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살이 5년 차. 내가 가진 짐은 소형차 트렁크에 모두 들어간다
시작은 이랬다. 1년간의 워킹홀리데이를 위한 짐 챙기기. 항공사 규정에 맞춘 23킬로짜리 캐리어 하나와 뒤에 맨 배낭 하나로 나는 첫 해외살이를 시작했다.
1년 뒤에는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짐은 꽤나 단촐했다. 열흘동안 입을 수 있는 옷과 속옷정도가 전부였다. 내가 워홀을 갔던 곳이 겨울에도 한국에 가을 정도의 날씨를 유지하는 호주의 브리즈번이라는 도시였기에 추운 날씨를 위한 두꺼운 옷은 거의 챙기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캐리어가 실용적이지만은 않았다.
옷을 최대한 줄이고 줄여 남은 캐리어의 4분의 1은 필름카메라, 만년필, 그림공책, 그리고 몇 권의 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해외에 나가서도 한국에서 했던 취미 생활을 계속 유지할 거라 믿었다. 아니, 오히려 해외에서 새로운 것들을 보고 느끼는 만큼 더 많이 읽고, 기록하고, 더 많이 나를 들여다보게 될 줄 알았다.
브리즈번에서의 첫 일 년간 내가 살던 방은 놀라울 정도로 썰렁했다.
집주인이 사둔 기본적인 가구 -침대, 옷장, 책상 - 외의 다른 물건은 없었다. 곧 떠날 곳에 무언가를 사서 채워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워홀을 떠난 목적 자체가 돈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 방엔 취향이랄 게 없었다. 가장 저렴하고 심플한, 작은 방에 맞는 가구들만이 들어가 있었다. 그마저도 오랜 시간 여러 사람에 걸쳐 사용되어왔던 것들이기에 아귀가 뒤틀려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고 곳곳에는 생활 기스가 마치 무늬처럼 수십 개가 나있었다. 이불보는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봤던 것 같은 촌스러운 꽃무늬여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당시 주 6-7일을 밤낮으로 일하던 내가 집에 있던 시간은 오직 자는 시간. 그나마 쉬던 하루도 지난 6일간의 피로를 풀기 위해 하루 종일 침대에서 누워서만 보내거나 아예 밖에 나가서 들어오지 않았다. 나에게 집은 집이라기보단 숙소에 더 가까웠다.
첫 몇 개월간 내가 구매한 건 일을 할 때 신어야 하는 검은색 바지와 신발, 그리고 하얀 셔츠 정도. 내가 너무 팍팍하게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저 지나가는 생각에 불과했다. 나에겐 모아야 할 돈이 있었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만큼 차곡차곡 쌓여가는 통장잔고를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굳이 무언가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당시 내가 샀던 물건 중에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닌 것은 브리타 정수기정도였다. 아무리 호주 수돗물이 안전하고 깨끗하다지만, 평생 정수된 물만 마시고 자라온 나에겐 수도꼭지를 열어 바로 물을 마시는 게 어딘가 비위생적으로 느껴졌다. 간이라도 정수를 해 먹자라고 생각하여 사게 된 브리타 정수기가 호주에서 산 가장 부피가 크고 비싼 물건이었다.
그 브리타 정수기조차 반년을 쓰지 못했다. 이리저리 지역이동을 하다 보니 캐리어 한편에 박혀있던 정수기는 어느새 여러 군데 금이 가 있었다. 다시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 무렵 나는 한 달간의 호스텔 생활을 막 시작하려던 차였다. 나에게 허락된 공간은 2층 침대의 1층과 캐리어를 간신히 넣을 수 있는 수납함뿐. 그 공간에서 브리타 정수기를 가지고 있기란 사치였다. 그렇게 나는 수돗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나는 여러 가지를 버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핸드백은 캐리어 무게 초과를 이유로 공항에서 버려지게 되었고, 그림을 그리고자 가져온 만년필 잉크와 그림 공책, 그리고 책들 역시 변질과 무게를 이유로 버려지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게 되었다. 물건이 나를 하나 둘 떠날 때에는 마음이 싱숭생숭했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삶에 당장 필요했던 물건이 아닌 나의 취미나 여가 시간에 쓰던 것들이기에 그 물건들을 애초에 거의 쓰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1년간의 호주 워홀이 끝나고도 호주에 더 머물게 되면서는 한 도시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기로 결정을 했기 때문에 앞으로 3년간은 이 도시에 머물겠구나 생각했다.
대학 입학 준비를 마치고 첫 학기를 시작할 때 즈음,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전날까지 입학 준비와 일에 치이던 나는 이사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짐을 싸기 시작했다 모든 짐을 싸고 방을 치우는 데에는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집에서는 그래도 1년 가까이 살았음에도 이렇게나 짐이 없다는 사실이 묘했다. 1년 동안 나름 이곳에서 '살아왔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저 '거주'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사를 도와주러 온 친구는 캐리어 하나 달랑 가지고 나온 나를 보고 "그게 다야?(That's it?)"라고 물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다른 친구의 이사를 도와줄 땐 차로 두세 번은 왔다 갔다 해야 했다며, 내 짐은 트렁크에 반도 차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다른 친구' 역시 나와 비슷하게 워킹홀리데이로 호주를 와서 몇 년간 이곳에서 거주를 했던 친구였다.
이사를 하고 몇 주 후 그 친구를 만났다. 나는 그녀에게 왜 그렇게 짐이 많았냐고 물었다. 그녀는 주방도구부터 시작해서 서랍장, 옷, 하다못해 접시나 컵 같은 잡동사니가 많아서 그렇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이곳에서 정착을 하는 동안, 나는 여태 계속 떠날 준비를 하며 지내고 있었구나.
나는 내가 이곳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상태로 나를 두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는 것에만 쏟느라 정작 내가 머무는 공간에 마음을 붙일 틈을 주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3년 전, 그러니까 해외생활을 한 지 1년 반이 지났을 때이다. 그 사이 나는 이사를 세 번 넘게 다녔으며 중간에는 노르웨이에서 반년을 지내다가 다시 호주로 돌아왔다.
3년 전에 비해서는 짐이 늘어나긴 했다. 이젠 캐리어 하나로는 부족하고 두 개는 있어야 한다. 여전히 단촐한 짐이지만, 이제는 그 무게에 일을 위한 짐만이 아닌 나를 위한 짐들이 섞여 있다. 현상한 필름, 쓸데없이 무거운 몇 권의 종이책, 가끔씩 입는 예쁜 옷, 우쿨렐레 그리고 내 취향의 잡동사니들.
나는 여전히 고작 반년 뒤에 내가 어디서 살고 있을지 알 수 없는 방랑자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만큼 나는 여전히 미니멀리스트로 살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떠날 준비만을 하며 지내지 않는다. 내 방 곳곳에 있는 쓸모없는 것들은, 나를 이곳에 비로소 머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