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부터 '2016년 회고 대작전'을 펼치고 있다. 올해 있었던 중요한 사건들을 월 단위로 정리하고, 굵직굵직했던 일들은 수첩을 뒤지며 그때의 생각이나 감정들을 다시 상기하고, 아주 자잘한 것부터 시작해 내년까지 이어서 해야 할 것들을 리스트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올해초, '내 삶을 윤기있게 만들기 위한 일'로 여러가지를 계획했었으나 그나마 꾸준히 한 건 역시 '책 읽기'였던 것 같다. 올해를 닷새 남긴 오늘을 기준으로 서른여덟 권을 읽었는데 사실 읽다가 어렵거나 지겹거나 그냥 다른 책이 더 읽고 싶어져서 책장에 꽂아놓은 것만 열 두권이니 쉰 권쯤 읽은 꼴이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는 책을 읽으면 줄을 치거나 태그로 표시해놓은 단락을 에버노트에 직접 타이핑에 모아두는데 올해의 기록들을 다시 읽으며 '아, 맞아. 올해 이런 책을 읽었었지? 이 책 이 부분이 참 좋았는데.. 가만, 이 부분은 처음 읽는 것 같은 기분인데?' 하며 여러가지 감상에 젖었다. 그러다, 올해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책이 내년에는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의미로 다가갈지 모르니 올해 읽었던 책 중 가장 좋았던 책 딱! 열 권만 꼽아보자 싶었다.
그래서 선정한 <내맘대로 올해의 책 TOP 10>은 아래와 같다. (날짜는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날짜이다)
2016/01/09 지적자본론 by 마스다 무네아키
2016/02/09 유쾌한 크리에이티브 by 데이비드 켈리 & 톰 켈리
2016/03/17 꿈꿀 권리 by 박영숙
2016/05/13 연필 하나로 가슴 뛰는 세계를 만나다 by 애덤 브라운
2016/09/15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by 이민경
2016/10/25 생각하는 늑대 타스케 by 서재근
2016/11/15 단속사회 by 엄기호
2016/12/04 린인 by 셰릴 샌드버그
2016/12/06 82년생 김지영 by 조남주
2016/12/18 여자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by 린다 뱁콕, 사라 래시버
이렇게 모아놓으니 나의 요즘 화두나 취향이 그대로 들어나는 것 같아서 약간 낯이 뜨겁긴 하지만, 그래도 분명 좋았으니까:)
각각의 책에서 좋았던 부분만 발췌해둔 에버노트를 하나씩 열며 그 책에서도 가장 좋았던 문장들만 옮겨본다. 이 책을 읽을까 말까 살짝쿵 고민이 드는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1. 지적자본론 by 마스다 무네아키
"기획 회사는 고객 가치의 확대를 도모하는 회사다. 바꾸어 말하면, 고객에게 행복이나 풍요로움을 주기 위한 기획을 낳는 회사라는 뜻이다. 그 행복이나 풍요로움이 효율과는 다른 방향을 가지고 있는 이상, 기획 회사라는 조직의 완성도를 효율성으로 측정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 내가 '휴먼 스케일'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효율적이어서가 아니라 행복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휴먼 스케일 조직의 구성원에게 일부러 효율성이 나쁜 일을 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효율성을 유일한 잣대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효율성은 목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결과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처음부터 그것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2. 유쾌한 크리에이티브 by 데이비드 켈리 & 톰 켈리
"훈련 받은 분석적 사고자에게 공중에 매달려 있는 '미결' 문제는 불편하다. 그들은 열심히 답을 내놓고자 계속 머리를 쓴다. 일상적인 문제 해결 상황이라면, 그리고 답이 한 개만 있는 경우라면 그 방법은 매우 효율적이다. 그러나 창조적 사고자들은 개방형 질문과 마주했을 때 바로 결론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그런 질문에는 가능한 해답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는 그들은 처음에는 일단 '넓게' 훑는다. 그런 식으로 다수의 가능한 접근법을 찾아낸 다음, 가장 타당해 보이는 몇 개의 아이디어들로 범위를 좁힌다."
"당신이 일단 어떤 것을 창조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정원을 가꾸는 일이든, 새로운 회사를 창업하는 일이든,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이든, 모든 것의 뒤에는 항상 그것을 추동하고 있는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현대사회의 모든 것은 누군가가 내린 결정들의 집합적 결과다. 그 누군가가 당신이 되면 안될 이유라도 있는가? 창조적 자신감을 발현할 때, 당신은 현상 유지 상태를 개선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게 된다. 어떻게 디너파티를 열지 어떻게 회의를 이끌지 등 모든 것이 해당된다. 창조적 자신감을 발휘할 기회가 오면 그것을 잡아야 한다."
3. 꿈꿀 권리 by 박영숙
"책은 종종 삶이라는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별이나 바람이나 물의 흐름처럼 길을 찾아갈 실마리였고,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을 때 충분히 도움닫기를 하는 데 필요한 구름판 같은 것이었다."
4. 연필 하나로 가슴 뛰는 세계를 만나다 by 애덤 브라운
"정신병자와 리더의 차이는 그가 추구하는 바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있는지의 여부다."
5.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by 이민경
"당신이 흑인이 아닌데 흑인이 겪은 차별을 알고 싶다면 백인에게 들어야 합니까, 흑인에게 들어야 합니까? 또, 그 경중은 누가 정해야 합니까? 당신이 차별을 당하는 쪽으로 태어난 이상, 그게 존재하고 아니고를 말할 권리는 당신에게밖에 없으니까요."
6. 생각하는 늑대 타스케 by 서재근
"통찰력은 타인의 의견에 의존하지 않고 본인의 생각에 자신감을 가질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예전에 미처 가보지 않았던 방향으로 생각을 펼쳐나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만났을 때 기꺼이 섞어볼 용기가 생기며, 그러다 자신의 생각보다 더 좋은 생각을 만나면 그때까지의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봐 김 대리, 기운 내라고. 이건 그냥 카덴차 부분일 뿐이야.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당신 방식대로 연주해봐. 모두들 그걸 기다리고 있다고!'"
7. 단속사회 by 엄기호
"일본 신도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이세신궁은 20년에 한번씩 완전히 새로 짓는다.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아예 장소까지 옮겨 새로 짓는다고 한다. 왜 이렇게 부수고 짓는가에 대해 많은 이들이 다각도로 이야기해왔지만, 그중 나에게 가장 매혹적으로 다가온 설명은 '황천의 개'에 실려 있는 후지와라 신야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일본인들이 생각하기에 그들이 전승해야 하는 것은 건물 그 자체가 아니라 건물을 짓는 기술이다. 이세신궁을 짓는 데 참여한 목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가장 멋진 작품을 만들어야 하고 동시에 그 기술을 자신의 후학에게 전수해줘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목수라 하더라도 자기 혼자만 그 기술을 간직하고 후학에게 물려주지 못하면 그 기술은 당대에 소멸하게 되고 마찬가지로 이세신궁 또한 당대로 끝나는 건물이 되고 만다."
8. 린인 by 셰릴 샌드버그
"여성이 직면한 숱한 장애물의 뿌리에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잘못 선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부정적 시선을 받게 되리라는 두려움, 비판의 대상이 되리라는 두려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이 그것이다. 거기에 나쁜 어머니나 나쁜 아내나 나쁜 딸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삼위일체가 가세한다."
"나는 기회에 달려드는 여성이 늘어날수록 세상에 존재하는 힘의 구조를 바꿀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리더의 자리에 오르는 여성이 늘어날수록 여성 모두가 더욱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서로 겪은 경험을 이야기하면 공감대가 형성되어 여성에게 필요한 변화의 불꽃을 피울 수 있다."
9. 82년생 김지영 by 조남주
"내가 결혼을 할지 안 할지, 애를 낳을지 안 낳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그 전에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일에 대비하느라 지금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살아야해?"
10. 여자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by 린다 뱁콕, 사라 래시버
"만약 홀수 날짜에 태어난 사람들보다 짝수 날짜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항상 급료를 더 적게 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그안에 사는 사람들은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도무지 터무니없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여자는 짝수에 태어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절반을 차지한다. 왜 우리는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과소평가되고 나쁜 대우를 받는 사회를 참아야 하는가? 요구할 때만 적용되는 공정성이라면 그것은 하나의 원칙으로서 의미가 없다. 공정성은 수헤자가 스스로 혜택받지 못하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조차 지켜지고 보호되어야 한다."
"당신이 장벽을 만나면 게임이 다시 시작되는 거예요. 문제는 당신이 쓰러지느냐 쓰러지지 않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일어나느냐 일어나지 못하느냐죠. 그것이 진정한 게임이에요."
하나하나 곱씹을수록 정말 너무 내 기준, 내 취향이다 싶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한권씩 돌아보며 '아, 맞아. 그런 생각했었지!' 하고 잃어버렸던 감상을 되찾을 수 있는 것 만으로 충분히 의미있다.
책을 많이 읽는 것 보다는 나에게 의미있는 책을 깊숙히 들여다보는 것, 관심있는 주제를 깊이 넓게 읽으며 다양하게 사유하는 것이 훨씬 좋겠지만 여전히 '다독'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에 '내년엔 쉰 권쯤음 읽어야할 것 같은데...'하는 조바심이 든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내년에는 읽기뿐만 아니라 쓰기도 자주 겸할 수 있길 바라며, 무엇보다 '이거 꼭 읽어봐야해!' 하며 추천할 수 있는 책을 많이 만나는 행운이 있길 희망한다. 그럴 수 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