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바이러스로 시끄럽다. 이제는 조금 적응될 법도 하건만 여전히 역병은 모습을 달리하여 세를 과시하고 있고 인간은 살아남기 위한 발악을 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많은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생존이다. 이번 공연 ’산양의 노래’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과 울부짖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풀로 덮인 바닥과 새소리가 드리워진 공연장, ‘산양의 노래’의 막이 올랐다. 불을 피우는 제의와 함께 공연이 시작된다. 불은 무용수들의 머리 꼭대기에서 타오른다. 잡념을 태우는 것일까 속세의 관념을 태우는 것일까. 불이 일렁이며 무용수들은 알 수 없는 것을 향한 기원의 몸짓을 시작한다. 한 편의 제의가 끝난 후 무대 한가운데가 열리고, 그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오리너구리다. 새끼를 젖을 먹여 키우고, 부리가 있고, 알을 낳고, 독을 쓰고, 심지어 돌고래처럼 전파 탐지까지 할 수 있는 신비한 생명체. 하지만 젖이 나온다는 이유 하나로 인간의 잣대로 포유류로 규정한 생명체. 인간은 오리너구리를 제물로 그들의 영달과 행복을, 재난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기원한다. 오리너구리로 대표되는 인간의 이성은 맹목적인 신앙에 저항한다. 내가 무슨 이유로 희생되어야 하는지, 신은 어디에 왜 존재하는지 탐구하며 악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 하지만 인간의 광기는 오리너구리를, 무고한 생명을, 이성을 갈기갈기 찢으며 제물로 희생시킨다.
하지만 희생은 인간에게 평화를 가져주지 않는다. 제물을 찢어발긴 인간들은 각자의 고통과 지옥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무용수들은 한참 동안 알 수 없는 몸짓과 불편한 동작을 이어간다. 인간 내면의 무의식과 혼돈이 무대에 그대로 펼쳐진 듯했다. 사념이 살아 움직인다면 이런 모습일까. 본능에 사로잡혀 무아지경의 춤을 추던 무용수들은 어느 순간 스러지고 혼돈의 여운으로 우중충한 무대를 신이 가로지른다. 아니 그저 스쳐 지나가는 듯하다.
이윽고 무대 위에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펼쳐진다. 어쩌면 연기가 아니라 무용수의 현실 속 일상을 그대로 표현한 것일수도 있다. 각자의 고민과 바램을 읊조리고, 때론 즐기고 노래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절망한다. 수많은 시간을 준비한 무대를 포기하는 장면은 코로나 시대의 예술인들에게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리라. 희로애락이 별처럼 흩어진 가운데 무용수들은 또다시 일상을 살아가고 공연을, 연기를, 무용을 연습한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간다. 그러한 일상의 한가운데 신의 형체가 놓이고, 인간은 그 앞에 무너지며 무대는 막을 내린다.
인간은 너무나 연약해서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 그저 흔들린다. 전지전능하지 못한 인간에게 개인의 사소한 아픔이나 고민부터 전 세계를 뒤덮는 재해와 절망은 형태가 없는 초월적 존재에게 기원하고 순응할 수밖에 없다. 먼 훗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생로병사가 모두 정복되면 이러한 흔들림이 멈출 수 있는 날이 올까.
산양이라는 제물이 표면적으로는 인간의 비이성과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하지만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누구라도 산양이 될 수 있다. 어떤 이유로 제물이 되든 그 이유는 부당하고 불합리하다.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제물로 희생되는 동물들, 끓는 쇳물에 빠져 에밀레종의 소리가 된 어린아이, 아즈텍 족의 신전에서 벌어졌던 인신공양,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완전한 붕괴를 막기 위해 차출된 군인들, 채 검증이 완벽하게 되지 못한 바이러스 백신을 맞고 부작용으로 희생되는 이들, 지원금 범위를 정하는 권력자들에 의해 그 경계선을 넘나드는 소시민들.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그 하루하루를 지탱하는 데 필요한 것이 종교적 신념이든, 퇴근 후의 술 한잔이든,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이든, 침대에 누워서 보는 넷플릭스든. 삶이 이유가 없는 것처럼 죽음도 이유가 없기에 우리는 그저 살아갈 뿐이다. 내일은 조금 더 세상이 살 만한 곳으로 변하기를, 그저 하루를 잘 버텨내기를 기도해본다.
공연일자_ 2021.7.3(토) ~ 7.4(일)
공연시간_ 토,일 19:30
공연장소_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단체명_ 류장현과친구들
연출자_ 류장현
출연_ 이다겸, 엄규정, 공지수, 안승균, 김민송, 김효경, 김설믜, 신혜수
안무_ 류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