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하는 힘
지호가 입학하고 1학년 초반에는 교내 이동을 같이 했다. 교실 정문으로 들어와 중앙현관을 지나 1학년 교실까지 갈 때도, 교실을 이동할 때도 함께였다. 그렇게 몇 개월 짧고 같은 길을 다니다보니 경로가 익숙해졌나보다. 2학기가 되자 우리 반 수업 후 같은 층 반대쪽 복도 끝에 있는 1학년 교실까지 혼자 간단다. 수업이 끝나자 문 앞에 서서 말한다.
지호 혼자 갈 수 있어!
그래? 그럼 지호 혼자 가. 선생님은 교실에 있을게.
아직은 조금 불안하니 몰래 따라가며 지켜봤는데 같은 층이라 혼자서도 잘 가더라. 그렇게 한동안 지호는 혼자라고 생각하지만 감시자가 붙은 형태가 지속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지호도 이상함을 감지한 것 같다. 복도를 걸어가다 멈추고 뒤를 돌아보기를 반복했다. 앗, 눈치 챘나? 얼른 벽 뒤로 숨었으니 못 봤겠지? 안심하고 다시 슬쩍 고개를 내밀었는데 지호가 뒤돌아 쳐다보고 있다. 벽 뒤에서 나타난 내 얼굴을 확인하자 ‘으으으으으’ 소리내며 질색을 한다.
오지 마!
그러더니 혼자서 뛰어가는 지호.
다음날부터 지호는 한 마디를 더했다.
지호 혼자 갈 수 있어! 선생님은 여기 있어!
수업이 끝나고 나가는 지호를 배웅하러 문 앞까지 가면 나를 문 안쪽으로 밀어넣고 자기 혼자만 문 밖으로 홀랑 나간 후 문을 꼬옥 닫는다. 절대 이 문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암묵적인 경고다. 행여라도 같이 가려 하면 그 작은 손을 쭈욱 뻗어 훨씬 큰 내 몸을 문 안으로 밀어넣는다. 당장이라도 울 듯한 표정과 함께. 그 후로도 가끔 몰래 뒤따라가 잘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다가 감시자가 필요할 것 같지 않을 때 지호는 온전히 혼자서 다닐 수 있었다.
지호가 2학년이 되었다.
처음 두세달 동안은 아침에 등교하여 정문부터 2층 2학년 교실까지 가는 것을 지켜보며 거리를 조금 두고 뒤따라갔다. 그런데 2층까지의 경로도 익숙해지자 뒤따라가는 것을 싫어한다.
중앙현관 바로 옆에는 주차장이 있어 교직원들의 차량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다. 어느 날 지호가 중앙현관에서 내 손을 잡고 입구 반대방향인 주차장 첫 번째 차까지 데려가 분명한 한 마디를 남긴다.
선생님은 벤츠 옆에 있어.
지호는 자동차 책에 많이 나오는 비싼 차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다. 벤츠, 포르쉐, 마세라티와 같은 차들 말이다. 차 마니아 지호 눈에는 흰 기둥이나 유리문이 아닌 벤츠가 보였겠지. 나를 벤츠 옆에 세워두고 호다닥 중앙현관 안으로 뛰어가며 내가 따라오나 살피다가 내가 한 발짝 움직이자 ‘선생님은 거기 있어!’라며 안으로 혼자 들어가버린다. 얼음땡을 하는 것 마냥 나는 창문으로 지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벤츠 옆에 서 있어야 했다.
아이들은 혼자서 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충분히 혼자서도 할 수 있는데 옆에서 어른이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하고 계속 따라다니는 것이 싫겠지. 어른들도 그렇지 않은가. 직장에서 상사가 하루종일 옆에 꼭 붙어있는 것을 상상해보시라.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업무임에도 밀착하여 지켜보고 지적하면 오만 정이 다 떨어지고 나를 못 믿는건가, 왜 저리 오지랖인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나. 아이도 똑같다. 모든 순간을 지켜보고자 한다면 아이는 24시간 내내 감시 속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채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지도 못하고 인형이 되어버린다. 아이의 현재 수준과 행동 특성, 예측되는 돌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본 후 혼자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보자. 씩씩하게 혼자 계단을 올라가는 아이를 벤츠 옆에 서서 바라보자.