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될 줄 몰랐다. 그저 알 수 없는 것들이 우연히 뒤섞여 생긴 돌연변이인 줄 알았다. 파란색 재료를 쓰면 푸른빛으로 반짝였고 뭉근한 것을 쓰면 질척거리는 모양이 되었으며 다른 것끼리 섞으면 먼지가 떨어져 띠를 이루었다. 난잡해 보이거나 엉망이 되었을 때, 정리하기 귀찮을 때는 지워버리고 새로 만들었다.
8471번째는 조금 달랐다. 여느 때처럼 돌려보기도 했고 일부러 부딪치게도 해보았다. 부서지며 떨어져 퍼져 나가는 것들이 흥미로웠다. 이번에는 조금 더 부드러운 것을 써 보기로 했다. 별다를 것이 없어 훨씬 더 투명하고 흩어지는 것을 섞어보았다. 이상했다. 그저 빛나거나 연무를 내뿜기만 할 뿐이었던 것이 아니라 무언가 움직이고 생기고 변하고 있었다.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가끔 격렬하게 변하기도, 다른 색을 띠기도 했다. 옆에 굴러다니던 자투리를 하나 던져보았다. 깨져서 조각날 줄 알았는데 너무 작은 것을 던졌는지 또다시 색이 변하고 움직이는 것들이 거의 멈춘 것 외에는 멀쩡했다.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는데 여전히 하찮은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치우고 새로 만들 때가 한참 넘었지만 이렇게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변하는 것이 처음이라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만져 보기로 했다. 그때 자제하고 멈췄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휘날리던 것들이 가라앉고, 단단한 것들끼리, 부드러운 것들끼리 나뉘고 뭉치면서 색깔도 더 깔끔하게 변했다. 너무 빨갛거나 하얗지 않고 파란빛에 간간이 흰색이 섞여 보기 좋았다. 움직이는 것들도 다시 빠르게 생겨났다. 그 종류도 점점 늘어났고 너무 빠른 속도로 새로운 것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이 즐거웠다. 직접 내 손을 쓰지 않고도 스스로 다채롭게 많은 것들이 생겨나고 없어지고 바뀌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는 없던 완전히 다른, 마치 나처럼 생각하고 소리 내는 것들. 처음 들렸을 때는 나에게 내는 소리라는 것도 몰랐다. 들어본 적이 없던 울림이었다. 아니, 나에게 어떤 소리를 낸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저 알 수 없는 소리만 내던 것들이 언제부터인가 규칙적인 소리를 통해서 나에게 원하는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살려달라고? 왜? 어차피 없어지고 새로 생겨나는 것들이? 이상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다른 것들과 무리 지어 늘어나기도 했지만 다른 무리와 부딪치며 수를 줄이거나 무리의 크기를 늘렸다. 특히 그것들은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다른 존재로 생겨나도록, 오랫동안 움직일 수 있도록 요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진동은 서로 부딪칠 때 더 심했는데, 그럴 때면 나에게 다른 것들을 없애달라거나 자기들을 살려달라는 소리, 이외에도 많은 것들을 바라는 소리가 뒤섞여 짜증 나게 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 재미있을 때가 좋았는데. 일단 버리기 아까워서 다른 것들로 덮어놓았다. 없애고 8472번째 세상을 다시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이렇게 독특하게 움직이고 스스로 변화하는 것들은 처음이다. 다시 열어보았다. 너무 시끄럽다. 오만가지 진동이 뒤섞여 하나하나 알아들으려 하다가는 화가 치솟을 것 같다.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 어두운 것들로 대충 감싸놓았다. 얼핏 보니 색깔도 이상하게 뿌옇게 변했다. 새파란 느낌이 좋았는데 저 시끄러운 것들이 저런 꼬락서니를 해놓은 건지 의심스럽다.
다 엎어버리고 새로 만들어야 할까? 이렇게 흥미롭게 변한 것은 처음인데. 나처럼 의미를 전달하고 무언가 만들 줄 아는 것 같은데 어떻게 저렇게 변한 거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점점 저것들이 엉망이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스스로 없어질 때까지 기다려 봐야 될까?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