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날로그적인 방식의 가장 디지털적인 결말

왜 나는 필름카메라를 사랑하는가

by 앨리스

고등학생 때부터 필름카메라는 나의 가장 큰 로망이자 낭만이었다.


언제 어떻게 필름카메라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이 나는 건, 몇몇 장면들, 가령 처음 필름카메라 가게에 방문했을 때, 알바비를 모으고 모아 십몇만원 짜리 필름카메라를 손을 벌벌 떨며 구매했을 때, 필름카메라를 들고 어릴 적 살던 동네에 놀러 갔을 때이다.


호주에서든 노르웨이에서든, 하다못해 다른 나라로 짧게 여행을 갈 때도 필름카메라는 늘 가방 안에 들어 있었다. 일주일간의 베트남 여행을 가며 고작 배낭 하나를 들고 갔지만 그 배낭 안에도 필름카메라를 기어코 넣어갔던 것을 기억한다.


사진을 단 한 장도 찍지 않고 돌아온 적도, 몇 년간 필름카메라를 꺼내지도 않아 카메라 뒷부분이 완전히 녹슬어버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필름카메라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가는 나의 삶에서 가장 아날로그스러운 것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최근 이사를 하며 짐을 쌌다가 다시 정리를 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저 거주만 하지 말고 제대로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사였다. 지난 반년 간 열어보지 않았던 짐 박스를 열어 잡동사니를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잘 입지 않는 옷, 오래전 받았던 편지 등 여러 가지가 나왔지만, 그중 나의 시선을 가장 사로잡았던 것은 구겨진 현상된 필름이었다.


그 필름은 고작 몇 개월 전, 노르웨이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찍은 것이었다. 단순히 찍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직접 현상과 스캔까지 마쳤던 필름이었다. 이 필름은 오래 간직하리라 생각했던 것이 9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멀쩡한 것도 있었지만 절반 이상은 어딘가가 접혀있거나 스크래치가 나 있었다. 이사하며 다른 물건들에 눌렸을 수도 있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박스 안에 밀어 넣는 과정에서 망가졌을 수도 있다.


나는 여태 다 찍은 필름을 어떻게 다루어 왔나.

그 질문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나는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좋았다. 묘하게 빛이 바랜 듯한 색감도, 필름에 따라 달라지는 색감도 좋았다. 무엇보다 핸드폰으로 찍은 수십 수백 장의 사진 보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단 한 장의 사진을 더 오래, 많이 보게 된다는 사실도 좋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그렇게 찍은 결과물을 결국 파일로만 간직해 왔다. 처음 필름카메라로 찍었던 사진들도 여전히 내 컴퓨터와 사진첩 어딘가에 남아 있지만 필름 그 자체는 어디에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과정 자체를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필름을 넣을 때 카메라에 장착되며 나는 소리, 한정된 롤을 낭비 없이 쓰기 위해 한 컷 한 컷 공을 들이며 빛, 각도, 거리 등을 생각하는 순간, 현상소에 맡긴 후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혹은 직접 현상을 하기 위해 필름을 온갖 화학 약품에 담갔다 빼며 혹여나 물 한 방울 들어갈까 조심하던 과정까지.

직접 필름과 카메라 부품을 만지고, 한 컷을 위해 고심하고, 현상이 되기까지를 기다리는 그 순간들이 좋았던 것이다.


“결국 남는 건 사진뿐이야.”

숱하게 들어왔던 말이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기억이 희미해질 때, 결국 내가 볼 수 있는 건 사진뿐이니.


하지만 결국 내 안에 남는 건 선명한 이미지가 아니라 그 장면을 담기 위해 멈춰 서 있던 시간이다.


처음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을 때, 그때의 내가 무엇을 찍었는 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의 망설임과 설렘,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떨림은 아련히 기억 한편에 남아있다.


기록은 디지털의 영역일지 몰라도, 기억은 여전히 아날로그의 영역에 머물러있다. 그것이 내가 아날로그 한 물건들을 여전히 들고 다니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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