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나(Verona), 기품이 넘치는 도시.
베네치아와 밀라노 중간에 위치한 베로나는 사실 패키지 여행에서 잠깐 관광을 도는 도시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국인 관광객들을 매우 많이 봤으나, 짧은 시간동안 머물기 때문에 딱 한 곳으로 몰린다.
줄리엣의 집
이 곳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이유는 줄리엣 동상과 자물쇠 걸기 때문이다.
줄리엣 동상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 진다는 속설 때문에 그 쪽만 닳고 닳아 가슴 크기가 다르며, 게다가 주변 철문 가득 연인들의 사랑의 자물쇠가 걸려있어 사랑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3층에 걸친 주택이 줄리엣 박물관 같이 잘 꾸며져 있으며,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풍경도 꽤 특색있고 좋았다. 짧은 시간 머문다면 단연 오고 싶은 곳이긴 하나, 베로나의 정취를 충분히 느끼기에는 아주 아쉽다.
베로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대학이 있어 이탈리아 내에서 학문의 도시로 유명하다. 시내 입구에 해당하는 정류장에 내려 걷다보면 차분하고 품격이 느껴진다. 이 정취에 흠뻑 취해 줄리엣의 무덤으로 향하였다. 좁고 땅굴같은 무덤은 습하고 쾌쾌했다. 휘릭 둘러보고 나오니 입장객들에게 무료로 개방되는 미술관이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둘러볼까 미술관 문을 여는 순간, 화들짝 놀랐다.
미술관 입구에 있는 직원 분은 전동휠체어를 딴 지체장애 여성분이셨다. 그 분도 화들짝 놀라 안으로 들어가셨다. 관람실로 입장을 하면서 힐끗 사무실을 보니, 다들 허둥지둥한 상황인 듯 하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스텝이 별로 없나보다.) 나를 향한 호기심 넘치는 눈빛은 마치 동양인을 처음 본 나폴리의 아기들과 같았다. 대중에게 공개되는 미술관의 스텝 중 다수가 장애인이라니...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과 도시의 품격이 느껴졌다.
미술관을 나와 길거리 벤치에 앉아 간단히 점심을 먹는 동안,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떠올랐다. 영국인 셰익스피어는 왜 머나먼 베로나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을까?
이 의문은 베로나의 거리를 걸어보고 유적지를 돌아보고, 상점에서 물건을 사니 저절로 알게되었다.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나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아주머니의 사교성에, 과일을 권하는 장터 자판 아저씨의 유쾌함에, 주방 기구(슬라이서)를 구입하려는 나에게 제품의 장단점을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는 점원의 깔끔한 친절함이 빛나는 햇살과 차분한 공기가 어우러져 번잡스러지 아니하고 상당히 기품 있음이 느껴지는 이 도시를 배경으로 세상에 가장 로맨틱한 소설이 쓰여지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