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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털찐 냥이 Jan 14. 2023

구독서비스 이용료는 0원

손님을 오랫동안 보고 싶네요.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경험하는 것이 경쟁력이 된 요즘, 구독 서비스는 개인의 경험을 확장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매일 쏟아지는 신제품과 정보 속에서 새로운 제품의 장점과 특징을 찾아내고 어떤 기능이 나에게 더 맞는지 또는, 반대로 사용상의 단점과 불편한 요소는 무엇인지를 알고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내 취향에 맞는 적절한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의서_구독서비스_영진닷컴 2022>



작년 한 해 온라인 소비가 많이 늘었다. 주로 소소하게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간식거리를 사는데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보니 자잘한 소비가 늘었다. 그리고 어찌하다 보니 구독 서비스를 새롭게 추가하면서 매달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지출의 범위를 늘려버렸다. 야금야금 하나씩 붙어버린 거머리같이 쪽쪽 매달 정기 결제를 하며 피 같은 돈을 슬금슬금 가져간다. 물론 내가 누리는 즐거움이 있으니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제발~)


'OTT 구독 가장'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부모님께 맛보기로 보여드렸다가 결국 무한대의 문이 열리면서 부모님의 즐거움을 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웃자고 하는 말이었지만 '구독 가장'이라는 단어에서 구독의 무게가 살짝 느껴진다.


내가 유료로 구독을 하고 있는 서비스로는 아직 읽을 세상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는 e-book 서비스, 포털에서 쇼핑을 하면 추가로 포인트도 주고드라마나 영화도 같이 볼 수 있는 영상 서비스, 신용 카드를 만들면서 연계된 또 다른 영상 서비스가 있다. 이 외에도 유튜브, 공공 도서관의  e-book 책과 잡지등 매우 빈번히 톡톡 치는 행동만으로도 여러 문을 열고 닫으며 읽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예전에는 읽는 것에 약간의 집착이 있던 적이 있었다. 글자만 보면 제품 설명서라도 붙잡고 천천히 꼭꼭 씹어가며 읽었다.


글자를 붙들게 된 이유는 심심함과 불안이었다.


심심할 때에는 시간의 공백이 크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읽었다. 일을 할 때에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뒤쳐질까 봐 불안해서 읽었던 것 같다. 글을 읽든 그림과 영상을 읽든 눈과 뇌는 피곤하다. 나의 뇌를 좀 쉬게 해줘야 하는데 세상에는 읽고 보고 느껴야 하는 타인들의 말과 행동이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내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따로 찾아야만 타인의 생각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매일 걷는다. 그리고 길고양이에게 말을 걸어본다.


내가 운영 중인 길고양이 밥집은 오늘도 문전성시였다. 밤새 내린 비에 길고양이 전용 밥집이 흙탕물이 된 것 같았다. 난감하게 주춤하며 밥집 앞에 서있는 녀석들을 창가에서 발견했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작은 녀석들을 반갑게 불러본다.


"안~녕♪"

약간 높은 톤의 목소리를 아래로 보내본다.

녀석은 고개를 휙 휙 거리더니 목을 꺾어 쳐다본다.

"밥 줄까?', '밥 줘?"

밥이라는 단어를 참 잘 알아듣는다.

기특한 녀석이 얌전히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며 앉는다.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1층 작은 화단에 밥을 먹으러 오는 녀석들 중에는 청소년기를 지나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이미 몇 번 베란다에서 사료를 투하해서 줘본 경험이 있기에 학습이 되어있다. 작은 봉지에 사료를 담아서 아주 살포시 낙하를 시킨다. 비닐 겉면에 묻힌 꼬리 한 사료냄새에 봉지 입구를 찾아서 먹을 줄 안다. 나중에 천천히 나가서 빈 봉지를 수거하고 사료통에 밥을 채워놓곤 한다. 다행히 1층에 사는 아주머니는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베란다 커튼을 거의 열지 않으셔서 조용히 화단을 이용할 때가 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길냥이들에게 몇 년째 '사료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길고양이 손님들이 개별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구독 기간은 사실 그다지 길지 않다. 오랫동안 밥을 먹어주면 좋겠는데. 대부분의 손님들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나라로 갔다. 하나, 둘 떠나고 잠시 동네가 조용해진다. 그러다가 또 새로운 손님들이 온다. 마음 아픈 일이 많다. 그래서 잠시 손을 뗀 적도 있다.


 내 밥집의 구독 서비스는 이용료가 0원이다. 사료와 간식, 더우나 추우나 챙겨야 하는 매일의 수고를 따져보면 손해 보는 장사이다. 그저 빈 그릇 매출이다. 오늘도 손님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건강함을 잃지 않고 살아있어주는 것이 기대의 전부이다. 순수익 마이너스로 운영하고 있는 이 서비스는 언제까지 가능할까? 밥집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 눈에 보이면 먹여야 한다.'는 마음은 쉬이 꺾일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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