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목적을 가져버리면

미얀마를 갔다 왔다. 그러나 소도시 여행은 없었다.

by 서영

미얀마는 원래 출발 전에 비자를 받아야만 여행 갈 수 있는 나라이지만, 최근 부진한 관광객의 증진을 위해 한시적 무비자를 실시했다. (2018. 10. 1~2019. 9. 30) 처음이었지만 운 좋게 동행자도 구했었고, 내가 좋아하는 조지 오웰이 실제 머물기도 했던 나라이기에 출발 전에는 기세 등등하게 여러 도시를 돌아다닐 계획을 세웠다.


계획을 열심히 세운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발행하는 '소도시 걷기'라는 매거진 때문일 것이다. 나의 여행 스타일이 숙소가 다양하게 많이 있는 유명하거나 큰 도시에 자리 잡고 인근의 소도시를 당일치기로 갔다 오기에 한 번 여행을 갔다 오면 번화한 도시뿐만 아니라 한적하고 평화로운 작은 소도시까지 다양한 정취를 느끼고 왔다. 미얀마란 비주류 여행지를 가기로 항공권을 결제하던 순간부터 소도시를 갔다 오겠다는 욕심에 열심히 정보의 물살을 헤엄치며 미얀마의 교통편부터 수집하기 시작했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나는 또 망각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양곤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숙소에서 체크인을 하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다음날부터 3일간 미얀마의 명절 연휴가 시작되었기에 짜익티요(골든 락)로 가는 버스 편은 이미 매진이었다. 한국의 몇 배가 되는 면적에 열악한 교통 인프라까지 더해져 기차나 시외버스로는 당일치기가 어려웠다. 결국엔 내리는 비에 잠깐 묵으려 했던 숙소를 하루 연장하고 양곤에서 내리는 비와 함께 하였다. 이렇게 모울메인(Mawlamyine : 몰레먀인, 몰먀잉)을 포기했다.


여행 마지막 일정인 만달레이에서 *카파(Katha)를 가겠다는 다짐은 여행이 진행될수록 사그라들었다.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산맥을 넘어가는 일정은 이동만으로도 하루의 체력을 모두 소비하게 했으며 중간 변수의 등장으로 이동이 늦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뱃길도 건기라 물이 말라 뜨지 않을 수 있다는 소식에 어느 것 하나 쉬이 예정했던 시간에 이동하는 것을 보장할 수 없었다. 기차도 다니지 않아 중간 마을에서 트럭을 갈아타야 하는 산골마을로 무지의 용감을 두르고 가겠다 모험의 깃발을 들었던 나는 참 어리석은 도시여행자였다.


*카파(Katha)는 작가 조지 오웰이 실제 제국 경찰로 근무했던 지역으로 그가 근무했던 경찰서 등 여러 가지 흔적이 남아있다. 히말라야 산맥을 타고 내려오는 험준한 산맥에 묻혀있는 다이아몬드와 루비 광산으로 유명했기에 식민 지배를 했던 영국에서 미얀마 북부에서 제국민을 파견할 만큼 기점으로 삼았던 마을이다. 참고로 더 북쪽에 있는 미치나 지역은 최근 국경을 맞닿은 중국에서 희토류를 채취해서 육로로 실어 나르는 트럭에 대해 보도된 적이 있다.


야심 찼던 나의 조지 오웰의 발자취를 찾겠다는 미얀마 여행은 결국 국민 루트라 불리는 양곤-바간-인레-만달레이를 돌면서 끝났다. 심지어 만달레이에서 기차를 타고 곡 테익 다리를 건너 핀우린까지 가는 당일치기 기차 코스도 못 갔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밤 12시가 넘어야 들어올 수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만달레이에서 식중독까지 겪어서 저조한 컨디션으로 치앙마이에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장기 여행을 가는데, 한 번도 소도시에 가지 못 했다.

자주 갈 수 있는 장기 여행이 아닌데, 이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

이번 미얀마 여행은 흔한 여행이 되는 것일까?


내가 미얀마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깊은 불심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한국에서 부처님의 일부 신체가 모셔진 사원은 없지 않은가?! 이와 더불어 살고 있는 미얀마 사람들의 모습은 양곤 시내 안에서도 충분히 느꼈다. 폭우가 쏟아져 피하기 위해 들어간 금은방에서 어린 여승들에게 하나라도 시주하기 위해 사탕을 한 움큼 넣어주시는 광경을 보고 절로 동공이 커졌으며, 미얀마 어로 쓰인 숫자로 못 읽는 외국인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켜 알려주는 친절함과 명절을 맞아 폭우 속에도 찾아와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고 복을 비는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도 다르지 않아 정겨웠다. 모르는 외국인이 사진 요청을 해도 흔쾌히 허락해주신 전통의상을 입은 아이의 아버님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미얀마에서 인물 사진 찍는 것은 매우 실례되는 행동이기에 사전에 꼭 촬영해도 되는 허락을 구해야 한다.)


내가 여행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목적이 아닌 과정 자체만을 즐기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에서 퀘스트를 클리어하듯 1일 차는 A를 하고, 2일 차는 B를 하고 등등을 실천하는 여행이 아니라 내가 보고 느끼고자 하는 감정과 정신에 흠뻑 젖어오는 여행이기에 언제나 길 위에 머물고 싶다.


IMG_20181023_153709.jpg 비가 내리는 보타따웅 파고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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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부처님의 머리카락을 보관하는 곳. 잘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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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맞아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기 위해 많은 현지인들이 보타따웅 파고다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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