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례한 엄마이야기
엄마가 유독 자식에게 모질게 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모두에게 공평하게 무례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은근한 위안이 되었다.
정말 말 그대로, 무례하고 미성숙한 사람이 하필 내 엄마였던 것이다.
엄마는 자주 타인과의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삶을 재단하곤 했다. 솔직함을 가장한 직설로 남을 깎아내려 본인의 처지를 위로하는 것이 엄마의 고약한 취미 중 하나였다. 삶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면 주위에서 불행의 불씨를 반드시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다. 그게 엄마가 스스로를 위로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방식이다.
“재원이 엄마는 사업한다고 돈 많이 벌어도 맨날 돈 걱정만 하느라 불행하더라. 욕심이 끝이 없어. 돈 없어도 일상에 고민이 없으니 내가 더 행복하지.”
엄마에게 돈 많은 사람은 무조건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매일 본인의 처지를 비관하고 죽어버리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곧 죽어도 본인은 다른 사람보다 행복하다고 나를 세뇌하듯 읊조린다.
반대로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명절 선물로 들어온 보리굴비를 시골 할머니댁에 가져다 뒀더니 욕심 많고 무식한 고모가 귀한 것인 줄 모르고 주워가서 개밥으로 줬다더라 “
엄마는 이렇게 말하고 한껏 들뜬 멸시의 웃음을 띠며 킬킬, 웃었다.
엄마는 늘 “누구는 어째서, 누구는 저째서 힘들다더라” 며 ”내 처지가 제일 나은 것 같아 “ 하고 주문을 걸 듯 말하곤 했다.
나는 엄마가 그런 말을 할 때 참을 수 없이 슬퍼졌다.
오만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상대적 우월감으로 사는 것은 몹시 무례하고 가난한 마음이 아닌가.
남의 불행이 얼마나 큰지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는 엄마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누구보다도 불행해 보였다.
누구 아들이 세무사 시험에 10년 넘게 낙방을 하고, 누구 딸내미가 마흔이 넘도록 시집을 못 가고, 누구 엄마가 투자를 잘못해서 몇 억을 날렸고 하는 것들은 나에게 쓸모없는 풍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단지 다른 사람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것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그렇게 반응하면 엄마는 곧장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위선자.”
엄마는 나에게 위선자라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맞다고 믿고 싶다. 그렇게 살아왔다.
한편으로는 엄마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엄마의 논리와 방식대로라면 세상 사람들이 다 불행해도 엄마는 영원히 무조건 행복할 것이다.
나도 다음 생엔 엄마처럼 철없는 나르시시스트로 태어나야지, 그렇게 생각하다 피식, 떫은 웃음이 번졌다.
다음 생에는 엄마를 만나지 않아야지, 하는 찰나의 비장함이 아리게 스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