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by 털찐 냥이

어느 날 갑자기 나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까끌 까끌하고 허무한 모래성 같이 느껴졌었다.


문제를 찾고 싶어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많은 텍스트 대신에 다양한 그림이라는 언어를 읽어갔다. 그리고 마치 헨젤과 그래텔의 빵 부스러기를 찾듯이 생각의 실마리를 줍게 되었다. 나의 빵 부스러기는 작은 경험들이었다. 근사한 무엇이 되지 못하였다고 실망했으나 멈추어버리기에는 삶은 너무도 긴 장거리 여정이다. 주저앉으면 모래폭풍에 온 몸이 굳어버리고 일어나고 싶어도 늙고 쇠약해진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될 것 같았다.


어릴 적 놀이처럼 술래를 피해서 ‘얼음’ 하고 멈췄어도 괜찮다.
‘땡’ 해줄 누군가 없어도 스스로 ‘땡’ 하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나를 잘 아는 친구는 나 이기 때문에 스스로와 좋은 대화를 쌓아가는 것이
좋은 어른이 되는 길이라 생각한다.

타인이 보는 시선에 또는 내가 판단하는 나의 기대감에 실망하여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실패했다고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면 나는 오늘도 작은 발버둥을 칠 것이고 주어진 매일 하루 동안 일어나는 작은 경험으로 성장할 수 있다.


아침에는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넘기면서 마음을 두드리며 생각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만 더 잘 살면 돼

그리고 자기 전에는 통통해진 배를 두드리며 생각의 알림을 맞춘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만 더 잘 살면 돼


선물처럼 갑자기 만족스러운 하루가 짠~하며 나타나는 일은 드물기에 스멀스멀 좋은 일이 생길 만한 것들을 모으려고 오늘을 재료 삼는다. 물론 경험만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는 없다. 또한 경험의 크기가 크지 않기에 앞으로의 세상을 충분히 대응할 수도 없다. 고정된 패턴이나 생각의 오류에 오히려 덫이 될 수도 있으니 항상 사방을 잘 살펴봐야 한다. 나보다 더 어른이 외국에서 자전거를 가르쳐주면서 했던 말처럼 말이다.


“자전거를 타다 사거리를 만났으면 일단 그 자리에 서! 그리고 사방을 다 살펴봐.”

낯선 도로에서 미숙한 자전거를 타려고 하니 여간 긴장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의 경험이 별로 소용이 없어지는 순간도 올 때가 있다. 내가 어디에 고여있는지 종종 확인하려고 한다. 나의 관심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책과 영화 뉴스 등을 기울이며 변화를 감지하고 생각이 고여있는 웅덩이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참으로 어리석은 나에게 실망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유명한 개그맨들이 동네를 걸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인생을 통과하며 쌓은 거대한 경험들을 얇고 깊은 주름에 덮고 겸손하게 앉아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젊은 친구들의 생기발랄함과 그 나이 때의 치열한 고민들을 보면서 ‘맞아 나도 저랬어.’ 싶다가도 길에서 흔히 마주치는 어르신들의 모습이지만 이야기를 들으면 가리워진 이야기를 찾게 된다. 마치 굴착기로 파내서 그 속 깊은 동굴을 찾아내듯이 깊은 울림이 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누군가 이런 글을 남겼다. 방송에 나왔던 그곳은 본인이 아는 동네이고 잘 사는 곳이 아니다. 거기를 지나갈 때면 ‘이 분들은 젊었을 때 왜 열심히 안 살아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속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인생의 깊은 동굴을 울림을 듣고 나니 본인의 판단이 잘못되어서 반성했다는 내용이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모습으로 앉아있는 어르신들은 우리와 비슷한 나이에 험한 고생과 헌신의 삶을 사셨었다. 그 많은 땀들이 남긴 것은 야속한 주름이다. 젊음이 지워버리고 남긴 것은 화려한 치장이 없으면 오해하게 된다.


어릴 때는 말끔하게 차려 입고 뾰족한 구두를 신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이 어른스러워 보여서 좋아 보였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수록 손으로 할 수 있는 일, 나의 사소한 손놀림이 타인에게는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일이 부러워진다. 살면서 고마움을 느꼈던 사람들은 내 손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해주는 사람들이었다. 종종 가는 미용실만 생각해도 그렇다. 단골 미용실이 없다면 얼마나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지 머리를 망쳤을 때의 기억을 떠오르면 겪어본 사람은 공감이 될 것이다. 근래에 유튜브에서 유명한 헤어 디자이너를 발견했는데 주로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염색, 파마 등으로 어울리지 않게 이상하거나 손상되거나 난감해진 헤어 스타일을 회복시켜주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꽤 많은 시간과 과정을 거쳐서 고민을 해결해가는 것을 보면 내 머리가 다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판단의 오류를 크게 범한 적이 있었다. 오래전, 대학원을 가기 위해 경복궁 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는데 그 동네에는 오래된 골목들이 있었다. 시간이 날 때면 동네를 구경했는데 매우 허름한 가게에서 기름떡볶이를 만드는 할머니가 보였다. 작은 골목을 지날 때마다 저 가게는 아무리 봐도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연세가 많은 분이 이런 골목에서 장사를 하실까?’ 물건들을 보니 꽤나 오래 이 골목을 지키신 것 같은데… 쓸모없는 생각들만 하면서 “떡볶이 좀 사가요”라고 쳐다보는 할머니 옆을 지나갈 뿐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 할머니의 떡볶이가 결코 우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젊었을 때부터 오랫동안 어려운 학생들을 후원하셨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본인의 살림을 늘리기보다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분이었다는 것이다. 허름하고 낡고 작은 가게에 내 오만한 눈이 오류를 일으킨 것이다. 또각또각 굽 소리를 내며 무심히 걸었던 내 구두 소리가 참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제는 높은 굽은 잘 신지 않는다. 신어도 예전처럼 예뻐 보이지 않는다. 예쁜 나이가 아니라서 그런 걸까 싶다. 돌아보니 신발의 굽이 왠지 마음의 굽을 높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이제는 한쪽 무릎을 꿇고 길 고양이에 밥을 주려면 낮은 신발이 편하다.


요즘은 작은 경험의 조각 케이크를 모으는 것이 예쁜 구두를 사는 것보다 더 관심이 간다. 나처럼 제 멋대로의 모양이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을 정도로 반짝이고 예쁘지 않다고 해도 좋다. 안 좋은 경험들을 잘 수용하고 좋은 경험들을 만들어가며 살아가려 노력한다.


오늘의 모습이 완성작 같이 보인다. 오늘까지 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언젠가 모든 조각 케이크나 작은 빵이 모여서 디저트 세트처럼 버라이어티하고 풍성한 삶을 이루는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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