내가 이런 것도 생각할 수 있구나’ 스스로 기특하다. 새로운 생각들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보면서 꺼내보지 않아서 몰랐던 나를 발견한 것이다. 공모전 채택의 유무와 상관없이 큰 수고를 들이지 않는 작은 경험을 시도했고 그로 인해 35도의 폭염으로 지쳐가는 여름의 한 복판에서 책 한 권 들고 시원한 곳으로 대피할 카페 찬스가 한번 더 생겼다. 공짜 커피 쿠폰은 사라지기 전에 빨리 써줘야 하니까.
좋고 나쁜 일들은 살면서 부지기수로 많이 일어난다. 산다는 것이 어디 예측이 가능한 일만 있다면 좋겠지만, 어렸을 때 외할머니네 집 앞에 논밭에서 신나게 뛰어놀다가 살얼음이 깨지면 논두렁 바닥으로 ‘풍덩’ 빠져버린 사건이 기억난다. 그때는 짧은 팔다리의 어린이였는데 성인이 되어도 유한한 몸뚱이가 난데없이 일어나는 나쁜 일과 뜻밖의 좋은 일들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다.
한때는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다이어리에 기록을 열심히 하며 정성스럽게 꾹 잘 눌러 써내려 간 시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악필처럼 갈겨써서 뒤돌아 보았을 때 잘 알아보기 어려운 내 글씨체 같이 희미한 기억들도 많다. '그런데 어떻게 사건들을 정리해야 할까?'' 어떻게 작은 승리를 추적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종이 낱장처럼 이리저리 뒹구는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서 정리할 파일이나 제본할 수 있는 무엇이 필요하다.
지나온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그리고 기억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지워지도록 내버려 두는 일들도 필요하다. 기록이 꼼꼼히 남겨져 있으면 좋겠지만 조금 헐렁한 기억으로 남겨둔 기록들도 다행히 조금은 있다. 이런 것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경험은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라는 책에서 행동, 생각, 느낌이라는 요인으로 몇 가지 힌트를 담아올 수 있었다.
(생각 정리 방법은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이 글에 쓰인 책
-모든 것이 되는 법, 에밀리 와프닉, 웅진 지식 하우 출판사
-경험은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 브라이언 솔리스, 다른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