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 Jul 10. 2022

글이 쓰고 싶지 않을 때에도

언제 처음 브런치에 글을 썼나 목록을 쭉 내려보았다. 빠르게 내려가는 목록과 함께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글쓰기 수업이 지나갔다. 어느 신문사 글쓰기 강연을 들으러 갔다 한 시간만 듣고 안 맞는 거 같아 나왔던 적, 인터넷 광고로 뜬 아트앤스터디 온라인 강좌 할인을 보고 충동적으로 글쓰기 수업을 결제하였지만 1.5배속으로 돌려 꾸역꾸역 들으면서도 끝까지 완강을 하지 못한 기억, 독립서점에서 진행했던 초단편 소설 클래스, 신촌에서 열렸던 브런치 대상 작가들의 대상 비법 강연 등 약 몇 년간의 시간이 뒤죽박죽 흘러갔다. 


약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브런치에 글을 하나로 올리지 않았다.


작년 생일쯤 이제는 소설을 한 편 다 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다니던 독서 모임도 정리하고, 브런치도 멀리하였다. 나름 플롯 노트도 만들어서 이것저것 설정을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가 보기 좋게 정리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업무를 할 때, 밤에 잠자리에 누울 때 가끔 브런치에서 오는 알림을 보면서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신호를 간간이 확인했다. 날이 추워서, 사무실이 이사해서, 집안에 행사가 있어서, 새로 전셋집을 구해야 해서 등등 나름대로 이유를 붙이며 다음 주에 쓰자, 다음 연휴에 쓰자,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며 반년을 보낸 지금은 그나마 꾸역꾸역 써 내린 6페이지의 도입부만이 남았다.


초코우유 얼룩이 진 라이언 에코백과 먼지가 뽀얗게 쌓인 인공지능 카카오미니가 눈에 들어온다.

브런치 작가님들 강연회에서 받은 기념품과 경품으로 당시 한 달 전에 공고를 보고 참가 신청하곤 두근두근 당첨을 기다리던 몇 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강연을 듣고 조금만 더 쓰면 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열정으로 틈틈이 핸드폰 메모장에 빼곡히 적어놓았던 쓰고픈 주제들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핸드폰 안에 잠들어 있다. 힘드니까 더 누워있자. 주말이니까 부족한 잠을 몰아 자자. 밀렸던 집안일을 몰아서 해야 하니까 내일 하자. 이런 마음으로 하루 이틀 미루었던 나의 글쓰기는 이제 아득한 먼 과거가 되었다. 


글을 쓰지 않아도 나의 일상은 아무 문제가 없다. 그 시간에 오히려 재테크를 공부하는 게 불확실한 나의 노후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금리, 물가, 주식, 부동산, 코인 같이 몇 년 전만 해도 나보다 몇 살 더 많은 어른의 세계라 여겼던 내용으로 나누는 대화가 이제 주를 이룬다. 아무도 나에게 글을 쓰라 말하지 않는다. 나의 마음만 놓아버리면 나는 큰 스트레스 없이 예능을 보고 드라마를 보며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주말을 온전히 보내도 된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 뭉그적거리다 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 대낮 거리를 걸어 근처 카페로 나왔다. 노트북을 켰지만, 전혀 상관없는 정보를 찾아 읽어가며 딴짓한다. 어젯밤에 보았던 박정민 배우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서점을 접고 나서 1년 정도 책을 안 읽고 유튜브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그가 도달한 결론은, 

"나는 글쓰기를 싫어한다."

글쓰기 싫은 이유 32가지를 가지고 원고를 썼다가 결국 다른 글을 써서 출판사에 건넸다는 담담한 고백이 이토록 공감될 수가 없다. 내 인생에서 약 5년 정도 책이 읽히지 않았던 시기가 떠올랐다. 그 시기에 읽은 책은 입국신고서를 쓰기 위한 여행안내서뿐이었다. 그 시기를 무사히 잘 보내고 이제는 조금이나마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마음 한편에 숙제처럼 독서와 글쓰기가 남아있다. 그도 나도 다른 본업이 있는 사람인데, 누구도 우리에게 글을 쓰라 강요하지 않는데, 자신의 마음에서 글쓰기를 놓을 수가 없다. 


아... 그냥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시원한 라떼를 쪽쪽 빨며 멍때리고 싶다.

머리에 가득한 생각과 다르게 손은 자판 위에서 너울너울 춤추다 이 글을 쓰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떻게 쓰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