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Pisa) 거리 걷기
이탈리아 여행을 떠날 때, 다들 일정 중에 넣는 곳 중 하나가 피사의 사탑이다. 가지런한 잔디밭 위에 세워진 기울어진 그 탑과 함께 설정샷으로 재기발랄한 수많은 사진들을 누구나 인터넷에서 자주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런 설정샷을 찍어보자는 마음에 피사를 일정에 넣고자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면, 대부분이, '사탑 외에는 볼 거 없어요.', '사진으로 보는 그게 전부예요.','반나절도 안 걸리니 다른 도시 가세요.' 등등의 답변이다. 진짜 피사는 볼 것이 없는 도시일까?
아무런 사전 지식없이 기차표가 저렴해서 로마-피사행 티켓을 예약했다. 취소도 안 되는 편도 3시간이 걸리는 기차표를 싸게 샀다고 희희낙낙했던 나는 아침 6시대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바다가 보이는 철길에 살짝 흥겨워하다 설핏 잠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다 9시 20분경에 피사 중앙역에 도착했다. 관광객이 많아서 소매치기가 많다고 소문난 역 앞에는 휑하니 행인하나 없었고, 역 왼편에 안내센터와 작은 동네슈퍼만이 열려있었다.
우선 인포메이션에 들어가 시내 지도를 한장 얻었다. 현지에서 얻게되는 지도는 한국어 여행책자나 인터넷 검색 내용보다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아, 난 이탈리어를 한 자도 읽을 줄 모른다. 그러나 관광의 강국 이탈리아는 대부분의 여행자료가 여러 언어로 구비되어 있다. 제일 보편적인 영어버전이다.
지도 옆 사진만 봐도 피사의 사탑이 2번에 위치함을 알게 되었고, 좀더 자세하게 지도를 보면 노란선과 보라선이 있다. 뭘까 오른쪽 위를 보니 추천하는 Tour1,2이다.
당시 나는 11시 15분에 피사의 사탑을 오르는 프로그램을 예약해놓아서 우선 사탑에 가야했다. 어차피 시간도 여유로우니 걸어서 가기로 했다. 도시의 크기를 몰라서 1시간 안에만 도착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지도를 보며 걷기 시작했다. 노란길과 비슷한 경로로 강가를 걷지 않고 바로 근처 다리를 건너 빨리 가기로 했다.
일요일 오전의 도시는 고요했고, 깨끗한 거리와 중간중간 동네 문방구, 슈퍼, 미용실 같은 작은 가게들이 어린시절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담장보다 큰 정원수를 보니 어릴 적 등교길에 보던 하아얀 목련이 떠올랐다.
이 길을 조금 걸으니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이 보인다. (사실 강이라 하기엔 너무 좁고, 개천이라 하기엔 조정을 타는 사람들이 있어 정의하기 애매했다.) 날이 맑았으면 아름다울 수도 있었지만, 운 없게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에 다리를 건넜기에 붉은 벽돌과 흙탕물로 기억에 남았다.
약 20여분 정도를 걸으니 피사의 사탑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아직 10시 정도 밖에 안 되었으니 주변을 어슬렁 둘러보았다. 사탑 옆의 큰 성당이 있는데, 일요일이라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조용히 뒤에서 건물 벽이며 천장을 유심히 보다 나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사진을 찍기에도 불편했고, 화장실은 유료에 사람도 많았다. 다시 사탑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안내 표지판을 봤다. 최소한의 물품만을 휴대하고 사탑에 올라가야 하며, 그 외의 소지품은 무료 락커에 보관을 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뒤편에 사람들이 많이 들락 거리는 건물이 보여 가보니, 무료 물품보관소이다. 먼저 물품을 넣고 20분정도 시간이 남았는데, 진짜 할 게 없어 실내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제서야 인터넷 후기가 이해가 되었다.
사탑 등반을 마치고 잠깐 인근 도시를 갔다가 4시쯤 피사로 돌아왔다. 사탑 근처 맥도날드에 앉아 어디를 갈까 고민을 했다. 비도 그쳤고 어차피 시내가 크지 않기에 피사 대학을 보고 싶어 걷기로 했다. 사탑을 벗어나 5분정도 걸었을까... 관광지의 분위기가 아닌 현지인들의 시내가 나왔다. 그리고 피사 대학 건물들이 보였다. (유럽의 대학은 전공에 따라 이 건물 저 건물이 흩어져 있고, 길가의 빌딩 안에 위치한다.) 상점들과 어우러저 간판이 없으면 대학인지도 모를정도였다. 이 길의 끝에는 아침에 건넜던 강가였다. 운이 좋게도 강가를 따라 장이 섰다. 살게 있나 강가를 따라 구경하기 시작했다. 물품들을 보니 접시, 물통, 세제, 수세미 등과 같은 생활용품들이었다. 마그넷 같이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은 전혀 볼 수 없었다. 한참을 구경하다 해가 뉘엇뉘엇 기울어감이 느껴졌다. 기차를 놓치기 전에 얼른 역으로 가야한다.
다리 건너 거리는 화려한 패션 거리였다. 가로수길을 걷는듯한 느낌이었다. 차량도 보이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세련되었다. 매장도 베네통, 구찌 같이 화려함이 있었다. 어리벙벙하니 고개를 둘러보며 걷다보니 피사 중앙역 앞 건널목이었다.
기차를 기다리며 되새겨본 피사는, 어린 시절의 향수와 오후장이 서는 활기참과 화려한 패션이 있는 도시였다.
한 번 피사의 거리를 걸어보고 싶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