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의 저서를 읽고
시절인연은 책에도 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재미를 위한 독서를 하는 나는 이리 믿는다.
어린 시절 책을 빌려보던 습관 때문인가 나이가 들어서도 도서관에서 대여하는 읽는 책이 유독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소유욕에 책을 사들이는 행위를 멈추고 어느 날부터 지하철역 한쪽에 있는 '스마트 도서관'을 애용하면서 -내가 보기에는- 책 자판기 같은 이 기계 안에서 우연히 김형석 교수님을 처음 만났다. 진한 네이비 색 커버에 깔끔하게 '어떻게 믿을 것인가'라는 글귀만이 적혀 있는 표지에 끌려 뒷면에 쓰여있는 본문 발췌 내용을 보았다. 유럽 일정 중에 주일에 예매를 드리러 교회를 찾아가는 부부의 모습이 기독교에 무지한 나의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일방적 믿음의 신앙이라 여기었던 기독교를 어떻게 믿을지 고민하는 기독교 신자의 생각이 매우 궁금하여 20분간의 지하철 여행의 동반자로 결정하고 대여를 했다.
100세를 바라보는 노학자의 신앙에 대한 태도와 자세는 종교를 넘어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믿음을 가지는 것보다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믿을 것인지에 대한 토대를 들여다보는 글을 한 챕터 한 챕터 넘길 때마다 잠시 쉬어가며 음미하는 시간을 누리었다. 한 명의 독자로서 작가의 주장과 가치관을 마주할 때 어떤 기준과 가치로 분리하고 받아들이는가, 과정에 대한 점검을 하며 되새겨보았다. 그리하여 이 책은 처음의 목적과 다르게 그날의 지하철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반납하지 않고 나의 가방에 담겨 잠들기 전 책상 위에 올려놓게 되었다.
비록 목표한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옳고 그름을 분간하여 스스로에게 새겨 넣고 살아가려는 태도만은 눈감을 때까지 가지고 싶었다. 내면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나만의 기준들이 해가 넘어갈수록 바래져 현재에 맞지 않는 고루함으로 느껴지고, 사유의 정체(停滯)는 사고의 낡음을 더욱 가감 없이 느끼게 했다. 나를 내보이는 것이 한없이 부끄럽고, 끝없이 창피하였다. 현실에서의 도피에 한 발을 걸쳐 놓고 그 끝에 매달려 있는 나에게 믿음에 대한 마음가짐이 틀리지 않았다고 감싸 안아주는 작가의 문장이 눈물을 머금고 미소 짓게 해 주었다.
2019년 국제도서전 프로그램을 보다 김형석 작가님의 강연이 있음을 확인하고 부스를 돌아다니다 강연 장소로 갔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도 가득한 그곳 한 구석에서 느릿한 움직임과 또렷한 눈으로 청중을 바라보며 자신의 100년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말이 마음에 가득 넘쳐흘러 그 자리에서 바로 책을 구입하여 앞장에 사인을 받았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이 지나 지쳐있는 마음이 숨통을 틔고 싶을 때, 나는 '백 년을 살아보니'를 집어 들었다. 작가 자신의 인생을 통해 지켜봐 온 삶과 죽음을 말하면서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가족들과 어떻게 지내며, 친우들과 어떠한 시간을 보냈는지 적어놓았다. 훌륭한 업적을 세우고, 세간의 인정을 받는 위대한 학자도 삶의 마지막에 그리운 것은 평범한 매일에 인사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봐 주는 다정함이기에 단절과 외로움에 슬퍼하기보다 먼저 한 마디의 축하를 건네고 일상을 물어보았다. 준만큼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무언가를 해줄 수 있어 기쁘다는 마음은 일상이 고되게 느껴질 때에 잠시 미소 지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두 권의 책은 어느 날 예상치 못 하게 나에게 날아와 한 귀퉁이에 자리하다 내가 글귀가 필요할 때 마음에 날아들었다. 인연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넘어 책에도 글귀에도 있음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기에 유명한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부끄럽지 않고, 독서의 기쁨을 누릴 줄 아는 독자로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