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모라는 이름의 불운

나의 무례한 엄마이야기

by 서울라

사실은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집 안에서 잠자코 듣는 순간을 좋아한다.

빗방울이 땅을 부술 기세로 몸을 던져 터질 때마다, 나는 할 수 없이 그날을 떠올리고 만다.


어스름하지만 선명하고, 선명하지만 어두운 기억.

내 모든 상처의 파편을 차곡차곡 모아 시작점으로 거슬러 간다면, 분명 그 순간이 균열의 시작일 터다.


여섯 살 즈음이었던가.

불현듯 따가운 빗소리에 눈을 떴을 때, 창밖에는 어둠이 고요하게 깔려있었고, 내 옆에는 세 살 터울의 동생이 잠들어있었다.


버릇처럼 엄마를 찾았지만 엄마는 집안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익숙한 듯 그다지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자던 동생을 흔들어 깨워 밖으로 나갔다.


우산 끄트머리를 꼭 부여잡은 작은 손이 자꾸만 빗물에 미끄러졌다. 나머지 한 손은 동생에게 붙들려있었다. 어깻죽지가 시리고 아파왔다.

아무 슬리퍼나 구겨신은 발은 이미 웅덩이에 여러 번 빠져 새카맣게 변하고 있었다.


곧장 아파트 상가 편의점으로 가 엄마가 없어졌다고 도움을 청했다. 그 시간에 불이 켜진 곳은 24시 편의점 밖에 없었다.


내가 또렷하게 기억하는 장면은 거기까지다.

후에 엄마는 잠시 혼자 커피를 마시고 왔다고 했던 것 같다.

집에서 잠자코 기다리지 왜 나와서 동네 창피하게 하냐고 다그치는 엄마에게 혼이 나는 것쯤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집으로 돌아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잠에 들었고, 그 후로 그날의 일을 캐묻거나 왜 우리를 놓고 나갔냐고 어리광을 부리지 않았다. 엄마를 귀찮게 하면 정말 영영 집을 나가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너희들을 낳아서 인생이 불행해졌다고 말하던 사람이니까, 엄마를 자극해서 좋을 것은 없었다.


아빠는 그 무렵 원격지 발령으로 우리가 사는 지방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었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아이 둘을 혼자 키우게 된 20대의 엄마는 자신의 처지를 퍽 처량하게 여겼던 것 같다. 연이은 출산과 육아로 젊음의 자유를 빼앗기는 바람에 삶이 피폐해진 거라고 자체적으로 결론을 내린 듯했다.


그 시절 아빠의 부재와 무관심이

엄마로 하여금 더욱 드라마틱하게 본인을 가엾이 여기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날의 일과 같은 충동적인 행동들을 스스로 합리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직접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나에게 하는 가시 돋친 말들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동생을 낳고 산후우울증에 걸려 아파트 16층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시험해보려 했었다거나,

나를 등에 업고 옥상에서 떨어져 죽으려고 올라갔더니 옥상문이 잠겨있어 실패했다거나.

내가 생기기 직전 임신이 되었다가 계류유산으로 떠나보낸 아이가 아들로 무사히 태어났었다면 너를 안 낳아도 됐을 거라거나.


대부분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들의 인과에는 항상 내가 있었다. 나는 한 번도 의도한 적이 없었는데, 내가 등장하는 문장에는 줄곧 부정적인 단어들이 따라붙었다.


엄마는 종종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문장을 준비해 뒀다가 나를 조준해 던지곤 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마치 배고프다 정도의 일상을 말하는 것처럼, 이따금 무심하게 내뱉고는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을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항변하고, 화도 내고, 눈물로 호소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엄마는 나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기가 막히게 잘 알고 있다.

우는 내 모습을 보며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그래? 넌 너무 예민해. 어릴 때부터 그랬어. 밤에 잠도 안 자고 울어서 침대에 집어던졌었지. 그랬더니 더 크게 빼액 울더라."


상처를 주는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라 상처를 받는 사람이 예민한 거라는 말은 잔인하도록 이기적이어서, 그 한마디면 나는 그만 모든 전의를 상실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내가 서른이 넘어 딸을 임신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도

엄마는 여전히 이유 없이 아픈 말들로 나를 재단하고, 날카로운 말로 찌르고, 같은 패턴으로 발뺌한다.


엄마는 임산부에게도 자비가 없다. 오히려 클래식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말로 간단히 나를 항복시킨다.


"꼭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우면서 고생해 봐라."


내가 졌다. 나는 엄마를 이길 수 없다.


내 기억에도 없는 순간부터 죄인일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운명에 이제는 나도 수긍하고 더 이상 저항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시어머니가 시누에게 주는 아낌없는 사랑과 절절한 희생을 보며 나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도록 마음을 가다듬는다.

엄마도 한낱 인간이고, 인간은 죽을 때까지 미숙한 존재이니까.


어쨌든, 단지 부모라는 이유로 딱히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자식의 인격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거대한 무력이었던가를 생각하면 이따금 먹먹한 마음이 고개를 쳐든다.


그 막강한 권력에 맞서 우울에 잠식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하필 내 부모가 수많은 미성숙한 인간들 중 하나라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한결 나아진다.


보육자로부터 버려지거나 미움받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고단한 어린 시절을 때때로 돌아본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를 용서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

인간의 결핍을 인정하고, 수많은 상처의 편린을 위로하기 위해, 긴 장마에 젖어 눅눅해진 펜으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