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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털찐 냥이 Nov 02. 2021

타인의 배려

나를 채워가는 맛 _ 크레이프 케이크

홈베이킹을 하다가 망한 빵이 너무 많았다.

설탕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줄였다가 맹맹한 밀가루 맛 빵을 만들기도 하고 쿠키는 태워먹고 케이크의 속은 익었는지 알 수 없어서 계속 찌르다 보면 젓가락 구멍이 숭숭 났다. 혼자서 책을 보고 만들다 보니 부족한 기술과 경험으로 내 속은 한숨으로 푹푹 쪘다.


한 끼 알바는 손님과 인연을 끊지 않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제 다 틀렸다는 생각이 들거나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을 때에
 미래 식당을 떠올려줬으면 좋겠다.
 한 끼 알바는 당신이 어떤 상황에 있든
 미래 식당에 가면 어떻게든 된다는 생각으로 올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이다.

                      -당신의 보통에 맞추어 드립니다 -


 일본의 미래 식당은 한 끼 알바라는 재미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누구나! 한 번 손님으로 왔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청해서 한 끼를 주방을 돕는 손길에 대한 수고로움으로 먹을 수 있다. 이 시스템의 이면에는 단순히 노동력을 쓰겠다는 의도가 있지 않았다. 놀랍게도 경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한 번이라도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주는 경험의 선물이었다. 한 번 해보고 배우고 싶어도 그 경험의 기회를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렵던가. 거절의 경험을 쓰라린 경험을 타인을 향한 수용의 기회로 만든 식당 주인의 마인드에 놀라웠다. 서투른 알바의 실수를 포용하고 잘 처방할 수 있는 순발력이 있기에 받아줄 수 있는 자신감으로도 보였다.



타인의 배려

나의 경험은 어떠한 경우에는 타인의 배려가 스며들어있을 때가 있다. 내가 홀로 주체적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으나 혼자 무엇을 하는 것보다는 타인과 얽혀가면서 해야 하는 상황들을 더 빈번하게 마주친다.


언젠가 카페에 앉아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바로 뒤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심기가 불편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맞이했다.

"내가 부탁을 받아서 자네를 소개받은 거잖아? 그런데 지금 이렇게 늦게 나타나면 내가 어떻게 생각을 할 거 같아?"

가만 분위기를 보니 대략 1시간 정도 상대방이 늦은 것 같았다. 아마도 취업과 관련된 만남 같았는데 조언을 해주는 입장이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어린 목소리의 남자는 핑계 어린 변명을 하면서도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해대고 있었다. 다행히 아저씨는 그리 마음이 모질지 않은 분이었다. 대화를 이어갈수록 목소리에서 노한 색깔이 옅어졌다. 아직 사회생활 경험이 없어 보였던 청년은 모를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좋은 배려이고 기회였을지.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나의 재능을 알아봐 줄 누군가를 어려운 면접이 아니라 한 번만이라도 만나서 편하게 풀어놓고 싶다는 간절함을 느낄 때 말이다. 울먹이면서 나왔던 면접의 기억이 쓰라리게 있기에 나는 그런 기회가 간절했었다. 좁은 테이블 앞에서 말꼬리를 왜 그리 부여잡던지 날카로운 면접의 기억은 정말 씁쓸하다. 보여줄 수 있는 자료를 더 보내라고 하고 몇 번 면접 시간을 변경하더니 아침 출근시간에 오라고 했다. 여러 프로젝트들을 했기에 잠긴 목소리를 떨어가며 설명을 하고 싶었지만 쳐다도 보지 않았다.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대답할 거면 여기 왜 왔냐며' 트집을 잡는 듯했다. 노련한 부서의 수장의 태도가 어른이 된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팔짱을 끼고 바닥을 쳐다보며 비웃음을 날리는 그 모습에 나의 자신 없는 태도를 탓하며 돌아 나오던 때가 아프게 기억난다.


어느 날, 낮이었다.

제법 덩치가 큰 스피치 강아지가 경비아저씨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사람을 너무도 좋아하는 녀석이었다. 동네 꼬마 여자아이들이 어디에서부터 인가 놀아달라고 쫓아오는 녀석을 아파트 단지 안까지 데리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주인을 찾을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 관리실에서 유기견 보호소에 연락을 한 것 같았다. 아무도 없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녀석이 안쓰럽고 귀여워서 옆에서 잠시 친구가 되어주었다.

"데려가서 키우세요. 유기견 보호소 가면 못 나올 수도 있어요."

길을 지나가던 관리실 직원이 말을 던지고 간다.

'아... 그런가?'

그런데 녀석의 덩치와 넘치는 에너지가 우리 집 거실보다 더 커 보였다.


결국 녀석은 순순히 유기견 보호소로 떠났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잠이 오지 않았다. 마음이 불편해서 뒤척이다가 남편에게 그 녀석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유기견 보호소를 찾아내서 전화를 걸었다. 경기도에 있는 한 곳의 보호소. 전화를 받은 담당자는 여기는 신고자만 방문할 수 있다고 딱딱하게 답변을 전했다. 할 수 없이 힘 없이 전화를 끊으면서 '강아지가 그곳으로 가기 전에 잠시 같이 있었는데 걱정이 돼서 한 번 보고 싶어서 전화했었다'라고 잘 있으면 됐다고 말을 마쳤다.

그런데 잠시 2초간의 정적 뒤에 "아 신고하신 분이세요? 그럼 방문 가능하세요."라며 내가 아닌 옆에 다른 사람이 들으라는 목소리톤으로 바꾸더니 약속을 잡아주었다.


산 넘고 물 건너 한참을 달려서 유기견 보호소가 있는 낯선 산자락 아래 어디쯤에 도착을 했다. 민망한 손을 가리기 위해 바카스 한 박스를 전달하며 감사의 말을 전했고 그 녀석을 볼 수 있었다. 정작 녀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마당에 나와서 방방 뛰느라고 나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산책을 빙자한 널뛰기를 평지에서 몇 번 하고 나서 나는 기진맥진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제야 나를 바라보고 있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보였다. 그중에 까만 녀석이 눈에 들어왔는데 마치 사람처럼 말을 건네기 직전인 표정으로 가만히 미동도 없이 쳐다보던 녀석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듯이 보였다. 한 때 주인과 뛰어놀았던 기억이 난 것처럼 너무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이 생각이 난다. 고불고불 거리는 길을 돌아 나오면서 처음 유기견 보호소를 가보았고 그곳에 수고하는 손길들을 보았고 간절한 눈망울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작은 아파트에 대형견을 데려올 수 없어서 빈 발걸음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속으로 언젠가를 기약하게 되었다. 내가 그곳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전화를 받은 담당자의 배려 덕분이었다. 녀석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나에게 그의 작은 반칙은 수년이 지나도 기억하고 싶은 경험을 주었다.





-이 글은 브런치 북_ 어른 사춘기의 생각정리 _ chapter.2  나를 채워가는 맛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 글에 쓰인 책

:당신의 보통에 맞추어 드립니다 (일본 진보초의 미래 식당 이야기), 고바야시 세카이 , 콤마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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